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를 연 지구적 비극으로 기록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한편으로 자극하기도 했다. 그간 공용어로 널리 쓰인 러시아어를 대신해 우크라이나어로 된 출판, 방송 등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외부의 공격이 우크라이나인들의 뿌리찾기로 이어진 셈이다.
이 시기에 국내에 나온 새 전자책 <우크라이나의 동화와 민담>(R. 니스벳 베인 편역, 노엘 L. 니스벳 그림, 최원택 옮김) 1권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이 책을 낸 마름쇠 출판사는 1권의 판매 수익 전부를 우크라이나인을 돕는데 기부하기로 했다.
이 책의 원제는 <카자크의 동화와 민담>이다. 현대 우크라이나의 뿌리가 된 카자크인들이 사용한 루테니아어로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카자크인은 14세기 무렵부터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해당하는 드네프르강과 드네스트르강 사이에 살면서 폴란드와 러시아 제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협력하거나 대립해온 민족이다.
카자크는 인종적으로 슬라브인이지만 생활양식에서는 몽골의 흔적이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은 같은 슬라브임에도 카자크를 다른 민족으로 구분했다.
이들은 17세기 들어 폴란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자마자 러시아 제국에 흡수되는 불운을 겪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후 민족국가 우크라이나가 세워졌으나, 결국 1922년 소련에 강제 합병됐다.
그럼에도 이들의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반도의 민족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조선어(한국어)가 살아남은 고난의 역사를 떠올르게 하는 대목이다. 카자크 시절부터 이들은 폴란드어, 러시아어와 다른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해 왔다. 카자크인의 루테니아어는 북부 루테니아어와 남부 루테니아어로 갈라졌는데, 남부 루테니아어가 지금의 우크라이나어다. 북부 루테니아어는 훗날 벨라루스어가 됐다.
우크라이나인의 뿌리 언어로 쓰인 <우크라이나의 동화와 민담>은 러시아 동화, 민담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출판사는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한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로버트 니스벳 배인은 카자크인의 동화와 민담이 러시아의 동화와 민담보다 더 순수하고 더 원시적이라서 신선하다고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로버트 니스벳 배인이 번역한 27개의 이야기 중 9개의 이야기가 실렸다. 마치 우리나라의 동화나 민담처럼 권선징악의 교훈과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주로 담겼다. 우리의 전래동화인 <옹고집전>, <흥부와 놀부>와 흡사한 이야기도 있다. 본래 동화와 민담은 인류 보편의 모습을 각 문화적 색채에 맞춰 반영한 이야기인 까닭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출판사는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 중 "주인공이 마법의 물건과 변신술, 그리고 크고 작은 지혜를 이용해서 초자연적인 존재부터 성질머리 고약한 사람까지 여러 악을 물리치고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에서 오늘날 외세의 침입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용기와 지혜를 엿볼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동화와 민담> 1권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1년 전이자 현대 우크라이나어가 확립되기 전인 1916년에 로버트 니스벳 배인이 수집해 번역한 책이다. 출판사는 1권을 시작으로 앞으로 후속작인 2권과 3권도 전자책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책을 낸 마름쇠 출판사의 대표이자 이 책의 번역자인 최원택 대표는 "원서에서 키에프(Kiev)로 표기한 우크라이나의 수도는 우크라이나 발음을 반영한 국립국어원 제안에 따라 키이우로 표기했고, 본문의 여러 고유명사와 한국어 해설도 러시아와 구분되는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번역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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