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업무 환경 탓에 선천적으로 건강손상을 입은 자녀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일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임신 중인 여성노동자의 업무상 유해 환경으로 인해 건강 손상을 입은 태아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법안 시행일 이전의 과거 피해자들에게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산재보험 급여를 지급하는 소급적용 조항도 포함했다.
다만, 남성 노동자의 업무 환경으로 인한 태아산재 보상은 개정안에 포함되지 못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기획 '반도체 아이들의 가려진 아픔'을 통해 태아를 수급 주체로 인정하는 산재법 개정 필요성을 집중 보도해왔다.
환노위는 이날 개최한 고용노동법심사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장철민, 송옥주, 국민의힘 소속 이영, 정의당 소속 강은미 의원이 각각 발의한 태아산재 관련 개정안을 위원장 대안으로 가결했다고 밝혔다.
입법의 첫 관문인 상임위 소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2일 오후에 열리는 환노위 전체회의에서도 무난히 처리될 걸로 보인다. 이달에 열리는 정기국회 본회의만 통과하면, 법안은 공포 후 1년 이후부터 정식으로 시행된다.
법안의 핵심은 ‘여성 노동자의 업무상 사유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보험급여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사고, 유해인자 노출로 인해 출산한 자녀에게 부상, 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할 경우 요양급여, 장해급여 등을 지급해 산업재해 피해로부터 보호하자는 취지다.
개정안은 태아를 수급주체로 인정했다. 산재법상 보험급여 청구자와 수급자가 동일해야하는데, 엄마와 한몸이었던 태아는 그동안 노동자로 여겨지지 않아 청구권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개정안은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는 건강손상자녀를 ‘근로자’로 보고 보험급여 청구권자로 인정하며 이 간극을 해소했다.
소급적용 규정도 담겼다. 개정안은 이 법 시행일 이후에 출생한 자녀부터 적용하는 걸 원칙으로 하되, 3가지 조항을 예외로 달았다.
법안 시행일 전에 산재보험 청구를 통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경우, 법원의 확정 판결로 자녀의 건강손상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보험급여지급 거부처분이 취소된 경우, 법 시행일 기준 3년 이내에 출생한 자녀로서, 이 법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 산재보험을 청구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경우에는 수급자격이 부여될 수 있다.
그동안 노동자의 자녀질환은 산재 보호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현행 산재법은 엄마의 업무상 요인으로 인해 선천적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산재법상 보험급여는 근로자만 받을 수 있는데, 노동능력이 없는 태아는 아예 청구권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여성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판결하면서, 사회적으로 입법화 요구가 커졌다.
대법원은 약품 분쇄 작업 등 위험물질에 노출된 제주의료원 간호사 자녀들의 선청성 심장질환을 "태아와 모체는 단일체"라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삼성반노체 노동자 출신 여성 3명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올해 5월경 "엄마의 직업병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지난 1일에는 삼성전자 LCD (현 삼성디스플레이) 출신 남성 노동자가 국내 최초로 근로복지공단에 태아산재를 신청하기도 했다.
장철민 더민주 의원은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태아산재 예방이 촘촘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父)의 유해요인노출, 생식독성물질 관리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후속 법 개정에도 힘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셜록>은 후속 법안에 남성노동자의 업무상 환경에 의한 자녀의 건강손상이 포함될 때까지 계속해서 보도할 예정이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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