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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외교 통해 푸틴에게 탈출 기회의 명분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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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외교 통해 푸틴에게 탈출 기회의 명분을 줘야 한다"

[해외 시각] 노엄 촘스키 <톰디스패치> 인터뷰 (상)

'미국의 양심' 노엄 촘스키의 우크라이나전쟁 관련 인터뷰를 두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촘스키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범죄라고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이번 전쟁으로 유럽이 미국에 완전 종속하게 된 사실에 매우 큰 유감을 표시한다. 독자적 제3세력으로서의 유럽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침공 직전, 푸틴이 마크롱의 제의를 받아들여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했더라면 드골과 고르바초프 등이 지향했던 유라시아 공동 안보('대서양에서 우랄까지' 또는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가 가능했고 이에 따라 세계 평화가 달성됐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촘스키는 우크라이나 주권 수호가 아닌 러시아 약화에만 초점을 맞춘 미국 등 서방의 강경 전략을 비판하면서 이번 전쟁은 외교에 의해서만 종식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 후반부에서 촘스키는 넉 달이 돼가도록 우크라이나를 제압하지 못한 러시아가 어떻게 유럽 전체를 무력 정복할 수 있겠느냐면서 러시아의 군사 위협을 이유로 군사력 증강에 나선 나토의 이중적 행태를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모순적 행태가 일찍이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지적한 이중사고(double think)에 해당된다면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란 서방이 날조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이러한 이중사고가 미국의 대외전략이 군사화된 1950년 NSC-68 이래의 유구한 전통이며, 미국은 실재하지도 않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을 빌미로 지속적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면서 미국 자체는 물론 지구촌 전체의 인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12일 독립언론인 데이비드 바사미안(David Barsamian)의 방송 인터뷰(Alternative Radio)를 바탕으로 요약, 작성된 것으로 <톰디스패치> 6월 16일자에 "Welcome to Science-Fiction Planet : How George Orwell's Double Think Became the Way of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노엄 촘스키 미국 MIT 명예교수 ⓒAFP=연합뉴스

데이비드 바사미안 : 우리 시대의 최대 악몽인 우크라이나전쟁과 그 세계적 영향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우선 전쟁의 배경과 관련해, (냉전 종식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당시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나토가 "단 1인치도 동쪽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는 최근 기밀 해제된 당시 외교문서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고르바초프는 당시 왜 이 약속을 문서 형태로 받아내지 않았을까?

노엄 촘스키 : 고르바초프는 구두약속을 신사들 간의 신의 있는 약속이라고 받아들였다. 외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악수 한 번으로 서로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게다가 종이쪽지 위에 서명을 하는 등 문서 형태로 약속한다 한들 뭣이 달라진단 말인가? 역사상 문서 형태의 조약이 파기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그리고 사실 아버지 부시는 재임 중에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그는 (동유럽 국가들의 안보 보장을 위한)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이라는 제도를 추구하기까지 했다. 유라시아 국가들을 미국 주도의 안보체제에 포함시킨 것이다. 나토는 해체되지는 않겠지만 주변적 존재로 남겨질 예정이었다. 예를 들어 타지키스탄은 나토에 공식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에 가입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를 용인했다. 그는 자신이 '유라시아 공동의 집'이라 불렀던 유라시아 공동 안보로의 일보 전진이라고 생각했다. 군사동맹은 사라질 터였다.

클린턴도 첫 2년간은(1993-94년) 이러한 추세를 따랐다. 그런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클린턴 1994년부터 (나토 동진과 관련해) 이중적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냉전 종식 당시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한 반면, 미국 내 폴란드 등 동유럽 출신 유권자들에게는 동유럽 국가들을 나토에 받아들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1996-97년이 되면서 클린턴은 당시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미국은 1996년 러시아 대선에서 옐친의 재선을 위해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분명히 말하기 시작했다. '나토 확대에 대해 간섭하지 말 것. 나토 동진은 11월 대선에서 동유럽 출신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필요하거든'

대선 다음 해인 1997년 클린턴은 헝가리, 체코, 폴란드의 나토 가입을 확정했다. 러시아는 불만이었지만 막을 방도가 없었다. 2004년 옛 소련 영토였고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발트 3국이 나토에 가입했으나 러시아는 속수무책이었다. 2008년 아들 부시가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추진했다. 그는 아버지와는 아주 다른 인물이었다. 당시 미국의 모든 외교관들이 그 위험성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이었던 것이다. 2014년 2월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마이단 쿠데타가 일어나 친러 성향의 대통령이 러시아로 국외 탈출했고,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2014년부터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 지원을 시작했다. 첨단 무기 지원과 함께 군사훈련과 합동 모의 군사작전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군대를 나토 사령부에 사실상 통합시켰다. 이건 뭐 비밀도 아니다. 공개된 사실이다. 최근 나토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가 내놓고 자랑했을 정도다. 나토가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군대를 키웠노라고. 매우 의도적이고 지극히 도발적인 발언이었다. 나토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러시아가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008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에 반대해 일단 저지시키기는 했으나, 이 문제가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나토, 즉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사실상 나토 통합을 가속화했다.

