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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에게서, MB정부의 기시감을 느낀다"

[인터뷰]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른바 '서울시 바로세우기'가 논란이다. 오 시장은 서울시가 민간위탁하거나 민간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들에서 세금 낭비가 막대하다며 이를 정상화하는 것이 '서울시 바로세우기'라고 이야기한다.

오 시장이 문제로 지적하는 건, 서울시의 민간위탁·보조사업 부분에서 6%에 불과한 주민자치·협치·주거·청년·노동·도시농업·환경 등 12개 분야다. 공교롭게도 이 12개 분야는 그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임기 동안 시민단체들과 진행해온 사업들이다. 오 시장이 전임 박원순 시장 '지우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본격적인 실력행사에도 나섰다. 서울시가 지난 1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서울시 바로 세우기' 관련 민간 위탁 보조 사업 예산은 46.5% 삭감된 832억 원으로 책정됐다. 구체적인 사업별로는 사회적경제 민간위탁 사업비가 121억 원에서 64억 원(47.1%)으로, 270억 원이었던 주민자치 민간보조금이 137억 원(49.3%)으로 삭감됐다. 자치구 마을생태계 조성사업 지원금도 80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85% 줄었고, 권역NPO지원센터 사업비도 19억 원에서 6억 원으로 68.4%나 쪼그라들었다.

그간 서울시와 여러 사업을 진행해온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절반 이상 삭감된 예산으로는 제대로 된 사업을 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접으라는 '압박'과 다름없다.

오 시장은 이들에게 '비리 시민단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는 지난 9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단체들을 '다단계 조직', '중개소' 등에 비유하면서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 됐다며 거칠게 비난했다. 그간 서울시와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 시민단체들이 서울시 예산을 마음대로 빼먹는 '도둑들'이었다는 이야기다.

시민단체들은 공동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전국 1170여 개 시민지역사회단체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의 일방적인 예산삭감 중단과 시민사회단체 폄훼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1170여 개 단체 중 하나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활동하는 이승훈 사무처장은 "오세훈 시장의 시정철학에 문제가 많다"며 "그간 시민참여를 위해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해왔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승철 사무처장을 지난 9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만났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 전국 1170여개 시민지역사회단체들은 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허환주)

"10년 동안 1조 원 받았다고? 내역 공개 요구에 서울시 묵묵부답"

프레시안 : 현재 논란이 되는 '서울시 바로세우기'는 지난 9월 13일 오 시장의 기자회견에서부터 시작됐던 듯하다. 당시 오 시장은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 또는 민간위탁금이라는 명목으로 직접 또는 자치구를 통해 시민사회단체에 지원한 금액이 무려 1조 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이승훈 : 당시 기자회견에서 오 시장은 '서울시가 시민단체의 전용ATM이다'. '다단계 피라미드 조직이다', '중간지원조직은 중계소 역할을 한다' 등 여러 말들을 쏟아냈다.

프레시안 : 당시 서울시에서는 감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았나.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지난 7월 12~20일 예비감사에 해당하는 1차 점검을 거쳐 지난 8월 19일부터 9월 17일까지 본 감사를 벌여 예산집행과 절차 등을 살폈다. 기자회견은 그 과정에서 열렸다.

이승훈 : 그때 기자회견의 문제는 일단 감사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와중에 기자회견을 하면서, 시민단체를 맹비난했다. 만약 감사 결과에서 문제점이 나온다면 시민단체는 해명할 의무도 있고, 대책을 마련할 책무도 있다. 그런데 감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런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더구나 오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시민단체가 서울시에서 1조 원을 받아갔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받았다던 1조 원의 내역을 밝혀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으나, 이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시민사회단체가 문제가 있다면 서울시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열어달라고 했으나 이마저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말이 없다.

프레시안 : 오 시장은 이후 또다시 기자회견을 열고는 '서울시 바로세우기' 관련해서 전임 시장이 박아놓은 대못 때문에 당장 시정 조치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훈 : 이 말에도 어폐가 있다. '대못'이라는 게 조례가 아니라 전임 시장이 취한 조치라면 현행 시장이 바꿀 수 있다. 만약 조례라면, 이것을 대못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시의회를 무시하는 표현이다. 의회에서 합의와 논의를 통해 만든 조례를 대못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발언이다. 결국, 대못 발언은 전임 시장을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프레시안 : 최근 서울시로부터 연락은 안 왔나.

이승훈 : 지난 8일부터 서울시가 각각 단체에 전방위로 전화를 하고 있다. 이번 주 금요일(12일)에 만나자는 게 골자다. 만나는 시간, 장소, 그리고 대화 시간까지 다 정해서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리고 우리가 제기했던 '1조 원을 받았다'는 발언에 대한 내역 공개와 사과에 대해서는 어떠한 답변도 없었다. 대다수 시민단체에서 가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프레시안 : 구색 맞추기 식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승훈 : '시민단체에서 만나자고 해서 만나줬다'. '만나자고 했지만, 만남을 거부했다' 이런 식으로 오세훈 시장은 명분을 쌓으려고 한 것이다.

"박원순표, 시민단체 관여 사업 예산만 대폭 삭감했다"

프레시안 :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는 지난 7월~9월까지 감사를 진행했다. 감사 대상은 박원순 시장이 추진했던 태양광 사업 등 12개 분야, 이른바 '박원순표 사업'이었다.

이승훈 :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번 감사 대상 사업들은 '시민단체가 관여돼 있는 사업'이다. 이들 사업은 서울시 전체 지원사업의 6% 정도 된다. 그런데 이들 사업에 대한 집중 감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오 시장은 왜 시민단체가 관여된 사업만 감사를 진행했다고 생각하나.

