미국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9.1%에 달하면서 시장참가자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기준금리를 1%포인트(p) 인상하리라는 예측으로 기울었다. 다만 최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유가가 하락하면서 7월 인플레이션은 완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물가상승이 지속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지난 1년간 3.6%나 하락한 것은 수요 감소로 물가 상승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동시에 시민들이 적지 않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3일(현지시각) 미 노동통계국(BLS)은 지난달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대비 9.1%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5월 상승률(8.6%)을 웃돌뿐 아니라 1981년 11월 이후 41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유가 상승이 물가 상승을 이끌었다. 6월 휘발유값은 전달 대비 11.2%, 전년 대비 60% 가량 올랐다. 식품 가격도 전년 대비 10.4%나 올랐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 전년 대비 5.9% 상승했고 전월 대비 0.7% 올랐다.
6월 인플레이션이 시장 예상(8.8%)을 뛰어 넘은 데 따라 시장참가자들은 연준이 이달 26~27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0.75%포인트 인상을 넘어 1%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측했다. 연준의 통화정책을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 페드워치를 보면 이달 연준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상될 확률은 전날까지 7.6%에 불과했지만 이날 82.1%로 뛰었다.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은 1%포인트 인상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했지만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날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데이터가 나올 예정"이므로 "오늘 결정할 수 없다"면서도 1%포인트 인상을 배제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같은 날 메리 데일리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도 0.75%포인트 인상이 "가장 가능성 있다"면서도 향후 소비자의 인플레이션 기대 및 지출 동향에 따라 1%포인트 인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캐나다중앙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1%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5월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은 7.7%에 달했다.
시장에선 7월 물가상승률은 다소 둔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연준의 금리인상 전후로 시장에서 경기가 둔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짐에 따라 수요 둔화가 예측되며 유가가 다소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던 국제유가는 이달 100달러를 밑돌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가격지수도 3월을 정점으로 4~6월 3달 간 하락세다. 미국 소매업체들이 재고가 쌓임에 따라 할인 판매에 나서고 있는 것도 상품 가격 하락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6월 전년 대비 근원 CPI 상승률도 5.9%로 5월(6%)에 비해 소폭 하락했다.
소비자들의 중장기 물가상승 기대도 소폭 완화됐다. 뉴욕 연은의 지난 11일 발표에 따르면 6월 소비자들은 3년 뒤에는 물가상승률이 3.6%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5월 기대치(3.9%)보다 낮아진 것이다. 5년 뒤 인플레이션 예상치도 5월(2.9%)보다 6월(2.8%)에 낮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6월 물가상승률이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면서도 최근 이어진 유가 하락이 반영되지 않은 "구닥다리" 수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 충격으로 발생한 유가와 식품값 급등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스포츠 경기 관람료 등 서비스 부문 가격도 광범위하게 오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플레이션 완화에 대한 속단을 경계했다. 6월 전월 대비 근원 CPI 상승률도 0.7%로 5월(0.6%)보다 높아지며 가격 상승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노동통계국은 6월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실질 임금이 1년 전보다 3.6%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올들어 매달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꾸준이 전년 대비 5% 이상 상승한 것으로 발표됐지만 높은 인플레이션에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실질 임금 감소로 노동자들의 지출 여력이 쪼그라드는 것은 수요를 축소시켜 물가 상승을 완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이 수반되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자산운용사 PGIM의 채권 분석가 엘런 게이스크는 "지금까지의 인플레이션 보고서는 실망스러웠지만 이번 보고서는 고통스러웠다"며 "가계가 이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가계 소득이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저소득 지역이 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센터포시티는 14일 영국의 지역별 인플레이션을 조사한 결과 번리·블랙번·블랙풀 등 가난한 도시의 5월 물가상승률은 11~11.5%로 8.8%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런던이나 케임브리지 등의 대도시보다 3%포인트 가량 높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전체의 5월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은 9.1%다. 이는 연료값 상승세가 가파른 가운데 번리 등 해당 지역 주민들이 단열 설비가 열악한 주택에서 생활하며 대중교통 미비로 자동차 의존도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앤드류 카터 센터포시티 대표는 "전국이 높은 생활비 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우리 연구는 특정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입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정부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영국 매체 <가디언>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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