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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오판, 미국의 아프간 철수 의미를 잘못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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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푸틴의 오판, 미국의 아프간 철수 의미를 잘못 해석했다"

[해외시각] 미국의 '과도한 자신감' 역시 '푸틴의 오판' 따라갈 수 있다

예상을 뛰어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또한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우크라이나의 선전과 러시아의 고전으로 세계는 신냉전(New Cold War)의 초입에 들어섰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군사 대결 및 경제 제재에 나섰으며, 러시아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미국의 에너지 및 군사 전문가 마이클 클레어 뉴햄프셔대 교수는 전쟁의 승패는 단순한 군사력의 우위가(힘의 균형) 아니라 병사들의 전투 의지, 국민들의지지 정도, 외부 동맹국의 지원 등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힘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간과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러시아가 세계적 '힘의 상관관계'를 무시한 채, 즉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를 과소평가 하고, 지난해 미국의 아프간 철수를 미국의 퇴각으로 잘못 판단한 결과 결정적 궁지에 몰린 반면, 미국은 매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미국이 현재의 우월한 입지를 과신해 푸틴 제거나 중국에 대한 포위 강화 등 무모한 시도에 나선다면, 세계는 자칫 핵전쟁의 참화를 겪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역시 객관적 '힘의 상관관계'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통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레어 교수의 이러한 평가와 전망은 미국의 진보 매체 톰디스패치(https://tomdispatch.com/) 4월 3일 자에 "'힘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 중국의 상황 오판, 그러나 미국이 자제해야 하는 이유(Understanding "The Correlation of Forces" : Why Russia Fumbled in Ukraine, China Lost Its Way, and America Should Exercise Restraint)"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전쟁 상황을 예견하고 분석할 때 '힘의 균형(balance of forces)'이란 말을 흔히 사용한다. 양측의 탱크, 전투기, 군함, 미사일의 보유 현황,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 동원 및 배치 상황을 비교할 때 사용되는 용어로, 만일 전투 자산이 적의 두 배이고, 양측 지휘관의 능력이 비슷하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대부분의 서방 분석가들은 이러한 계산에 기초해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군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 군이 병력 숫자나 전투 장비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 군을 사실상 멈춰 세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앞으로 수 년 간, 군사 이론가들은 이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 군의 충격적 실패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군사 방정식, '힘의 상관관계(correlation of forces)'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힘의 상관관계'는 원래 옛 소련에서 탄생하고 발전된 개념으로 (병사들의 사기 등) 전투의 비물질적인 요소를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힘의 균형'과 차이가 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어떤 군대가 병력, 무기 측면에서 열세라 하더라도 병사들의 사기가 높고,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가 있으며, 주요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상대를 이길 수 있다.

만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힘의 상관관계'에 의한 분석을 했더라면, 우크라이나가 열세일 것이라는 당초 러시아나 서방 분석가들의 예상과는 다른, 러시아 쪽이 훨씬 불리하다는 예측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의 실제 전개 상황은 '힘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그랬다면 엄청난 오판과 이에 따른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힘의 상관관계

힘의 상관관계란 개념은 군사 및 전략적 사고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의 에필로그에서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던 나폴레옹의 패배는 카리스마 있는 러시아 군사 지도자의 우월한 지도력 때문이 아니라 조국을 침략한 적을 물리치려는 일반 병사들의 강력한 전투 의지 때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생각은 나중에 러시아 볼셰비키들의 군사 독트린에 흡수됐다. 볼셰비키는 전쟁을 결정하는 데 있어 병력과 무기뿐만 아니라 양측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정도, 일반 국민의 지지 정도를 면밀히 계산했다. 예를 들어 1917년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후, 트로츠키가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한 '혁명전쟁' 수행을 주장한 데 대해 혁명지도자 레닌은 힘의 상관관계가 불리하다며 독일과의 전쟁 지속에 반대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각적인 혁명전쟁을 벌이자는 주장의 핵심은 아름답고 장엄하며 선함에 대한 인류의 소망에 부응해 궐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회주의 혁명이 막 시작된 현 단계, 계급의 힘과 물질적 요소들의 객관적 힘의 상관관계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레닌 시대의 볼셰비키들에게 힘의 상관관계는 물질적 요소와(양측의 병력과 무기의 규모) 정신적 요소(계급의식의 정도 등) 모두에 대한 평가에 바탕을 둔 '과학적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1918년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 가련한 러시아 농민은 즉각 중요한 혁명전쟁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현재의 문제와 관련해 이러한 객관적 힘의 상관관계를 무시하는 것은 치명적 실책이 될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1918년 3월 막대한 영토를 포기하면서까지 독일과 단독 강화를 체결하고 1차 대전에서 발을 뺐다.