이승훈 : 다소 감정적인 것도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본인이 과거 무상급식으로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에서 시민단체의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2016년 총선에서 당시 오세훈 시장이 종로에 출마했는데, 시민단체에서 오 후보 낙선운동을 벌였다. 그런 것에 악감정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프레시안 : 그런 감정으로 이번 일을 진행한다고 하기엔 너무 개인감정 아닌가.

이승훈 : 그런 면들이 보이는 게, 예를 들어 <한겨레>에서 오세훈 시장 비판기사를 썼다고 바로 다음날 서울시에서 주는 한겨레 광고를 끊어버리지 않았나.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프레시안 : 어찌됐든 감사를 진행했고 현재(10일)까지 서울시가 감사 결과를 가지고 고발한 건은 태양광 보급사업 3건,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 1건이다.

이승훈 : 거기에는 잘 아는 바가 없지만,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 같은 경우, 서울시는 관련 업체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직접적으로 근거라든가, 관련 과정에 대해서는 계속 파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프레시안 : 사업을 진행하는 시민단체에서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줬다는, 일명 '짬짜미'를 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이승훈 : 오 시장이 9월에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 특정 단체가 지원사업을 맡은 뒤, 자신들이 아는 사람들에게 지원사업에 응시하도록 해서 특혜를 줬다고 했다.

프레시안 : 얼핏 구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을 때는, 시민단체들이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고 보일 듯하다.

이승훈 : 그렇게 유도를 하는 듯하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사업을 했다면, 담당 공무원도 큰 문제다. 그런데 오 시장은 공무원은 문책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전형적인 갈라치기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4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하계5단지 재정비사업 현장을 방문, 아파트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협치 행정, 겨우 자리잡고 있는데, 사라질 판"

프레시안 : 오 시장이 말하는 '짬짜미'가 실제 존재하나.

이승훈 : 그렇게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NPO지원센터에서 지원사업을 한다고 하면, 지원사업 대상자를 선정하는 심사위원이 있다. 이 심사위원은 서울시 조례 등에는 제척, 기피 제도가 있지 않나. 연대회의 소속인 내가 심사위원이라고 하면, 연대회의는 지원사업에 지원할 수 없다. 그리고 심사위원 중에서는 진보 단체 소속만 있는 게 아니라 보수단체 소속도 있다. 보수단체에서 사업에 지원했는데, 보수단체 소속 심사위원이 비토를 놔서 안 된 경우도 있다. 오 시장이 언론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짬짜미'하기 쉬운 구조가 아니다.

프레시안 : 세금을 받아서 사업하기는 매우 힘들다. 필요한 서류도 엄청나다.

이승훈 : 우리가 속한 조직은 서울시 지원사업을 하지 않는다. 활동가가 많지도 않고, 선정돼서 받는 돈이라고 해봐야 1000만 원~1500만 원 정도다. 정산할 때, 제출해야 하는 증빙서류가 너무 많다. 그걸 정리하려면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안 하는 경우가 많다.

프레시안 : 오세훈 시장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회 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민단체와 앙숙이 된 듯하다.

이승훈 : 어찌됐든 시민단체에 몸을 담았으면 시민단체의 공익적인 역할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

프레시안 : 박원순 시장이 그간 진행해온 것들이 일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관 거버넌스(governance)에 관심을 두고, 여러 정책과 제도를 마련했다. 이번에 대폭 예산이 삭감된 분야들이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업들이라고 생각된다.

이승훈 : 오 시장이 가진 시정철학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간 서울시는 민관 거버넌스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결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민참여예산제 같은 경우, 시민들이 가진 독특한 공익적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이렇게 시민이 참여해 제안하는 예산 프로세서 등 시민참여에 집중해 왔다. 그렇게 해서 협치 행정이 이제는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는데, 오 시장이 오면서 이를 딱 잘라버린 것이다.

NPO센터만 해도 1년 예산이 21억 정도 됐는데, 이번에 발표된 예산안은 65%가 삭감됐다. 권역별 센터는 100% 깎인 곳도 많다. 사업을 사실상 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하는 일이 기존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이나 일반 시민 모임 등을 장려하고 그 모임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정치하는엄마', '청소년기후소송단', '국제청년센터' 등도 여기서 활동했다. 이런 단체는 독자적으로 자생력을 갖는 게 매우 어렵다. 사무실 얻는 것도 쉽지 않고, 행사 한 번 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 것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예산을 절반으로 하면, 사업이 절반으로 줄어들 듯하다. 그런 이야기도 있다. '박원순 시장이 만든 지금의 구조는 진보진영, 즉 민주당에 유리한 게 아니냐. 그러니 이들의 목소리를 줄이기 위해 예산을 줄여야 한다' 이런 의도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승훈 : '서울시 바로세우기'가 내년 대선, 지자체 선거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오세훈에게서 MB 정부의 기시감을 느낀다"

프레시안 : 지금의 오 시장 행보를 보면서,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갈 때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적 감사를 통해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을 비롯해 황지우 한예종 총장 등이 쫓겨나야만 했다. 오 시장이 지금 작게나마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훈 : 시민단체에서도 고민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이 교체된다 해도 무너지지 않을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놨어야 했다. 동화 <아기 돼지삼형제>의 셋째처럼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는 것을 고민했어야 했는데, 그런 고민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바뀐 정권에 따라 내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모욕주고 공개적으로 창피하게 하면서 나가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승훈 : 그냥 시민단체 본연의 일을 했을 뿐인데, 이를 마치 비리의 온상처럼, 자기들끼리 다 해먹었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 때의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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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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