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희망은 윤석열
국민의힘의 희망은 민주당
두 정당은 서로 적대적이지만 동시에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공생관계의 정당들이다. 서로의 실수에 기대 서로의 존립을 유지해온 매우 희귀한 정치집단이다. 차이가 있다면 국민의힘은 지금 논란의 대부분이 윤석열 당선인에 기인하는 반면 민주당은 그냥 당 자체가 총체적 아수라장이라는 점이다.
'20년 집권'을 떠들던 사람들이, 고작 5년 만에 탄핵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고도 대선 패배에 대한 평가도, 반성도 없이 뭉개고 간다. 오랜 세월 '586퇴진론'이 당내에서 있어왔지만 해당 인사들은 역시나 못 들은 척 딴 데 쳐다보고 있다가, 대선에서 패하자 이번엔 지방선거가 급하다며 바쁜 척들이다.
바쁜 척 하려다 정말 바빠졌다. 지난 5년간 허송세월 하다가 정권 말 한 달을 남겨두고 갑자기 검수완박에 매진한다는데 정신이 다 없다. 법안이든 중재안이든, 또 그 수정에 수정안이든, 이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나 하고 달려드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꼼수를 연발하며 법안을 강행통과시키려는 다수당의 횡포와 오만에 민심이 떠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지방선거도 물 건너가게 생겼다.
처럼회 등장의 원인은 무엇?
이를 두고 혹자는 민주당 내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그룹은 십여 명의 초선 의원들로 구성된 처럼회 멤버들이다. 이들을 '강성'으로 분류하는 데에서 나아가 '처럼회 주장이 민주당 의견'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래서 최근 보수언론이나 진중권 같은 이로부터 이들 처럼회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그렇다면 지금, 정권 말 초읽기 상황에서 이들이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리더십 부재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선배들의 무능이다. 2017년 탄핵사태 이후 민주당은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기세등등하게 집권당이 됐지만 실상 해낸 것이 없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국민은 민주당을 무려 180석 거대 정당으로 만들어주기까지 했지만 결국 그들의 무능 때문에 2년 후 대선에서 심판 당했다. 핵심 과제 중에서도 첫 번째였던 검찰개혁은 우왕좌왕 하다가 되려 되치기를 당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는 역사에 길이 남을 희곡을 연출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엔 왜 리더십이 없을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자들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바로 누구? 586들이다. 그러니까 지금 민주당의 문제는 리더십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실상은 당내 최대 파벌인 586이 무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어느덧 686이 된 586
사실 586은 파벌이나 계파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왜? 이들은 스스로 주축이 돼서 정치세력을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96년과 2000년 총선에서 YS와 DJ의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운동권 386'이 '정치 386'으로 제도권에 화려하게 진입한 것이 이들 586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들은 선거흥행을 고려한 YS와 DJ의 '발탁 경쟁'에 의해 개인적으로 뿔뿔이 정계에 들어왔기에 세력으로서의 구심점도 없을 뿐 아니라, 공통의 가치나 목표도 없는, 이름뿐인 세력이다. 당내 패권 구도에 따라 왔다 갔다 하며 당권 경쟁 때 요직을 보장 받는 식으로 거래하는 구태정치를 답습해온, 개혁의 대상일 뿐이다. 사실 이들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규정할 이유가 없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대외적으로 개혁을 앞세우지만 당내에선 잇속을 챙기는 그룹'이 되어있었다. 과거엔 당의 참신성에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당의 외연확대에 오히려 걸림돌이 돼버렸다. '386'으로 시작해 '686'이 된 이들이 가장 자주 내세우는 것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신에 걸맞게 행동한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한때 586은 가장 각광받는 정치세력이었다. YS와 DJ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지역구를 선사했고 자금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수많은 언론을 통해 부잣집 도련님 대접 받으며 한국정치의 미래로 표상화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 강북과 경기도의 좋은 지역구를 차지하고선 호남출신 유권자에 의존하며 선수를 쌓아가는 기득권이 된지 오래다.
586의 진면목
그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되도록 대통령후보 한 명을 못 만들어낸 정치집단이 바로 586이다. 지난 대선 때도 대선후보는커녕 대권주자 한 명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결국 기초단체인 성남시장 출신의 이재명 후보가 이낙연 후보를 꺾고 당의 대선후보가 돼 1천6백만 표를 가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민주당에서 20년 넘게 정치를 해온 그 많은 586들이 단기필마 이재명 한명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참고로, 이재명 다음으로 가장 지지율 높은 586정치인은 안철수다.) 대통령후보는 하늘이 내는 사람이라고? 그러면 수준을 낮춰 광역단체급으로 가볼까? 민주당 586 중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누굴까? 이광재, 안희정, 송영길, 김경수가 전부다. 그런데 이 중 이, 안, 김은 '386본류'라기 보다는 노무현을 돕다가 나중에 정치에 뛰어든 인물들이다. 결국 정통(?)586 중 광역단체장을 지낸 이는 맏형 격인 송영길 한 명인데 그마저도 밭 좋다는 인천에서 재선에 실패하고 지금은 서울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후보 민주당 경선엔 염태영 전 수원시장, 안민석 의원, 조정식 의원, 그리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나섰다. 염, 안, 조 모두 586으로 각 3선, 5선, 5선의 경력을 가진 관록의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합이 13선'인 이들 586이 정치초년생 김동연 한 사람을 당하지 못했다. 김동연이 과반을 획득해 결선투표 가능성을 일축하고 경기지사 후보로 확정됐다. 당심과 민심 모두 김동연이 압도했다.