이후 스탈린 독재 하의 소련 공산당에서 힘의 상관관계는 당의 중요한 신조 중 하나가 되었고, 이들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길 것으로 확신했다. 흐류쇼프와 브레즈네프가 이끌었던 1960년대와 70년대, 소련 지도자들은 세계 자본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몰락에 접어든 반면 사회주의 진영은 '제3세계' 혁명 정부의 가세로 결국 세계적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러한 소련의 낙관주의는 1970년대 말까지 이어졌는데, 마침 이때부터 제3세계의 사회주의 물결은 퇴조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프가니스탄 공산정부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저항이었다. 소련이 지원하는 카불의 인민민주당 정부가 이슬람 저항세력(무자헤딘)의 도전을 받자 소련은 아프간을 침공해 점령했다. 이후 10년간 소련은 점점 더 많은 병력과 무기를 투입했으나 끝내 무자헤딘 격퇴에 실패했다. 결국은 소련군은 패배한 채 1989년 아프간에서 철수했고, 2년 후 소련 자체도 붕괴했다.

소련이 끝없는 손실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군사 개입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미국의 전략가들은 소련 지도자들이 힘의 상관관계를 무시한 증거라고 판단했고 이러한 소련의 취약점을 활용하기로 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는 (아프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공 전사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대주면서 친소련 정부를 공격하도록 지원했다. 이른바 레이건 독트린이다. 중앙정보국(CIA)이 구축한 비밀 통로를 통해 엄청난 양의 무기가 무자헤딘과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 등에게 제공됐다. 이러한 비밀공작이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소련 지도부에게는 커다란 골칫거리가 됐다.

이미 1985년 당시 국무장관 조지 슐츠가 자랑했듯이, 소련 지도부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패배로 "세계적 힘의 상관관계가 소련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믿게 됐지만 이후 아프간 등에서의 미국의 비밀공작으로 "이제 '힘의 상관관계'는 다시 미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실제로 소련의 아프간전쟁 패배는 힘의 상관관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였다. 소련 병사들을 훨씬 능가하는 무자헤딘의 전투 의지, 전쟁에 대한 소련 및 아프간 국민의 낮은 지지, 그리고 CIA에 의해 제공된 막대한 외부 지원 등의 요소를 간과한 탓이다.

그러나 교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역시 아랍 출신의 지원병들을 무장시키고,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의 지휘 아래 국제 지하드 조직, 즉 알카에다를 결성하도록 허용한 것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 것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9.11테러를 감행했고, 이는 자그마치 20여년에 이르는 '테러와의 전쟁'을 초래했다. 미국은 지난 해 8월 대테러전쟁을 종료했으나 테러 위협은 제거하지 못했으며, 수 조 달러의 전쟁 자금을 탕진했고 군대는 약화됐다. 미국 지도자들 역시 2001년 자신의 아프간전쟁을 시작하면서 소련의 패배를 초래한 요인들을 무시함으로써 32년 후 똑같은 운명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철군하는 과정에서 자살폭탄테러로 전사한 미군의 관을 미국 해병대원들이 수송기 안으로 운구한 뒤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의 우크라이나 오판

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된 푸틴의 오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것들이 얘기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이번 침공과 관련된 힘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점, 특히 이러한 실수의 원인은 푸틴이 지난 해 미군 아프간 철수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워싱턴의 많은 사람들, 특히 공화당 내 네오콘 분파와 마찬가지로 푸틴과 측근들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아프간 철수를 미국이 약해졌다는, 특히 서방 동맹이 해체되고 있다는 결정적 신호로 받아들였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미국의 힘이 전면적으로 후퇴하고 있으며, 나토 동맹국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됐다고 믿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 대외정책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다"고 러시아 국회의장 뱌체슬라프 볼로딘은 말했고 다른 고위 지도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표명했다.

