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24일 외교안보 분야 정책공약을 발표했다. 대북관계는 비교적 합리적 접근을 하면서도 이른바 '선제 타격' 논란과 관련해서는 한층 더 수위가 높을 발언을 내놨고, 대중 비판 기조를 표면화하는 등 보수적 색채를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핵사찰 전면 허용하면 국제사회 설득해 투자·지원"
윤 후보는 이날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가진 외교안보 분야 공약 발표에서 현 안보 상황에 대해 "5년간 민주당 정권 하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훼손되고 공정과 정의는 무너졌다. 민주당 정권이 추진한 굴종적인 대북정책으로 평화를 얻기는커녕 우리 안보가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의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후보는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남북 간 평화협정을 준비하고, 전폭적인 경제지원과 협력을 실시하겠다"며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관과 함께 대규모 투자·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선(善)비핵화, 후(後)지원론을 분명히 했다.
윤 후보는 다만 "완전한 비핵화 이전이라도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에 발맞춰 대북 지원과 협력 사업을 구체화하고 실행하겠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윤 후보는 '실질적 진전'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실질적 비핵화의 첫 단계는 국제적 검증을 받는 것"이라며 "완전 오픈(개방)해서 검증을 받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핵개발 시설 전면 사찰을 허용하면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본다"고 조건을 구체화했다.
그는 "그 정도가 된다고 하면,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제가 북한의 산업 개발과 경제 지원을 위해서 국제 사회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또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하겠다"고 그는 부연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북한의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겠지만 "남북대화의 문은 항시 열어둘 것"이라며 "판문점에 남북미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3자간 대화 채널을 상설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가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공약으로 제시했던 내용이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원칙에 따라서 대처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렇다 해도 남북 대화의 창구는 늘 열어놓고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한 지원은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의향에 대해서는 "정상이 만나려면 원활한 접촉을 통해 예비 합의에 도달을 하고 만나야 한다"며 "그냥 만나서 '앞으로 잘해보자'는 것은 정상외교가 아니라 국내정치에 외교·통일 문제를 이용하는 쇼다. 저는 쇼는 안 한다"고 문재인 정부에 날을 세웠다. "원칙·일관성이 없이 그때그때 일시적인 평화 쇼 같은 식으로 진행해서는 남북관계에 진전도 없고, 북한으로부터도 '남한은 필요없다'고 생각해 무시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최근 논란이 된 자신의 '선제 타격' 발언과 관련해서는 해명 대신 더 강경한 태도를 내비쳤다. 그는 "북한의 핵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킬체인을 비롯한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감시정찰 자산 등 첨단전력을 고도화하겠다"고 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서는 "킬체인을 통한 자위권 차원의 선제타격 능력 확보", "고위력·초정밀·극초음속 등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 확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선제 타격은 신년 기자회견 때 외신기자 한 분이 극초음속 미사일 대응 방안이 뭐냐고 해서 '요격이 불가능하니 발사 직전에 타격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답한 것)"이라고 발언 경위를 설명하면서도 "선제 타격은 전쟁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핵무기를 극초음속 미사일에 탑재시켜 남한을 상대로 쏜다는 것은 벌써 이미 그 이전에 전쟁 상태에 돌입한 것이고 그 상태 자체가 데프콘 1·2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냥 맞을 게 아니라 '미리 빌사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 발사기지뿐 아니라 발사 명령을 한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다'는 능력을 갖고 있고 의지를 보여줘야 그런 무모한 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한 발 더 나간 발언을 했다.
