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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장학생부터 청소 노동자까지…시민의 기억 속 배은심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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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장학생부터 청소 노동자까지…시민의 기억 속 배은심 여사

[현장] 아들의 이름이 붙은 '한열 동산'에서 열린 고 배은심 여사 추모의 밤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민주화 운동가 고 배은심 여사가 떠난 다음날 서울에서도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0일 서울 서대문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서 배 여사의 명복을 빌기 위한 추모의 밤 행사를 진행했다. 300여 명의 시민이 이 자리에 참석해 배 여사를 추모했다.

이한열 장학생부터 청소노동자까지...추도식을 찾은 시민들의 이야기

배 여사가 남긴 넓은 족적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추모의 밤에 온 시민은 다양했다. 이한열 열사와 비슷한 시대를 살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이도, 이한열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졸업한 이도, 이한열 열사가 다녔던 학교를 청소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이들은 각자 배 여사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그를 떠나보낸 마음을 표현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기간 내내 그 이후에도 민주화의 바람막이 역할을 한 큰 어머니였고 큰 어른이었다. 민주화운동 내내 계속 그 자리에 계셨고 민주화가 됐다고 했을 때조차 힘없는 사람, 억울한 사람과 같이 하셨다. 가깝게는 세월호 가족들과도. 평범하지만 비범한 분이셨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시작하셨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분이셨다. 그분이 가신게 서운하고 안타깝다. 광주는 못 가고 여기로 왔다." (이태호)

"이한열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 수여 행사에서 학생 한 명 한 명 축하하며 손 꼭 잡아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광주나 신촌에서 만날 때도 항상 뿌듯해하시며 학생들을 보시던 게 기억난다. 뵐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슬프고 안 믿긴다. 저를 포함해 다른 학생들에게도 큰엄마, 할머니처럼 잘해주셨는데 황망한 마음이다." (심산하)

"이한열 열사 추도식을 하면 우리(청소노동자들) 초대도 해주시고 노조 만들고 집회할 때 와서 발언도 해주시고 그랬다. 저도 자식이 있지만, 자식 잃은 부모라는 게…. 안타깝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돌아가셨다니 마음이 슬퍼서 왔다." (김현옥)

▲ 10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동산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화 운동가이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하려 했던 사람

추도식의 첫 순서는 배 여사의 약력을 소개하고 그의 육성이 담긴 음성 파일을 트는 것이었다. 그 속에도 시민들의 말처럼 민주화 운동가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려 했던 배은심 여사의 면모가 베어있었다.

주요 약력으로는 1987년 아들 이한열 열사를 최루탄 피격으로 잃은 뒤 장례를 치르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서 활동을 시작한 일,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지내며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농성을 진행한 일, 2020년부터 유가협 명예회장을 지내며 최근까지도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한 일 등이 소개됐다.

음성파일에는 유가협 회원들과 있는 자리에서 <사노라면>을 부르던 배 여사의 목소리와 2017년 5월 17일 광주 5·18 구 묘역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만나 배 여사가 한 말이 담겨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배 여사는 아들을 잃고 3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 뒤 이렇게 말했다.

"힘내시고. 우리 애기들 그 모습 잊지 마시고. 그 모습 안 잊으려고요. 대중 속으로 들어간 거에요. 내가 가면 애미왔다는 소리는 안 해요. 그래도 이한열 엄마 왔다는 소리는 해요. 그것 간직하려고 30년 동안 대중속에서 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식들 간직하고 잊으면 안 되니까. 모습 잊으면 안 되죠. 그 힘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가족답게 어머니, 아버지답게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너무 마음 아프지만 간직하면서 우리 자식들 얼굴 기억하면서 그렇게 사십시다. 마음 아파요"

▲ 10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동산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남은 일은 우리의 몫"

추도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한열기념사업회,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여래걸음,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이들이 맡았다.

김거성 전 이한열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어머니 사진을 모으신다는 소식을 듣고 사진첩을 뒤적여봤다"며 "그래도 활짝 웃으시는 어머님 사진 한 두개는 건질 수 있으려나 기대했지만 쓸데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는 "2020년 6월 항쟁 기념식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모란장을 받으실 때 사진까지도 모조리 어머니 마음속 그늘이 찍혀나와 있었다"며 "겉으로 아무리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셨어도 어머니의 마음속 슬픔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송경용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한열 열사는 죽음으로 민주주의의 문을 열었다"며 "배은심 어머니는 35년 동안의 치열한 삶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길을 넓혀오셨다"고 말했다.

송 이사장은 "(배 여사는) 이한열의 어머니로서, 이 땅의 모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어머니로서, 고통당한 모든 사람의 어머니로서 거룩한 일생을 사셨다"며 "이제 남은 일은 우리 몫이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 어머니 일생을 기억하고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숙제를 (풀기 위해) 따박따박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그렇게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추도사가 끝난 뒤에는 6월 합창단 등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어 한겨울 밤 야외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추도식을 함께한 시민들이 한열동산에 마련된 배 여사의 영전에 흰 국화꽃을 바친 뒤 묵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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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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