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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터에 숨어 있는 비밀들 "톡 까놓고 얘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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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터에 숨어 있는 비밀들 "톡 까놓고 얘기해 봅시다"

[프레시안 books]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

늦은 새벽 수도권 지역 대리기사들은 '숙제'를 하러 거리를 누빈다. 국내 최대 대리운전 배차 프로그램 업체가 대리기사들에게 매일 '영업 할당량', 이른바 '숙제'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리기사들은 '숙제'를 하지 못하면 콜을 배정받기 어렵다. 울며 겨자 먹기로 '숙제'를 하는 이유다. (☞관련기사 : 대리기사들이 직접 돈 내고 가짜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이유)

업체는 왜 '숙제'를 낼까. 대리운전 기사들의 충성도를 강제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기사들이 피크 시간에 '숙제'를 처리하는 동안 다른 업체와 일할 수 없게 단속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래야 경쟁사의 '콜 점유율' 잠식을 방어할 수 있다. 카카오, 티맵대리 등 대리운전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나타난 부당행위들이다. 

'똑똑한' 배차 알고리즘, 플랫폼 노동의 이면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오민규·더불어삶·현장의 노동자들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은 대리운전과 같은 플랫폼 노동의 이면을 깊게 살펴본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연구자, 시민단체가 뭉쳤다. 좌담회 내용을 그대로 풀어낸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의 대화를 엿보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플랫폼 노동의 정의부터 배달 라이더들의 '오줌권' 그리고 라이더 혹은 대리운전의 배차 알고리즘 공개 문제와 같은 세세한 영역까지 들여다본다. 현장의 사례와 연구자의 통찰을 엮어 흥미롭게 풀어낸다. 플랫폼 노동의 '알고리즘'을 공개하라는 지적도 현장에서 직접 라이더들이 겪은 배차 사례들, 그리고 개발자들의 코딩언어인 파이썬을 배워가며 공부한 연구자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를테면 음식점에 내가 배달을 시켰는데 음식점과 나 사이에 라이더가 한 10명 있어요. 그 중 누구에게 일을 배정하느냐에 관한 기준이 있겠죠. 처음 생각하면 음식점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라이더를 선택할 것 같은데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조리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어차피 가서 기다려야 하는 거라면 적정 거리에 있는 라이더를 찾을 가능성도 있어요. ... 또 하나는 아까 이야기 중에 나왔던 충성도입니다. 라이더의 콜 거부율이 얼마냐에 따르는 것이죠.

ⓒ연합뉴스

그리고 이 책은 플랫폼 노동의 이면과 구조의 실체를 드러내려 노력한다. 이를테면 배차 알고리즘 설계가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서인지 혹은 라이더의 안전을 위해서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은 소비자의 편익, 라이더의 안전을 위해 알고리즘을 설계하지 않는다. 단위 시간당 얼마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라이더를 얼마나 자신의 플랫폼에 '묶어' 놓을 수 있는지 고민한다. 이것이 알고리즘의 실체다. 

스페인 라이더 법은 노동조합에 알고리즘을 제공할 때,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및 매개 변수를 공개하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코딩 내용을 공개하라는 게 아니라 방금 말씀드린 그 내용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플랫폼 회사가 그걸 절대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그걸 공개하는 순간 '소비자를 위해 움직입니다', '고객에게 제일 먼저', 그리고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유연한 시간을 보장합니다.' 이런 말에 대한 신뢰가 다 깨지고 돈 벌려고 혈안이 된 기업이라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전속성' 폐지로 배달노동자도 산재보험 적용받는데... '노동유연화'가 왜 튀어나와?

배달 노동자들은 보통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복수의 배달업체에서 일감을 받는다. 하지만 두 곳 이상에서 일할 경우 일하다 사고를 당해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한 사업장에서 한 달 115만 원 이상 벌거나, 93시간 이상 일해야 산재보험을 적용한다는 '전속성'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주된 사업장 없이 여러 곳에 노동을 제공하는 배달 노동자나 화물차 기사 등이 어려움을 호소해왔는데, 이 '전속성' 조건이 최근 14년 만에 폐지됐다.