이에 따라 푸틴과 핵심 측근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할 수 있다고 믿게 됐는데, 이것이야말로 세계적 상황에 대한 근본적 오판이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과 미군 고위 지휘관들은 아프간에서 발을 빼길 원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훨씬 더 중요한 과제에 미국의 힘을 집중시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봉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미국의 아시아 및 유럽과의 군사동맹을 재활성화 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은 2021년 5월 발표된 '국가 안보 전략 지침'에서 확인된다. 보고서는 "앞으로 미국은 수 천 명의 인명과 수 조 달러의 자금을 낭비한 '영구 전쟁'을 해서는 안 되며,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미국은 "적을 억지하고 우리의 이익을 수호하며...(이를 위해) 인도태평양과 유럽 지역에서 미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오판의 결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의 측근들이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취약하고 분열된 서방이 아니라 새로운 활기를 얻은 미국-나토 동맹이 단호한 의지로 우크라이나에 핵심 무기를 공급하는 한편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병력이 폴란드를 비롯해 러시아에 인접한 '최전선 국가'들에 배치되면서 러시아의 장기적 안보는 오히려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 특히 러시아의 지정학적 계산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독일이 이제까지의 평화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나토 방침에 전면 동참하는 한편 대규모 국방비 증액을 결정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푸틴의 최대 오판은 러시아 군과 우크라이나 군의 전투 능력 평가에 있었다. 푸틴과 측근들은 자신들이 보낸 군대가 과거 (나치 군대를 물리친) 소련의 적군과 같은 막강 병력이라고 확실히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2022년의 러시아 군은 그보다 훨씬 약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침공하는 러시아 병사들을 두 팔을 벌려 환영하거나, 아니면 저항하는 시늉만 하다가 곧바로 항복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점이다. 이 말이 믿기지 않는가. 침공 직전 푸틴의 연설에는 바로 이러한 (잘못된, 그러나 확고한) 믿음이 드러나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사실상 러시아인과 같은 한 민족이며 진군하는 러시아 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할 것이라는 믿음.

무엇보다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보내진 러시아 병사들이, 단 며칠 분의 식량과 연료와 탄약만을 지급받았을 뿐이며, 따라서 장기간의 전투에 대한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이들 병사들의 사기가 매우 낮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반면 자신의 가족과 조국을 지키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들은 길고 느려터진 보급 탓에 사기가 떨어진 적의 약점을 공격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안기고 있다.

우리는 또한 러시아의 고위 정보 관리들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의 정치, 군사 상황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보고함으로써 푸틴으로 하여금 단 며칠의 전투만으로 적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침공 이후 푸틴은 세르게이 베세다(KGB의 후신인 FSB의 대외 정보 담당 책임자)를 비롯해 정보 관리 몇 명을 체포하도록 했다. 체포 이유는 국고 횡령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 인권운동가 블라디미르 오세크친은 이들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정치 상황과 관련해 신뢰할 수 없고, 불완전하며, 부분적으로 날조된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잘못된 상황 평가