2019년 젤렌스키가 평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압도적 득표로(73%)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선 당시 그는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자치를 인정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평화를 이룰 생각이었다. 그는 돈바스지역(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자치를 인정해 2015년 민스크2 협정을 이행하려 했다. 돈바스의 자치가 인정됐다면 우크라이나는 일종의 연방국가가 (스위스나 벨기에 같은)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평화 노력은 극우 무장 세력의 위협으로 무산됐다. 극우 세력은 젤렌스키가 민스크협정을 이행한다면 그를 암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사실 젤렌스키는 용감한 사람이다. 미국이 그의 평화 노력을 지지했다면 그의 평화 노력은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거부했다. 미국은 젤렌스키의 평화 노력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다. 고립무원의 그로서는 더 이상 평화 노력을 밀고 나갈 수 없었다. 미국의 계획은 단계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나토 사령부에 통합시킨다는 것이었다. 바이든 행정부 이후 이러한 노력은 더욱 가속화 됐다. 2021년 9월 백악관 홈페이지에 그 증거가 남아 있다.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러시아는 분명히 알고 있다. 당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위한 "증강 프로그램(enhanced program)"의 일환으로 군사 훈련 및 무기 지원을 가속화 하겠다고 발표했다.

11월에는 더욱 가속화 됐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정부와의 이른바 '미국-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한 강령'에 서명했는데, 이는 2014년 이후의 군사 협력 관계를 공식화, 강화한 것이었다. 국무부의 한 대변인은 러시아의 침공 이전에 미국이 러시아의 안보 우려와 관련한 대화를 모두 거부했음을 인정했다. 지금까지가 우크라이나전쟁의 배경이다.

2월 24일 푸틴이 침공을 단행했다. 이는 범죄 행위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심각한 도발 행위다. 만일 푸틴이 진정한 정치가였다면 무력 침공과는 다른 대응을 했어야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럽과의 공존을 시도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유럽 공동의 집을 향한 진전을 이룰 수도 있었다.

물론 미국은 (유럽의 독자적인 공동 안보에) 언제나 반대해 왔다. 미국은 냉전 당시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유럽 독자 노선에도 반대했다. 드골은 "대서양에서 우랄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러시아를 서방측에 포용하려 했다. 이는 교역은 물론 안보적 이유에서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따라서 푸틴의 측근 중에 대국적 시야를 가진 참모가 있었다면 마크롱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럽 통합을 시도하는 한편 전쟁 위기를 회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푸틴은, 러시아 입장에서 보더라도 완전히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무력 침공의 범죄성을 차치하고라도, 이번 전쟁으로 유럽은 미국의 품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마저 나토에 가입하겠다는 실정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최악의 결과다. 앞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바보 같은 결정의 심각한 피해를 두고두고 겪을 것이다.

물론 전쟁의 배경에는 러시아의 범죄성과 우둔함 외에도 미국의 심각한 도발이라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우리는 이 끔찍한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상태를 방치해야 하나?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사태 종식에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외교(협상)다. 외교란 양측 모두가 (특정한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해결책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가장 덜 나쁜 선택지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협상을 통한다면 푸틴에게 위기 탈출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그것이 한 가지 가능성이다.

다른 방법은 그저 전쟁을 질질 끌면서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지, 얼마나 많은 러시아인들이 고통을 겪는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지, 지구가 생존 불가능해질 정도로 기후 위기가 얼마나 악화될지를 그저 방관하는 것이다. 그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은 거의 만장일치로 '협상은 없다(no-diplomacy)'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너무도 분명하다. 계속해서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미국과 유럽 신문의 칼럼들을 읽어보라.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러시아의 고통을 극대화 하라' 우크라이나, 또는 세계가 겪는 고통에 그들은 관심이 없다. 물론 이 도박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면 푸틴은 물러설 것이며 핵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전쟁 이후 러시아는 많은 부분에서 자제력을 발휘했다. 서방의 분석가들은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러시아는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무기 공급 루트를 공격하지 않았다. 물론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공격은 나토, 즉 미국과의 직접적인 군사 대결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군사 대결의 지속적 심화는 결국 핵전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러시아를 약화시키기 위해, 러시아에게 충분한 고통을 주기 위해 우크라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의 목숨과 인류 문명의 미래를 희생시키는 도박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박을 계속하려 한다면 우리는 정직해져야 한다. 이번 전쟁은 도덕적 근거가 전혀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은 도덕적으로 끔찍한 일이다. 지금 미국의 고위 관리와 장성들은 매우 고상한 도덕적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번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떠들고 있는데, 이야말로 도덕적 우둔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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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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