통상 핵무기 사용은 국가 수뇌부의 결정 사항이기 때문에 '핵무기 탑재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린 지휘부'란 곧 김정은 국무위원장일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타격 능력과 의지'를 주문한 셈이다. 윤 후보는 이에 대해 "전쟁을 막고 치명적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막아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전쟁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시작전권 전환 시점에 대해선 "연합작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정보"라며 "우리가 한미연합작전 지휘권을 가지려면 최소한의 정찰자산을 통한 정보의 획득, 어느 정도의 미사일 방어 능력 등 기반을 갖고 있어야 미군의 지원을 받으며 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인권적 탄압, 지구촌 어디든 외면 않겠다"…'中 겨냥이냐' 묻자 부인 않아
윤 후보의 이날 외교안보 분야 공약에서 눈에 띈 기조는 중국에 대한 거리두기 또는 비판적 인식이다. 윤 후보는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말하던 도중 "국제사회가 협조해 일관된 원칙을 갖고 간다면 북한도 자체 번영을 위해 비핵화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면서 "그런데 그때그때, 비핵화를 생각지 않고 북한 핵무장에 대해 일부 지지한다든지, 강력히 억제하지 않는 입장이 나오게 되면 결국 비핵화라는 것은 도달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외교적 과제 중 하나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유민주국가들과 협력해 자유롭고 개방된 역내 질서를 함께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을 꼽으며 "항행과 비행의 자유가 보장되고 역내 다자협력이 활성화되도록 동맹 및 우방국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남중국해를 두고 벌어진 미중 간 갈등에서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항행의 자유'를 굳이 언급한 것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란 미 군용기와 군함이 남중국해에서 위세를 떨치고 도발을 일으키는 '횡포의 자유'에 불과하다"(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2021.12.15)라고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또 "자원과 데이터가 안보 무기가 되는 시대에 돌입했다"면서 "최근 요소수 부족 사태에서 이를 확인했다. 특정 수입국가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를 줄이고, 선제적이면서도 투명한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하겠다"고 한 대목 역시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 후보는 북한 인권 문제를 지적한 뒤에도 "북한뿐만 아니라 인류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반인권적인 탄압에 대해서는 그곳이 지구촌 어디든 외면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한 기자가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생각이냐'고 묻자 "인권 문제라고 하는 것은 장소나 인권침해 대상자가 누구든 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 인권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국가로서 국제 협력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쿼드 가입 문제에 대해서도 기자회견에서 육성으로 한 답변은 "거기(쿼드 참여)까지는 아니고, 실무그룹에 참여해야 우리보다 앞선 기술을 저희가 받아올 수 있고, 의료 협력 체계가 가능하고, 글로벌 이슈에 협력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백신(워킹그룹)에만 들어가 있는데 기후·신기술(워킹그룹)에도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말씀"이라는 것이었으나, 사전 배포한 보도자료의 뉘앙스는 달랐다.
윤 후보는 보도자료에서 "쿼드 산하 백신·기후변화·신기술 워킹그룹에 참여해 기능적 협력을 해나가면서 추후 정식 가입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식 가입 모색"이라는 표현은 지난해 9월 경선 과정에서 했던 공약 발표 당시 "정식 회원 참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던 발언에 비해서도 한 발 더 나간 것(가입 검토→가입 모색)이다.
그는 '전체적으로 중국을 배척하는 뉘앙스가 있는데,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제2의 사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취지의 지적이 나오자 "우리가 미국과 안보 동맹이라면 중국은 북한과 동맹 체제"라며 "그래서 군사안보 차원에서는 우리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지만, 중국과는 상호 존중이라는 기반 하에 경제 협력은 강화해 나갈 것이고 한중 공동의 이익을 휘한 협력을 더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홍준표·유승민 격앙에 "김건희 녹취록에 상처받은 분 죄송"
한편 윤 후보는 공약 발표 후 기자들과 주고받은 현안 관련 질의응답에서는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이 '김건희 씨 녹취록'에 격앙된 반응을 보인 데 대해 에둘러 사과 입장을 밝혔다.
앞서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 씨는 지난 23일 MBC <뉴스데스크>에 보도된 한 인터넷 매체 직원과의 통화 녹취록에서 "이 바닥에서 누가 굿하고(하는 것은) 나한테 다 보고가 들어온다"면서 '홍준표도 굿했어요?', '유승민도?'라는 질문에 "그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웹사이트 '청년의 꿈'에 올린 글에서 "거짓말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런지 참 무섭다"며 "내 평생 굿한 적 없고 나는 무속을 믿지 않는다"고 강한 불쾌감을 표했고, 유 전 의원도 SNS를 통해 "김건희 씨가 녹취록에서 저에 대해 말한 부분은 모두 허위 날조임을 분명히 밝힌다. 저는 굿을 한 적이 없다. 저는 고발사주를 공작한 적이 없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지만 사실 관계를 분명히 알린다"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윤 후보는 이에 대해 "녹취록 문제는 법원에서 공개하지 말라고 한 부분까지, 또 공개 안 하겠다고 해 놓고 뉴스를 통해서 공개했다. 참 공영방송으로서 저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아라면서도 "어쨌든 녹취록에 의해서 마음이 불편하시거나 상처받은 분에 대해서 저도 공인의 입장에서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윤 후보는 전날 김 씨 팬클럽 회장이라는 모 변호사가 SNS에 김 씨가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과 함께 "공개 등장도 임박했다"는 글을 올린 데 대해서는 "저는 남편이지만 그런 사진을 찍었는지 안 찍었는지 알 수가 없고, 사진이 프로필 사진인지 그것도 알 수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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