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손잡았던 이재민 할머니, 주거지원비는 못 받는다?
지난달 23일 아래와 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김옥자 할머니(93)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18일이었다. 앞서 13일 동해안 산불이 공식적으로 종료됐고, 기자는 이후 닷새가 지나서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 마을회관을 찾았다. 산불이 끝난 현장에도 여전히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을 거란 판단이 늦은 강원도행의 이유였다. (☞관련 기사 :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불탄 집 빚내서 다시 지으래요")
회관엔 산불로 집을 잃은 김 할머니가 홀로 거주하고 있었다. 대면은 처음이었지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방문하기 3일 전까지만 해도 꽤 많은 기자와 정치인이 이곳을 찾았다. 그만큼 많은 뉴스에서 김 할머니의 사연을 다뤘다. 현장을 찾은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편안히 돌아가실 수 있게, 잘 지원해드리겠다" 약속하기도 했다.
산불로 집 전체를 잃은 김 할머니가 "정부 주거지원비 1600만 원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김 할머니의 아들 이정만 씨(63)는 할머니가 산불 당시 "자다가 몸만 빠져 나온 탓에" 집에 보관하고 있던 매매계약서가 소실돼 "전소된 집의 소유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사정을 털어놨다.
집문서 없어졌다고 소유권 사라지는 시대가 아니다. 다만 40년쯤 전에 시골 마을에서 이뤄진 거래라는 점이 문제였다. 이 씨의 부모, 그러니까 김 할머니와 그의 남편은 거래 당시 토지소유권이전등기는 완료했지만 토지 위의 집에 대한 건축물소유권이전등기는 실수로 빠트렸다. 게다가 거래 당사자인 매도인도 그 아들도 모두 사망한 뒤였다. 당시 어렵게 매도인의 손자를 찾아낸 이 씨는 그에게 매매사실을 증명해달라고 부탁한 참이었다.
사연은 안타까웠지만 사실 그렇게 큰 걱정이 들지는 않았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아는 35년간의 거주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김 할머니의 집처럼 소유권이 명확치 않은 경우도 시골에서는 '그런 집 많지'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큼 흔한 경우다. 서울로 돌아와 전화해본 몇 개의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도 모두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관련인의 증언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증명될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그렇게 김 할머니의 이야기를 며칠간 잊고 지내다 그의 메일을 받았다. 설마 했던 지원비 1600만 원이 정말로 '못 받는 돈'이 됐다는 메일. 먼저 든 감정은 의아함이었다. 대체 왜? 그 다음은 걱정이었다. 자식들의 집을 전전하다 "다른 데선 도저히 못 살겠다"고 마을회관에 남길 택한 김 할머니였다. 안 그래도 부족할 지원금을 못 받는다니, 그가 느낄 좌절감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그의 모습을 담아가던 유명 정치인과 언론인들에게 할머니는 또 어떤 배신감을 느낄까. 그 다음에야 부끄러움을 느꼈다. 안일한 마음으로 취재원의 상황을 제대로 취재하지도, 기사에 담아내지도 못했다. 추가 취재는 당연한 과제였다.
허무하게 해결된 '소유권 증명' 분쟁 … 김옥자 할머니 사례로 끝일까?
소유권 인정의 문제였다. 이 씨는 주택 매매확인증명서를 매도인의 손자와 함께 임의 작성해 면에 제출했지만, 재난지원 집행부처인 강릉시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적 증빙자료 없이 개인 간에 작성한 문서만으론 소유권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게 시 측의 입장이었다.
강릉시청 재난안전과 소속 담당 주무관은 "(주택에 대한) 과표도 잡히지 않는데, 소유자 측이 가진 매매계약서도 없다고 하니 도저히 (소유권을) 인정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난처한 입장을 설명했다. "강원도청에도 행정안전부에도 질의해 봤지만 모두 어쩔 수 없는 경우라 답해 왔다"고도 했다. 이런 경우 예산을 집행한다고 해도 시민의 민원이나 상위기관의 조사가 들어왔을 때 시청 입장에선 방어해낼 방법이 없다.
결국 토지의 소유권도 인정되고, 그 토지 위에 집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되며, 그 집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마을의 모두가 인정하는데도 김 할머니는 그 집에 대한 '행정상의'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산불 당시 대피하는 김 할머니의 모습은 전국으로 대서특필 됐고, 몇 년 전엔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해당 집에 살고 있는 김 할머니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낸 적도 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산불 이재민이, 더구나 언론과 정계에서도 몇 번이나 찾아갔던 '단골' 이재민이, 정작 그 피해에 대한 지원은 받지 못하게 된 꼴이다.
