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프레시안>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싹이 되고, 인권 감수성을 돋우는 생각의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지하철을 타러 가는 아침 7시, 여느 평범한 아침은 아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하는 지하철 선전전에 가기 위해 경복궁역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승강장에서 삭발 후 혜화역으로 이동하려 장애인 동료들과 지하철에 같이 탔다. 감동이 벅차올랐다. 삭발 기자회견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의 발언도 좋았지만, 사람이 많은 출근 시간에 장애인 동료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지하철을 타는 경험이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대중교통에서 장애인을 본 적이 전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애인 활동가들의 시위 덕에 나는 특별하고 감동적인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이 비장애인의 전유물이 아닌 진짜 대중교통이라는 증명은 출근길에 마주치는 장애인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요구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6일부터 전장연은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 승하차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권리를 권리답게, 예산 없이 권리 없다'는 요구다. 기획재정부에 이동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를 담은 장애인 권리예산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인수위가 있는 3호선 경복궁역에서 승하차 시위를 하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에 장애인 혐오와 시민들을 갈라치기 하는 글을 연속적으로 남겼다. 그러자 인수위와의 면담이 성사됐고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까지 답변을 기다리기로 하고 그때까지는 승하차 시위를 중단하고 릴레이 삭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전장연이 인수위에 요구를 전달하면서, 전장연은 혐오 글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으나 이준석 대표는 거부했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 혐오 논란과 장애인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4월 13일 이준석 대표와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의 1:1 토론이 성사되었다. JTBC에서 생중계된 토론회는 3시간 동안 대면으로 이뤄줬다.
"21년을 외쳐도"
토론회는 박경석 대표가 정치인인 이준석 대표에게 장애인의 처지와 정책의 현실을 알리고 권리보장을 위해 왜 예산이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단지 이동권만 보장하라는 시위가 아니라고 했으나 이준석은 이동권으로만 좁히려고 했다. 이동권은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일과를 계획할 권리 등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1999년 혜화역 리프트 사고,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사고 이후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본격화되었다. 장애인들은 21년 동안 다양한 집회·시위로 장애인 이동권을 외쳐왔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이준석은 혐오로 반응했던 전장연의 시위 방식을 문제 삼았다. 그는 "출근하는 과정 중에 지연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용인이 된다고 보는데, 고의가 들어가서 아예 문을 막는다, 이건 무조건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라며 지하철을 지연시킨 고의가 있는 투쟁이 문제라고 보았다. 또 "도대체 시위하는 데 연막탄은 왜 쓰십니까?"라고 물었다.
헌법 21조 1항에 명시되어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집회 방식이 타인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폭력이 아닌 이상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인 권리예산을 기획재정부와 인수위의 약속으로 관철하기 위한 지하철 투쟁은 당연히 의도를 갖고 한다. 공연용 연막탄을 집회에서 이용하기로 정하는 것도 집회주최자들의 권리이다. 이준석은 시위 방식을 빌미로 시위 자체를 문제 삼았다. 시민들의 일시적 불편을 극대화 표현하여 시위에 응답하기는커녕 문제 해결에 나설 정치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저희는 100% 주의가 아니에요"
이준석은 페이스북에서 장애인 이동권 요구에 대해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을 가지고 반박하였다. 토론회에서는 박경석 발언에 "속도", "합리", "100%"란 단어들을 반복 사용하며 토론의 흐름을 흩어 놓으려 했다.
성과로 자랑 되는 93.0% 뒤에는 대중교통에서 장애인이 위험할 수 있다는 수많은 증언이 가려져 있다. 최근 양천향교역에서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던 지체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려다 뒤로 넘어져 사망했다. 엘리베이터에는 이미 사람이 많아 탈 수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안전 차단봉은 없었다. 오이도역 리프트 사망 사건이 21년 지났음에도 지하철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언제까지 저상버스를 도입할 건지'를 묻는 박경석의 물음에 이준석은 지하철 시위에 대한 주제 또는 저상버스를 100% 도입할 예산이 안 된다는 답변으로 동문서답했다. 이준석은 전장연의 요구가 권리예산 보장임을 가린 채, 21년간의 기다림에 또 기다리라 했다.
"이준석 당신은…"
이준석은 페이스북을 통해 3월 25일부터 전장연과 그의 투쟁을 공격했다. 그는 전장연의 요구에 "시민의 출퇴근을 볼모 삼는 시위"라며 혐오적인 판단만을 내세웠다. 그는 장애인 삶과 권리를 묵살할 수 있는 혐오의 언어를 가르쳤다. 이준석의 혐오 교육 효과는 토론회 실시간 댓글 창에서 나타났다. 혐오 댓글들은 박경석이 준비한 그래프(이준석의 전장연 시위 언급 이후 늘어난 혐오‧악플 댓글 비율이 증가함을 보여줌)의 처참한 증거자료가 되었다.
이준석은 공당의 대표이다. 혐오 선동에 앞장설 것이 아니라 장애인 권리 정책과 예산을 마련하고 투쟁에 답을 해야 하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역할을 방기한 채 토론회에서 농담과 말꼬리 잡기를 하는 그의 태도는 청취자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결국 이준석은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아냥거렸다. "투쟁은 항상 세게 하시는데 어휘에는 되게 민감하신 보시네요? 볼모라는 표현에 그렇게 마음이 상하셨다면?"
문명은 우리가 만든다
토론회인 듯 토론회 아닌 토론회가 끝났다. 토론회에서 이준석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무책임하고 뻔뻔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3월 28일 국민의 힘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준석은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예산 투쟁을 두고 "선량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서 뜻을 관철하겠다는 방식은 문명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준석이 말하는 문명은 계단이 있어도 괜찮고 점자유도블록이 없어도 괜찮은 비장애인 중심 문명이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문명은 짧게는 21년간 기다려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4월 12일, 삭발투쟁 현장에 연대하러 가면서 박스로 피켓을 만들어갔다. 피켓에는 '문명은 우리가 만든다'라고 적었다. 그나마 지금의 문명은 "시민들이 봤을 때"에 "적정"한 시위나 정치가 정책과 예산의 우선순위를 검토함으로써 만들어지지 않았다. 문명은 억압·차별 구조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는 불편한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사다리와 쇠사슬로 표현된 차별을 깨고 싸우는 장애인이 이뤄낸 문명이다.
영화 <크립 캠프 : 장애는 없다>는 1970년대 미국의 장애인 인권운동과 그 시작이 된 캠프 제네드를 소개한다. 캠프 제네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노는 공간이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춤추고 수영하며 노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장애인이면서 캠프 지도교사였던 주디 휴먼은 캠프 이후 장애인 차별을 직면하며 투쟁에 나선다.
1972년, 주디 휴먼과 캠프에서 만난 동료 장애인들은 차별 금지 조항인 재활법 504조에 닉슨 대통령이 서명하기를 요구하며 뉴욕 교통을 마비시켰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자기도 했고 버스를 가로막았다. 이후 법은 통과됐지만, 엄청난 예산 소요를 이유로 5년 동안 시행되지 않자 다시 거리로 나왔다. 보건교육복지부 샌프란시스코 지사 건물을 24일 동안 점거 농성한 후에야 미국 재활법 504조는 시행됐다. 모든 공공 및 개인 장소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불편을 일으키는 시위는 50년 전 미국에서 이미 일어났다. 그 결과 1990년 미국 장애인법을 제정하기까지 이루었다.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것은 소수자의 투쟁들이다. 이준석 장애인 혐오 사건을 겪으며, 장애가 없어진 문명사회를 살기 위해 우리의 투쟁은 더 커질 것이고 연대는 더욱 끈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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