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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이 말한 '반지성주의'는 누구에게 해당하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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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이 말한 '반지성주의'는 누구에게 해당하는 말일까

[기자의눈]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으며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0시를 기해 업무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15분여에 걸친 취임사를 통해 새 정부의 국정의 밑그림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취임사에서 단연 도드라진 단어는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였다.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를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규정하고, 새 정부가 이를 극복해나갈 것임을 다짐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윤 대통령은 특정 집단에만 호소하는 논리 왜곡을 통해 내부자와 타자의 구분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게끔 기능하면서 내부자가 오직 자신이 보고 싶은 '사실'만을 취사선택하게끔 유도하는 '진실의 왜곡'을 반지성주의로 규정했다고 볼 수 있다.

반지성주의는 1950년대 미국에서 나온 개념이다. 당시 미국은 1960년대까지 이어진 자본주의의 황금기(Golden-era)를 지나는 동시에, 매카시즘에 의한 지성의 억압이 횡행한 격동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1963년 출간돼 국내에도 번역 출판된 <미국의 반지성주의>(유강은 옮김, 교유서가)의 저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말을 빌려 그가 내린 반지성주의를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비판적 지성이 처참할 정도로 경시되고 있다는 우려를 일깨운 것은 무엇보다도 매카시즘이었다. (...) 계란머리(egghead)라는 단어는 (...) 고상한 척하는 교양인(highbrow)이라는 기존의 표현보다 훨씬 신랄한 의미를 담게 되었다. (... 반지성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사고가 혼란스럽고 감상주의와 맹렬한 복음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그리스-프랑스-미국식 사고와 대립되는, 중유럽의 사회주의를 교조적으로 지지한다."

위 사례에서 보듯, 반지성주의 개념은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를 휩쓸어 미국 민주주의마저 위협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호프스태터는 당시 민주주의의 대척에 있던 전체주의 세력, 즉 공산(을 내걸고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던 구 소련을 위시한) 세력과 똑같은 논리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이들을 개탄하고, 오늘날 미국이 지성의 날카로움을 잃어가며 복음주의와 맹목적 광신에 빠진 사회로 타락해가는 현실을 고발했다.

이 책이 미국에서 재조명된 시기가 트럼피즘이 절정에 달했던 때라는 점, 아울러 국내에 번역 출간되던 시기가 일베가 사회문제로 조명되던때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 발 나아가, 반지성주의에서 '의지'를 찾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는 과거 <프레시안>에 기고한 '진지함은 벌레(蟲)가 되고, 의문은 반지성에 묻히다'라는 글(☞바로 보기)에서 반지성주의는 "무지나 무식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 아니"며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자라고 탁월히 정의했다.

미국에서도 매카시를 비롯한 숱한 지식인이 반지성의 대열을 이끌었듯, 오늘날 한국에서도 민주주의 원리를 공격하기 위해 반지성주의를 이용하는 이들은 오히려 지식인이다. 이라영 연구자의 글에서 나오듯 '어용지식인'을 자임하며 특정 정파를 옹호하기 위해 각종 논리를 갖다붙인 '지식인'은 물론,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기 위해 '사실의 파편'을 취사선택해 특정 프레임을 만들고, 이를 통해 그 주장에 옹호하는 이들을 결속해 외부의 지성을 차단하고 맹목적인 공격을 일삼는 이들이 대표적인 반지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 취임사의 '반지성주의' 사용은 매우 생뚱맞다. 윤 대통령이야말로 여성주의를 향한 공격, 즉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다양성을 옹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여성가족부)를 공격하며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약자의 언어를 강자가 '재전유'하고 '도용'해 오히려 약자를 공격하는 행태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물론이고 최근 한국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장애인은 비판의 성역이 아니고, 구조적 성 불평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공산당을 '멸'하자는 구호는 당연한 것이 됐다. 이런 것은 '반지성주의'가 아닌가. 

물론 반지성주의의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양태는 어느 한 진영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비유가, 지성과 반지성의 대립항 위에서 '지성'을 스스로 독점하고 상대 진영을 '반지성'으로 내몰기 위한 수사가 아니길 바란다. 

윤 대통령이 꾸짖은 '반지성주의'의 문제와 함께, 위험해 보이는 언어들도 감지된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서 '단 한 번만' 불평등 해소가 언급됐다고 한다. (☞관련 글 바로 보기) 그리고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언급했다. 그런데, 구조적 불평등 위에 올라선 자유는 매우 위험하다. 힘 센 자유가 힘 약한 자유를 누르는 걸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갓 출범한 정부를 출범 첫날부터 매몰차게 비판하는 건 옳지 못할 수도 있다. 글이 틀렸음을 윤 대통령이 앞으로 올바른 정책을 통해 입증해주기를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후 이동하며 연도를 메운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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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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