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2월 15일까지 46일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가 7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도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난 1월 11일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로 6명이 사망했다. 이 공사의 시행사인 현대산업개발은 불과 7개월 전에도 광주 학동 철거 현장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바 있다. 1월 24일에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일하던 노동자 1명이 철판과 기둥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해 4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진 바 있다.
2월 11일에는 여수 여천NCC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사고가 있기 두 달 전에는 같은 산단에 있는 이일산업에서 폭발사고로 3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여수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 날에는 쿠팡 물류 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 1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쿠팡 물류 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죽음은 앞서 5명이나 됐다.
곳곳에서 대형 산업재해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똑같은 원인으로 반복되는 사고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사고 원인도, 발생하는 사업장 구조도 동일하다. △ 불법다단계와 공기단축(광주 붕괴 사건), △ 노후한 산단 시설 문제(여천NCC), △ 과도한 업무(쿠팡) 등이 이들 죽음의 근본원인으로 꼽힌다. 반복되는 원인에 의해 노동자 사망을 개선할 방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20대 대선을 앞두고 24일 노동건강정책포럼이 주최한 '대선캠프초청 산재예방보상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대선 후보자 캠프에서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직접 노동자 사망을 줄이는 방안을 묻는 자리다.
이 자리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의 안호영 의원(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노동위원회 공동상임위원장)이,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 캠프 측에서는 강은미 의원이 참석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측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측에서는 불참했다.
민주당 "노동안전보건청 설립", 정의당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이날 민주당에서 발표한 산재예방보상 대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노동안전보건청 설립'이었다. 산업재해 예방과 보상, 재활, 복귀 등을 총괄하는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인 노동안전보건청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OSHA(산업안전보건청,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라는 노동부 소속의 외청이 있다. 1970년에 만들어진 이 기관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 관련 법령을 세우고 정책을 수립 및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노동자의 안전 관련한 제반사항을 총괄하고 사업주가 법을 어길시 법 집행까지 하는 독립기구라고 보면 된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노동안전보건청은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실현될 경우, 범죄자를 검거하는 경찰청처럼 노동법을 위반하면 검거하는 노동청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정의당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 노동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며,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부터 적용된다. 문제는 매년 발생하는 사고산재의 대다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윤미향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5인 미만 사업장에서 317명(38.3%), 50인 미만에서 351명(42.4%)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정의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대산업재해 및 중대시민재해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에 따른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징발적 손해배상 하한을 도입하고, 중대재해 사고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노동자 죽음에 합당한 책임지지 않는 건 심각한 형평성 위반"
이날 토론회에는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도 참여해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비롯해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강한수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원청의 책임성 강화'를 언급하며 "운전자가 보행자의 목숨을 잃게 하면 실수라 해도 형사처벌과 민사 책임을 진다"며 "이는 그만큼 모든 운전자가 더욱 조심하라고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에 의한 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하물며 기업이 산재사고 예방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1년에 건설노동자 450여 명이 사고로 죽어가는데 기업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법의 형평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 위원장은 "누구라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애초 공사를 계획하는 발주처(시행사)가 적정한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을 철저하게 보장해야 한다"며 "이것이 가장 확실한 중대재해 예방책"이라고 주장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양당에서 제시한 산재보험 적용범위의 전면 확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 노무사는 "산재보험 적용범위를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산재보험으로 바꾸겠다고 양당이 이야기했다"며 "이는 기업에 고용된 전통적 개념의 노동자뿐 아니라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등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동자 집단 및 프리랜서, 소규모 자영업자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해서 보편적 사회보험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읽힌다"고 밝혔다.
이 노무사는 "다만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산재보험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며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행 가능한 정책이 되도록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일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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