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물가상승률이 4월에도 8%를 넘어섰다. 전달보다 상승폭이 소폭 완화됐지만 하락 요인을 제공한 유가가 5월 들어 다시 오른 데다, 가격 상승 품목이 서비스 부문까지 확대됐다. 인플레이션이 쉽게 진정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임금상승은 둔화되며 가계에 타격이 우려된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11일(현지시각) 발표를 보면 미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3% 상승했다. 상승폭이 3월(8.5%)보다 줄며 지난해 8월 이후 8달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가 꺾였지만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상승률이 다소 완화된 데는 지난달 소폭 하락한 유가가 기여했다. 3월 18.3%나 뛰었던 휘발유값은 4월에 6.1% 하락했다. 유가를 포함한 전체 에너지 지수도 4월 2.7% 하락했다. 이 지수는 3월에 11% 급등한 바 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다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해당 요인은 희석될 것이라는 전망이 불가피하다. 10일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37달러로 사상최고가를 경신했다. 분석가들은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조치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 시장에 추가적 충격을 가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점차 안정되면서 무역 및 경제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수요가 늘면서 상승 추세였던 유가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각 국이 러시아산 석유 금수 등 제재 조치에 돌입하면서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더해져 거센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노동통계국은 지난 1년 간 유가를 포함한 미국 에너지 지수가 30.3%나 뛰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안정세로 접어들면서 수요는 빠르게 회복되는 반면 공급망은 복구가 더뎌 물가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4월 CPI에서는 가격 상승이 상품 뿐만 아니라 서비스 부문으로도 확장됐다는 점도 향후 전망을 낙관할 수 없는 요인이다. 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4월 항공료는 전월 대비 18.6% 급등했다. 외식비도 0.9% 상승해 지난해 10월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미국 금융투자사 제프리스의 수석 금융분석가인 아네타 마르코우스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공급망에 머물지 않고 경제의 서비스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저절로 꺾일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의 상하이 폐쇄가 길어지면서 공급망에 대한 우려도 지속되는 상황이다. 곡창 지대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식량 부족에 대한 걱정으로 인도네시아가 팜유의 국외 판매를 금지하는 등 각국이 식량 수출 규모를 줄일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인플레이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월간 기준으로도 4월 CPI는 전달보다 0.3% 상승해 3월(1.2%)보다 상승폭을 크게 줄였지만,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하고 산정한 근원 CPI는 오히려 3월(0.3%)보다 상승한 0.6%로 집계돼 물가상승이 완화되리라는 기대를 어렵게 하고 있다.
미 정부와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전날 "인플레이션이 국내 정책에서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연준은 올해 3월과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뒤 두 차례 모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5월 한 번에 0.5%포인트 금리를 인상하는 '빅스텝'을 밟은 연준은 향후 회의에서도 비슷한 속도로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물가상승률 증가세가 거셌기 때문에 기저효과로 인해 향후 몇 달 안에 전년 대비 인플레이션 수치 자체는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이 아직은 인플레이션을 흡수할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지난달 29일 미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3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은 전달보다 1.1% 늘었다. 지출은 여행·외식 등 서비스 부문, 휘발유와 식품과 같은 상품 부문에서 고루 늘었다. 소비지출은 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했던 올해 1월(2%), 2월(0.6%)에도 늘었다. 일자리가 늘고 임금이 상승하고 있는 데다, 소비자들이 높은 물가상승률에 직면해 향후 가격이 더 떨어지리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비를 미루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으로 일부 분석된다.
그러나 물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결국 소비 지출도 쪼그라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유행 완화로 지난해부터 일자리는 늘고 있는데 대유행 기간 대규모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일부 미복귀를 포함해 노동력 공급은 부족해 임금이 오르고 있긴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4월 미국 민간부문 노동자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4월 물가상승률(8.3%)에 훨씬 못 미칠뿐 아니라 3월 상승률(5.6%)보다 둔화됐다.
향후 임금 인상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경제 관점에서 기대와 우려를 함께 낳는다. 최소한 임금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압력이 적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임금 인상폭은 줄어들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수 밖에 없어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계컨설팅업체 그랜드손톤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 경제학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잠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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