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2018년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이후 잠정 중단해왔던 군사적 조치들을 재개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20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당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를 열어 미국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통신은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날로 우심해지고 있는 대조선 적대행위들을 확고히 제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과업들을 재포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신은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정치국은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북미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정세 완화의 대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인 성의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험계선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국가의 존엄과 국권,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물리적 힘을 더 믿음직하고 확실하게 다지는 실제적인 행동에로 넘어가야 한다고 결론하였다"고 덧붙였다.
통신은 보도에서 미국에 취했던 신뢰 구축 조치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핵실험 및 ICBM 시험 발사 중단'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통신은 해당 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정서를 채택했다며, 이 결정서에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 시험과 대륙간 탄도 로케트 시험 발사를 중지할 것"이며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 시험장을 페기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명시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미, 2018년 6월 이전으로 되돌아가나
북한의 이번 정치국회의는 새해 들어 연이어 실시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이에 대한 미국의 독자 제재 조치가 발표된 이후 이뤄졌다.
이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 전개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던 '미국의 대(對)북한 적대시 정책 철회' 및 미사일 개발 등에 대해 자신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중기준' 철회 등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 미국과 관계 개선보다는 자체적 방위력 강화에 무게를 싣는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5일과 11일 진행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12일(현지 시각) 미사일 개발에 관여한 북한 인물들을 독자 제재 대상에 올렸다. 그러자 북한은 1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정당한 자위권 행사였다며, 이를 이유로 한 미국의 제재 조치에 대해 '명백한 도발'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담화 발표 당일 열차를 이용한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으며 17일에도 단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했다.
그러자 미국은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결의안으로 금지하고 있는 탄도 기술을 이용한 시험 발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오는 20일 비공개 안보리 소집을 예고한 상태다.
통신은 이같은 상황이 이번 결정을 발표한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회의에서는 최근 미국이 우리 국가의 정당한 주권행사를 부당하게 걸고들면서 무분별하게 책동하고 있는 데 대한 자료가 통보됐다"며 "미국은 우리 국가를 악랄하게 중상모독하면서 무려 20여차의 단독 제재조치를 취하는 망동을 자행했다"고 지적했다.
또 통신은 "특히 현 미 행정부는 우리의 자위권을 거세하기 위한 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며 "미 제국주의라는 적대적 실체가 존재하는 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과 미국이 미사일 대응을 두고 사실상 접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북한의 핵실험 및 ICBM 시험 발사가 재개될 경우 안보리 및 미국의 고강도 제재가 다시 재개되면서 북미 간 첫 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 6월 이전으로 상황이 되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오는 2월 말 베이징 동계올림픽 종료 이후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예정대로 열리고 이에 대한 반발로 북한이 고강도의 군사 행동을 보이게 되면 한반도 내 긴장이 상당히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발표를 미국 및 외부와의 관계 개선을 탐색해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북한은 코로나 19 확산 이후로 중국과의 교역도 차단하면서 사실상 외부로 통하는 문을 닫았다. 이러한 조치 때문에 내부 경제 상황 및 주민 생활은 점점 어려워져 갔다. 이에 북한 당국도 계속 이대로 버티기는 어렵다고 판단, 외부와 관계 개선을 통해 활로를 찾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 16일 코로나 19 확산 이후 운행하지 않았던 북중 간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여전히 주민들에게는 철저한 방역을 강조하고 있지만, 화물 열차의 운행을 사실상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리면서 본격적인 물자 반출입을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2월 초로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북한에게 미국 등과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 당국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외교적 보이콧'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올림픽이 그나마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만이라도 북한의 군사 행동이 실시되지 않아야 한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활용, 중국에 자신들이 더 이상의 군사 행동을 하지 않도록 안보리에서 추가 제재를 채택하지 말라는 것과 함께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압력을 넣는 차원에서 핵실험과 ICBM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에 있어 이전부터 국제사회의 제재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던 중국은 이번에도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대북 제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안보리가 이른바 대북 제재 결의 초안을 토론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5일과 11일, 전 세계에서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만이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것 역시 2017년 북한의 행보를 상기시키며, 미국과 접촉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2017년 당시 북한은 그해 11월 ICBM 시험 발사에 성공하며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뒤 바로 다음해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사회와 접촉에 나선 바 있다.
이후 2018년 4월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6월에는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다음해인 2019년 2월에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주요 경제 부문의 제재 해제를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북한이 이미 미국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그 결과가 결렬로 마무리됐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과 접촉이 아닌, 실제 방위력 제고를 위해 핵실험과 ICBM 재개를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 북한이 이를 재개할 경우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압력 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6년 만에 개선했던 중국과 관계도 틀어질 가능성이 있어 북한이 바로 이같은 카드를 꺼내 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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