피해조사와 지원비 집행은 시가 주관하지만, 전체적인 지침을 규정하는 일은 행안부가 주관한다. 행안부 재난관리실 복구지원과로 연락해 입장을 구하자, 담당 사무관은 잠시 시청 측과 이야기 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몇 분 후 놀랍고도 허무한 일이 벌어졌다.
김 할머니 모자가 느꼈던 막막한 한 주가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유권 인정 문제가 빠르게 해결됐다. 사무관은 "행안부 지침 상 김 할머니의 상황이 지급불가사례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를 강릉시 측에 전달하자 시청 건축과에서 재조사에 나섰고, 재조사 결과 착오로 누락된 과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해결됐으니 다행이라 하겠지만, 그 과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기자의 전화 몇 통으로 해결될 만한 작은 실수가 지원금 1600만 원의 지급 여부를 뒤바꿨다는 점도 아찔했지만, 행안부와 강릉시의 서로 다른 지침 적용 방식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행안부와 통화하기 전, 시청 재난안전과는 분명 "행안부에도 이미 질의했다"고 말했다. 다만 질의는 구두로 이뤄졌기에 어떤 직원이 어떤 연유로 그런 답변을 한 것인지는 규명할 수 없었다.
행안부 측은 "만약 과표가 끝내 나오지 않았을 경우엔 결국 지급이 불가능 했나"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번 동해안 산불 피해지원에 대해 행안부는 "가능한 폭넓게 지원하는 쪽으로 지침을 규정한 상태"고, "비슷한 민원이 들어와도 (어떤 방식으로든) 실거주가 증명만 되면 지원받을 수 있다고 답변하는 게 행안부 지침"이라고 했다.
반면 시 측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재난안전과의 A 주무관은 "세금, 성금으로 모아진 지원비를 집행하는 시청의 입장에선 아무리 행안부 지침이 그렇다 해도 공적 증빙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예산을 집행하기가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누군가 (지원금 수혜자에게) '공적 증빙이 없는 상황에서 지원금을 타갔다'는 식으로 민원이라도 걸면 (민원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할 말이 없다. 이 경우 시청 측 관계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김 할머니의 경우도 과표가 나오지 않았다면 지급불가 방침을 번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 설명했다. 이에 행안부 측은 다시 "이번과 비슷한 사례의 다른 민원이 들어온 경우는 없지만, 만약 들어온다면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취재의 뒷맛이 아무래도 찝찝했다.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가 시청의 말만 듣고 민원을 포기했다면? 그리고 그것도 '실수'였다면?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은 '행정의 빈틈', 고통은 취약계층의 몫이다.
주거지원비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이 씨에게 전하자, 그는 몇 번을 "감사하다"면서도 "어머니껜 더 확실해지면 전하겠다"고 말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라, 혹시나 또 결과가 뒤집히면 속상해 할 어머니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업무가 대충 정리될 무렵 그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이 씨의 말에 뿌듯함과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다시금 아찔해졌다. 산불 이슈가 완전히 지나간 시점에, 공당의 비대위원장이나 차기 대통령 당선인도 더 이상 갈 일 없는 현장에서 벌어진 이 사소한 '행정의 빈틈'에 많은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긴 어려웠을 테다. 그 맥락을 잘 알기에 더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삶이 선의나 우연, 혹은 '아는 기자' 따위의 인맥에 맡겨지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작은 사례를 가지고 누군가의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게 아니다. 김 할머니 메일에 답신을 보낸 기자의 행위를 어떤 특출한 선의라 포장할 수 없듯, 지원금 지급에 대한 강릉시의 원 판단도 어떤 특출한 악의라 생각하지 않는다. "행정이 '공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그들을 (자의적 판단으로) 적절하게 지원하기엔 매뉴얼이 확실치 않다"는 시 측의 항변은 아마도 진심이자 어느 정도의 진실일 것이다. 다만 재난지원이 상징하는 지금 우리 사회의 안전망 시스템이 '충분히 촘촘한지' 되돌아보고 싶다. 산불이 번지고 감염 병이 창궐하고 노동과 산업이 전환되는 시대에 지원받아 마땅함에도 지원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각과 빈틈, 예외사례들은 계속해서 쏟아질 테니 말이다.
그런 시대에, 누군가의 삶이 선의나 우연 따위에 기대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촘촘한가? 어느 시골 마을 언저리에 존재하는 행정의 사각을 찾아낼 만큼 제도는 치밀하게 작동하는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의 빈틈을 찾아낼 만큼 지침은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는가? 제도와 지침에서 탈락한 예외사례들을 언론은 충분히 조명하고 있는가?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충분하지 않다면, 고통은 또 다시 취약계층의 몫이 된다. 항의의 창구조차 찾지 못했던 김 할머니가 위기에 빠졌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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