지난 30일 국회는 전속성 요건을 삭제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장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전속성이 문제가 됐던 63만여 명이 새롭게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재보험법이 적용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직종도 기존 14개에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평등한 산재보험 적용은 배달 노동자들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플랫폼 기업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더구나 해당 법안은 노동유연화를 기치로 내 건 여당, 국민의힘 소속의 임이자 의원이 발의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근에 전속성 기준이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니까 고용노동부에서도 바꾸려고는 합니다. 고용노동부뿐만 아니라 플랫폼 기업도 그걸 바라겠지요. 전속성 기준 없이 그냥 산재 보상을 해 주면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라이더가 민사 소송을 걸어 버리면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되잖아요. 차라리 전부 산재보험에 가입시키는 게 낫지요. 그래서 이건 노사가 같이 주장하는 건데, 조금 더 고민해보면 노동 유연화를 가속화할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이다. 현장의 요구와 입법 의도는 장기적으로 서로를 배신할 수 있다. 문제는 '구조'다. 이를테면 왜 현장의 배달 노동자는 '전속성' 요건 삭제를 원할까. 노동자 역시 소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함께 진행한 '전국 배달노동자 실태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전업 라이더 노동자들은 평균 주 6일, 하루 10시간의 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한 곳에 '전속성'을 갖지 않고 플랫폼 노동을 하는 이유는 주 52시간과 같이 노동시간이 제한된 근로기준법이라는 보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임금이 높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을 초과해 일하며 자신이 원하는 소득을 얻는 것이다.

언론사들이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자영업을 하다가 몰락하고 배달 일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빚을 갚기 위해서요. 빚을 갚으려면 통상적으로 어디 들어가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벌어야 되니까 노동시간을 갈아 넣는 거죠. 주 52시간 등의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말씀하신 대로 주6일,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씩 일하면서 빚도 갚고 생활도 하고...

결국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상한선을 정해진 노동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배달 노동자들이 버는 돈은 적다. 야간 혹은 연장수당, 연차나 퇴직금, 4대보험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아래 받을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한 금액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버는 수준이다.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 전날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국화꽃 등이 놓여져 있다. 오토바이 배달원은 전날 오전 신호를 기다리다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이날 추모 행사를 열고 이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이 책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장에서 본 대안과 연구자의 대안, 그리고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안까지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배달노동자의 안전한 노동권을 위한 대안으로 '안전배달료'를 제시한다. 화물차 운송에 도입되고 있는 '안전운임제'(화물차 기사의 낮은 운임이 위험한 운행을 강제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1월부터 시행된 제도로, 국토교통부가 정한 안전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경우 화물차주에게 과태료 500만 원이 부과된다)와 비슷한 제도다.

배달 플랫폼 기업들은 번쩍배달, 치타배달, 익스프레스 같은 이름으로 빠른 배달 경쟁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러는 동안 실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사고의 위험과 난폭 운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떠안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안전배달료'를 도입하자는 겁니다. 신호를 다 지키면서 가도 적절한 배달료를 받게 해 달라는 건데, 이게 합의가 잘 안 되죠. ... 소비자들도 비용을 더 지불할 생각이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 1부는 플랫폼 노동의 이면을 파헤친다. 2부에서는 필자 중 한명인 오민규가 오랜 기간 천착해 온 자동차 산업의 전환과 노동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마지막 3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공약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노동정책이 가야 할 방향성을 묻는다. 불편한 이야기도 많다. 노동자에게도, 연구자에게도, 그리고 '리버럴 정당' 민주당에게도. 그래서 '툭 까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노동에 대해 현장의 실체와 전문가의 사유를 엿보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 '토론'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 오민규, 더불어삶, 현장의 노동자들 지음 ⓒ숨쉬는 책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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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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