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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 여기 서초동이야"…한 검찰 스토리, 이것은 소설?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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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 여기 서초동이야"…한 검찰 스토리, 이것은 소설? 현실?

[프레시안books] 주원규의 <서초동 리그>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검찰총장 자리에 오른 김병민은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 강한 개혁 의지를 내비친다. 그러한 총장이 마뜩잖은 검찰 간부들은 반발한다. 그러던 중 법조계 로비스트였던 기업 대표 박철균이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자살.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검찰 간부인 대검찰청 특수부 부장검사 한동현은 이 사건을 검찰총장을 내쫓을 '덫'으로 사용하려 모종의 스토리를 만든다. '서초동에서 박철균에게 뇌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풍문을 이용해 박철균의 자살 배경을 조작, 검찰총장을 뇌물수수혐의로 기소하기로 한 것이다. 이 스토리의 '장기말'로 한동현 부장검사는 중앙지검 진출 2년차인 평검사 백동수를 '캐스팅'한다.

최근 발매된 <서초동 리그>(주원규 지음, 네오픽션 펴냄)는 검찰을 둘러싼 권력 투쟁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 <서초동 리그>(주원규 지음) ⓒ네오픽션

'채동욱 혼외자' 사건를 떠올리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한 사건이 떠올랐다. 지난 2013년 <조선일보>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게 혼외자가 있다고 보도한다. 이후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은 관련 사안에 대해 감찰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검찰총장은 2013년 9월, 스스로 직에서 내려온다.

당시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정권 차원에서 채 전 총장을 흠집내고 끌어내리기 위해 '혼외자' 카드를 꺼냈다는 의혹으로 번지게 된다. 실제, '혼외자' 정보는 당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가족관계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해 국정원 직원 송모 씨에게 전달했고, 송모 씨는 이를 또다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채동욱 혼외자' 논란이 떠오른 이유다. <서초동 리그>는 검찰 내부의 권력 투쟁, 정치권과의 야합, 언론 노출과 사건 조작에 집중하는 극단적인 검찰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법조 로비스트 박철균은 모비딕이라는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는데, 이 펀드는 운용 부실로 거래정지가 되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검찰은 피해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이 사건을 권력암투에 어떻게 이용할지에만 골몰한다. 이것은 옵티머스, 라임 등 대규모 펀드 사기를 떠올리게 된다.

과연 현실 세계의 검찰은 소설 속의 검찰과 다를까. 이 소설은 그저 '판타지 소설'에 불과할까?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자연주의 소설'이 떠오른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자연주의는 다윈의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자연 상태의 세계관을 인간 사회에 적용한 것으로, 인간이 이뤄온 '사회'가 사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비정한 세계라는 걸 전제한다. 자연주의 소설에서 인간은 동물이고, 인간 사회는 동물의 세계다. 비정한 법칙과 동물적 욕망이 작용하는 '리얼리즘'의 세계다. 마치 실제 있을법한, 있었을지 모를 사회의 실상을 소설로 옮겨내는 것이다. 

자연주의 소설을 정립하고 인간 본성과 사회의 비정함을 작품에 그려냈던, 드레퓌스 사건 때 '나는 고발한다'를 써 사회 참여 지식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에 입을 다물고 그것을 땅 아래 묻으면, 진실은 거기에서 자라날 것이다."

검찰의 본분은 무엇인가

이 소설은 한발 더 나아가 검찰의 본분, 즉 '검찰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냐'를 고민하게 만든다. '기소권 독점'이라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검찰이, 정작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당위적 업무들을 소홀히하거나,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권력과 욕망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검찰의 힘이 정의를 위해 쓰이지 않고 권력과 야합에 의해 쓰여 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있을 법한 하나의 사건 안에서 절묘하게 연출하고 있다.

주원규 작가는 이 소설을 쓴 배경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정한 규칙, 양심, 사회규범과 같은 것들의 집행자들이 혹여 이를 권력을 가진 기득권의 마음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흑화된 현실을 예측해보고자 했다"고 설명하면서도 "이 예측이 점점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투영한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 없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마따나 '현실이 더 소설 같은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이다. 그나마 소설 속 주인공인 평검사 백동수는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하지만 이마저도 위태롭게 느껴진다. 이 소설의 마지막장 을 넘기고서 입맛이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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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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