'386'으로 출발해 '686할아버지'가 된 이들에 대한 평가는 혹독하다. 한국정치사에서 세력으로서 가장 무능한 집단이 바로 '정치586'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러한 주변의 비판을 애써 못들은 척, 못 본 척한다. 대선 직전 혁신안으로 등장했던 '동일지역 3선 이상 연임금지'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지금도 '졌잘싸'를 주장하며, 또 지방선거를 핑계 대며 주변으로부터의 눈초리를 피해간다. 지금 이들의 희망은 윤석열이다.
'편의점 정치'의 시대,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십은?
공동의 가치도, 목표도 없고 또 구심점도 없는 민주당에서 초선들이 목소리를 내니 다들 눈치만 보며 따라가는 모양새다. 민주당의 리더십 부재는 선배들의 무능 때문이다. 결국 당의 방향을 잡고 목표를 세워 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 맞는 사고와 시선을 가진 정치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대표적 586정치인 김영춘은 "나를 정치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거대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민주주의나 통일 등 이념에 기반한 정치가 아닌, 일상 속 행복을 추구하는 정치의 시대가 온 것이다.
사실 이념이나 미래비전을 보고 투표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공정, 기회의 균등, 나의 행복이 더욱 중요해지고 나의 권리, 나의 재산이 침해받는 것에 예민해진 세상이다. 결국 판단의 핵심은 '나'이다. 또 이러한 정치소비자들이 진열대의 상품 고르듯 공약을 쇼핑하는 시대가 되었다. 또 요즘 2030이 그러하듯 자기가 필요할 때 가서, 필요한 것만 골라 사는 '편의점 정치'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금 민주당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화답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재명 상임고문은 어쩌면 시대가 불러낸 정치인이다. 유시민은 이재명을 두고 "처음 보는 유형"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념의 울타리도 넘나드는 낯선 정치인이다. 이념보다는 민생과 특히 서민을 우선시 하는 실용주의자다. 사실 '소확행' 등 지난 대선 그가 선보인 수많은 민생공약들은 그의 관심이 정치개혁에서부터 유원지 계곡에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이재명, 김동연, 박지현은 민주당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경기도지사 후보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이제까지 민주당이 가져보지 못한 정치인이다. 우선 우리나라를 개인소득 3만불 국가에 진입시킨 경제사령탑이라는 점이 그렇다. 또 최고위관료 출신임에도 퇴임 후 국민의힘 측 영입제안은 물론 수많은 전관예우 제안을 피해 아예 시골로 내려가 유쾌한 반란이라는 재단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이어갔다는 점이 새로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총리 제안마저 거절한 것을 보면 정치를 생각한 것 같긴 한데 그게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물결'이라는 사실상 1인 정당이다. 공직 퇴임 후 3년 간 정계, 재계의 유혹에 흔들림 없이 버티며 스타트업 정당을 창당하고, 부총리 출신임에도 민망한 수준의 거리유세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고집스러움은 우리를 궁금하게 한다. 게다가 관료 출신임에도 대선공약으로 행정고시 폐지, 공공부문 혁신을 내세우는 등 개혁성이 강하다. 자신이 경험한 6명의 대통령 중 가장 잘 맞는 대통령으로 노무현을 꼽기도 했다.
'텔레그램 n번방'을 추적해온 '불꽃'의 활동가 출신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에 맞설 수 있는, 어쩌면 그를 능가할 정치적 재목이다. 민주당에 등을 돌렸던 여성들을 다시 민주당 쪽으로 돌려세워 대선 막판 이재명 후보의 상승세를 가능케 했을 뿐 아니라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당원 입당 러시를 이끌어냈다. 대선 다음날인 3월10~18일 사이, 민주당에 입당한 사람이 13만 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이 8만 명이 넘는다.
비대위원장으로서 그는 이제까지 민주당 내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일에 제동을 걸었고 당 내에서 아무도 하지 않던 (사실은 못했던)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성희롱 등 성범죄·성 비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 도입, 지방선거 청년·여성 공천 상향, 안희정 부친상 조화 비판, 검수완박 신중론, 편법 탈당 비판, 조국 전 장관 직접 사과 요구 등을 연이어 공개적으로 말했다. 당내 불만이 없지 않다. "제발 이제 좀 그만 하시라"는 반발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박 위원장은 민주당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세계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워 주는 보석 같은 존재다.
이재명은 언제 당의 부름을 받고 복귀할 수 있을까. 김동연은 이번 선거 최대 격전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생환할 것인가. 박지현은 비대위원장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그 다음을 이어갈 것인가.
사실 이는 시작일 뿐이다. 민주당은 과연 변모할 것인가. 그리고, 586은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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