역사적으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외부의 적과의 관계에서 힘의 상관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전쟁 당시 중국은 북베트남에 상당한 정도의 군사 지원을 하면서도 미국이 반격의 필요성을 느낄 만큼 적대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마찬가지로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면서도 아직까지는 무력의 의한 통일 시도는 자제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우월한 미국과의 전면 전쟁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이번에 중국 지도부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이나 침공 이후 양 측이 치열한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중국 지도부는 오랫동안 우크라이나 지도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틀림없이 자국의 전투 능력에 관해 중국 측에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가 러시아의 침공, 이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격렬한 저항이라는 일련의 사태 전개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한 서방 측 정보기관이 위성사진을 통해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거 배치되고 있으며 이는 침공의 전조라는 결론을 내렸듯이 중국 정보기관 역시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푸틴의 전면 침공 조짐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들을 제시했을 때 중국 지도자들은 이는 단순한 선전 목적일 뿐이라는 모스크바 측의 주장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 결과 미국과 기타 서방 국가들이 침공 직후 자국민을 해외로 대피시킨 데 반해 중국은 우크라이나 내에 있던 자국민 수 천 명을 탈출시키지 못했다. 나아가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사소한 치안 유지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중국 정부는 현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또한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 및 유럽의 격렬한 반발을 너무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 고위 지도부 내의 정책 토의 내용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도 이들 역시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미군 아프간 철수의 의미를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중국은 미국이 세계적 관여에서 퇴각하고 있다고 본 것 같다. 예를 들어 관영 환구시보(Global Times)는 2021년 8월 "만일 미국이 아프간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중국과 같은 강대국과의 경쟁에서 어찌 이길 수 있다고 하겠는가?"라면서 "탈레반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아프간을 장악한 것은 미국이 지배적 강국 간의 대결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오판-러시아 침공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대응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비 강화는 중국의 판단이 틀렸음을 보여준다-으로 말미암아 중국 지도부는,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베이징에 대해 러시아에 물자 지원을 하지 말 것과 서방의 경제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러시아의 중국 은행 이용을 허용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하면서 어색한 처지에 몰렸다. 지난 3월 18일 시진핑 주석과의 영상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만일 중국이 러시아에 물자 지원을 할 경우 엄중한 결과가 뒤따를 것임을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도 여기에는 러시아 기업이나 기관들을 위해 일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도 포함됐을 것이다. 바이든이 중국 지도자에게 그러한 최후통첩을 날려도 괜찮다고 느꼈다는 것은 이제 워싱턴이 위험스러울 정도의 정치적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자신감의 원천은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가 무력해졌다는 데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21년 6월 16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의 '라 그랑주 빌라'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습.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과도한 자신감을 경계하라

실제로 오늘날 세계적 힘의 상관관계는 미국에 유리해졌다. 그러나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이러한 상황 변화를 우리 모두는 우려해야만 한다. 주요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침공에 반발해, 또는 중국의 부상을 우려해 미국 주위로 결집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주요 적대국들의 미래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분할 점령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앞으로 러시아의 위상은 분명히 축소될 것이다. 석유 수입에만 의존하는, 침공 이전에도 이미 취약했던 러시아는 서방 세계와 단절된 채 영원한 후진성 속에 저주받게 될 운명이다.

이미 러시아는 축소됐고, 이 무너져가는 나라를 주요 파트너로 삼아 그토록 높은 기대를 걸었던 중국도 같은 운명을 맞게 될지 모른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보다 더 큰 모험에 나설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여길 수도 있다. 예컨대 러시아의 "정권 교체" 또는 중국에 대한 포위 강화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3월 26일 푸틴에 대해 "이 자를 권좌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바이든의 발언은 그러한 미래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이후 백악관은 "푸틴이 이웃 나라에 힘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고 발언 의미를 정정했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최근 들어 국방부 관리들이 대만은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국의 핵심 국익 수호에 핵심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공공연히, 여러 차례 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미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포기하고 대만을 독립국가로 공식 인정하며 미국의 군사적 보호망 속에 편입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앞으로 수 개 월 동안 이러한 움직임의 독실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미국이 지구의 유일한 초강대국이라고 꿈꾸고 있는 워싱턴의 전문가와 정치인들은 지금이야말로 미국의 적들을 쳐부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과잉 팽창(overreach)-미국의 능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험과 이에 따른 새로운 재앙-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진정한 위험이다.

러시아에 대한 정권 교체 시도는(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미국의 리더십을 지지하고 있는 많은 외국 정부들로 하여금 미국에 등을 돌리게 할 것이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대만을 갑작스럽게 미국의 군사적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미국도 중국도 원치 않는 전쟁을 일으켜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 힘의 상관관계는 미국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까딱 잘못했다간 이런 상황은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세계의 세 "강대국"들이 각각 그들이 직면한 힘의 상관관계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러시아의 고위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거론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어느 한 강대국의 과잉 팽창이 초래할 그 무시무시한 결과에 대해 마땅히 우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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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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