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이미지 정치에 능한 것 같지 않다. 처음에 그가 '석열이 형' 캐릭터를 들고 나왔을 때 일부 달성하고자 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범죄자를 호령하는 검찰총장의 무섭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석열이 형'이라는 '부캐'를 생성했는데, 이는 윤석열 본인의 과거 서사를 개량해 대중 앞에 내놓은 것이다.
학창시절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윤석열은 사법시험에 붙기 위해 9수를 하면서 '신림9동 신선'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신림동 '동생'들과 토론을 즐겼다고 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그의 주변엔 배 곯는 후배들이 없었더라'는 말도 전해온다. 연수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 '군기 반장' 역할을 도맡았다고 한다. 작은 일화들이 모여 일종의 신화가 됐다. 술을 즐기며(심지어 최근까지도) 선배들과 '맞짱'도 마다 않는 '정의파 형'의 이미지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윤석열은 '석열이 형'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구사했다. 정치 데뷔 초기에 예능 방송에 출연한 그는 "윤석열 전 총장님께서 TV로 볼 때는 무서운 스타일인 줄 알았다"는 진행자에게 "형님이지 무슨 총장이냐"며 "형님이라고 불러라"라고 말한다. 또한 유튜브 채널 '석열이형 TV'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석열이 형네 밥집'을 차렸다. 이를 두고 '형님 리더십'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로 윤석열 캠프 측에서 만든 이미지인데, 그를 '석열이 형'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여성)이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사실을 보면 다소 허탈한 일이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그것이 주제는 아니다.
대한민국 현직 검사는 2000명이 넘는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대한민국 검사가 2000명 있다면 검사 서열을 1등부터 2000등까지 줄 세울 수 있다"고 한다. 나이, 기수, 출신학교, 출신지역, 그리고 승진과 보직의 자릿수를 복합 방정식으로 풀어내면 못할 일이 없다. 그만큼 검찰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방증하는 이야기다. 그 정점에 올라선 '검찰총장'은 수많은 부하와 후배를 거느리며 일사불란하게 조직을 통제한다. 그곳은 '선배'의 세계이고, '형님'의 세계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찰 조직의 논리적 완결성을 상징하는 것이면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거대한 리바이어던에 대한 수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윤석열의 '석열이 형'은 '검찰총장'이라는 대한민국 '위계질서'의 상징 속 정점에서 오는 이미지를 뒤집은 게 아니라, 윤색한 것에 불과하다. 친근한 검찰, 친근한 선배, 친근한 형님이다. '석열이 형 서사'는 두가지 성질이 공존한다. 이를테면 '친근한 형님'과 '무서운 형님'은 동전의 양면이다. '형님'과 '꼰대'는 다르면서도 같을 수 있다. 후배와 동생들을 '챙겨온' 형님이 후배들을 '거느리는' 선배, 동생들에 '호통치는' 형님이 되는 순간 '형님 리더십'의 서사는 곧바로 전복된다. 특히 한국사회 '남성의 세계'에 몸담아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다.
한국 정치판에서 '형님' 캐릭터는 유권자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님' 노건평 씨는 비리 사건으로 징역을 살았고, '형님 정치'라는 말을 탄생시킨 이명박 정부의 실세 이상득 씨는 국회 부의장까지 지냈던 거물이었지만,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형님 정치'는 온갖 풍파를 몰고 다닌 부정적 이미지의 '끝판왕'이었다.
이처럼 낡은 '형님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운 결과는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30년, 40년 전에나 통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윤석열에게 남은 것은 '무서운 형님'과 '호통치는 형님', 그리고 '꼰대같은 형님'이다.
최근 윤석열과 관련한 '인터넷 밈'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자초한 바 크다. 특히 젊은 남성 유권자층이 드나드는 커뮤니티 '펨코, '엠팍' 등, 그가 지지를 구애하던 곳에서 그에 대한 조롱이 부쩍 늘어났다. '석열이 형'은 이미 '취업 앱'을 사용할 줄 아는 대학생들을 만나 "조금 더 발전하면 학생들 휴대폰으로 앱을 깔면 어느 기업이 지금 어떤 종류의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실시간 정보로 얻을 수 있을 때가, 아마 여기 1·2학년 학생이 있다면 졸업하기 전에 생길 거 같다"고 말한다. '최저임금보다 더 적게 받고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청년 노동 현실과 노동과 대가에 대한 청년들의 눈높이를 크게 벗어난다. 질 나쁜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그가 영입한 선대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정규직을 폐지하자"고 했고, 공정의 이미지를 강조하던 그는 취업 때 경력을 부풀리기 한 부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시간강사는 공개 채용하는 것이 아니다"며 호통을 친다. 대선 후보 일정에 술자리가 잦은 것은 '부장님 스타일'로 인터넷에서 '조롱거리'가 된다. 심지어 "대선도 필요 없고 곱게 정권을 내놓고 물러가는 게 정답"이라는 주장은 그가 말하는 '공정 경쟁'에 위배되지 않나?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쩍벌' 버릇도 그렇고 가르치는 듯한 말투도 썩 호감형은 아니다. '형이라고 부르라'는 허락이 수많은 '동생들'에 대한 시혜처럼 느껴지는 것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갤럽 조사에서 '석열이 형'은 '동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열이 형'보다 높은 연배인 '형님 세대' 6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윤석열은 이재명에 뒤졌다. 만 18세 이상을 포함한 20대에서는 이재명 25.4%, 윤석열 9.5%, 30대에서는 이재명 34.3%, 윤석열 18.0%, 40대에서는 이재명 57.0%, 윤석열 20.3%, 50대에서는 이재명 42.3%, 윤석열 35.8%였다. 60세 이상에서만 윤석열 후보가 53.5%로 과반을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 27~28일 전국 유권자 1008명 대상 실시. 응답률은 15.4%,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60대를 빼고는 다 포위당했다"고 했다. 왜 '석열이 형' 마케팅은 수많은 '동생들'에게 통하지 않을까.
윤석열의 메시지 관리팀은 아마도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전통적 지지층 결집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TK 지역을 방문한 윤석열이 쏟아낸 호소는 '주사파', '사회주의' 등 낡은 이념 논쟁로 점철돼 있었고, 쏟아낸 단어들은 '투쟁', 미친 사람들', '서서 죽겠다' 등 욕설에 가까운 표현들이다. '무서운 형'의 등판이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은 '강자에게 호통치기'가 아니라 '약자에게 말걸기'다.
시대에 맞지 않는 캐릭터 생성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이들에겐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 지 모른다. 호통치는 형님은 필요없다. 비전을 보여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이 사실을 윤석열 캠프의 이미지 및 메시지를 만드는 수많은 '동생들'이 깨닫지 못하면 정치인 윤석열의 미래는 암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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