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3주가 되었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에 전 세계가 분노하였고,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국가들이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참여하며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이 유독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이목을 끈다.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2022 동계올림픽이 개막하던 2월 4일 중국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지고 나토(NATO)의 확장을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기에 중국이 침공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을 거란 추측도 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이 전쟁이 임박했다고 우크라이나에서 자국민을 철수시킬 때, 중국은 이를 부인하다가 개전 뒤에야 철수작전을 진행시키는 등 러시아의 침략 가능성을 오판한 모습을 보여줬다.
발발 이후 중국 당국은 온라인 공간에 올라오는 러시아 비판을 검열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기" 혹은 "군사작전"으로 부르며 러시아의 전쟁 책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자 하였다. 중국이 이렇게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이 기대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국에게 가져다줄 전략적 이익은 분명하다. 러시아가 인접 독립국을 침공한 이번 전쟁은 유럽 각국에겐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참여하여 구축한 나토의 전쟁 억지 능력이 충분한지에 대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상대가 핵보유국이면서 대규모 재래식 전력도 갖추고 있는 러시아여서 미국이 현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상당한 외교적, 군사적 역량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질 경우, 미국은 중동, 중앙아시아에서의 전쟁과 국내 경제 위기에 대응하느라 동아시아 문제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2010년대와 같은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미중 무역전쟁,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양안 문제로 동아시아 내 미 동맹국을 위협해온 중국은 미국의 압박이 느슨해진 상황을 이용해 지역 내 영향력을 확고히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미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던 포위망에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결성한 안보 체제인 쿼드(The Quad) 는 2021년 9월 쿼드 결성 후 최초로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의 도발 가능성에 긴밀히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대러 경제 제재가 시작되자, 인도가 여기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가격이 하락한 러시아 원유를 매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제재의 효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이 인도처럼 적극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고 러시아산 원자재를 구매하며 러시아를 중국 중심 경제권 안으로 끌어들일 경우,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첨단 기술 이전을 막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과 자원의 원천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 우방국으로서 감당해야 할 막대한 손해
하지만 동시에 중국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경우 부담해야 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러시아와 함께 국제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부터 꾸준히 서방의 경제 제재를 겪어왔고, 서방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꾸준히 줄이고 외환보유고를 늘려가며 루블화에 대한 환율 방어 태세까지 갖춘 국가였다.
하지만 이렇게 대외 의존도를 줄여온 러시아 경제도 전쟁과 경제 제재가 주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 주요 금융 기관이 러시아가 올해 마이너스 9~15% 수준의 역성장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각국의 정치, 경제가 긴밀히 연결되어있는 2022년에 세계 주요 국가를 적으로 돌리는 전쟁은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경제 지원을 제공하면 중국 기업 및 금융 기관 역시 제재 대상이 되어 피해를 입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액은 2021년 사상 최고액인 1400억 달러에 이르렀지만, 같은 해 EU와의 무역액은 8280억 달러, 미국과의 무역액은 6570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이 여전히 미국과 EU와의 무역을 통해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위해 미국, EU와의 교역을 희생하고 제재를 당하게 될 경우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이 될 것이다.
이미 3월 5일 중국 리커창 총리는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991년 이후 최저인 5.5%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상황이라, 중국공산당도 추가적인 경제 손실을 감당하기엔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 중국의 대유럽 외교 역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10년대 들어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 중국은 이러한 세계적 봉쇄를 타개하기 위해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미국과 유럽이 나토 내 방위분담금, 반(反)화웨이 제재에 대한 이견으로 갈등이 깊어지고 유럽이 나토를 대체할 EU군 창립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한 대규모 유럽 투자를 약속하고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며 유럽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그런데 현재 미국 및 유럽이 모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편을 들 경우, 그 동안의 외교적 노력 역시 무위로 돌아가고 유럽이 대중국 전선에 참여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중국
게다가 올해는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에게 너무나 중요한 해이다. 올해 하반기에 있을 20차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개혁개방 이후 최초로 3회 연임하는 주석이 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큰 상황이고, 장기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만을 무력 흡수하여 중국 통일을 달성하려 한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타격, 중국 부동산 버블 붕괴,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중국공산당 독재의 명분이 되던 고속 경제성장도 올해에는 달성하기 힘들어졌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예상과 장기전이 되면서 이로 인한 불확실성 역시 커진 상황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침공 이전부터 미국 나토의 반러시아 입장을 비난하며 러시아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러시아의 예상대로 전쟁이 조기에 종결됐다면, 중국이 원칙적인 외교적 해결만 주장하며 취했던 모호한 입장은 결과적으로 중국의 현 국제적 지위를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전쟁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미국과 서방 국가는 중국이 러시아에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진핑 장기 독재체제 수립을 위해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이 가져올 손익과 국내 영향까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매일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현재의 모호한 태도를 유지할수록 중국의 결단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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