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치러진 첫 대형선거(현지시간 11월 2일)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참패를 했다.
작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10% 넘게 앞섰던 버지니아주에서 민주당은 주지사, 부지사, 검찰총장 자리를 모두 공화당에게 빼앗겼다. 대선에서 바이든이 60% 넘게 득표했던 뉴저지주에서도 필 머피 현 주지사가 공화당 후보에게 1%포인트 차이도 안 나는 간발의 차이로 신승을 했다. 지난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 일어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도 '경찰 개혁안'에 대한 투표가 부결됐다. 경찰 개혁 이슈는 바이든의 지난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최근 바이든 국정운영 지지율이 40% 초반대까지 떨어져 제2차 세계대전 이래로 트럼프 다음으로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으로 조사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이기는 했다. 꼭 1년 뒤에 있을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과 민주당은 '경로 재설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를 받은 셈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가 보낸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트럼프 없는 선거에서 트럼프와 싸운 민주당…"문제는 트럼프가 아니야, 이 바보야!"
이번에 주지사 선거가 치러진 버지니아와 뉴저지는 모두 '블루 스테이트'였다. 또 워싱턴D.C와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교외(Suburb) 주택가의 비중이 큰 지역이기도 하다. 도시 근교 지역에는 백인, 중산층, 고학력자의 인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지난 대선에서 큰 표차로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 교외 지역 유권자들의 선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에 바이든의 민주당이 참패한 결정적인 이유도 이들의 '변심'이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아직도 '선거 사기론'을 주장하며 대선 패배를 인증하지 않는 트럼프와 열성 지지자들이 현재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스윙 보터'들의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다. 오히려 바이든 취임 9개월여가 지난 현 시점에서 심판하고 싶은 대상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화를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한 바이든과 민주당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계속 소환했다. 바이든은 지난 10월 26일 민주당 버지니아 주지사 후보인 테리 매컬리프 지원 유세를 하면서 20번 넘게 트럼프를 호명했다. 매컬리프 선거 광고의 주요 내용도 공화당 글렌 영킨 후보를 찍으면 버지니아에서 트럼프식 정치가 부활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맞서 영킨은 식료품세 인하, 코로나19 관련 학교 휴교령 폐지, '비판적 인종 교육'(Critical Race Theory)' 금지 등 정책 공약을 선점해 맞섰다.
네거티브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선거 기본 '공식'이 이번에도 확인된 셈이다.
2. 공화당이 이겼지만 트럼프는 결코 웃을 수 없다
여전히 바이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대항마인 트럼프 입장에서도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마냥 기뻐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버지니아나 뉴저지에서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은 트럼프와 적당한 '거리두기'를 했다. 이들 '퍼플 스테이트'(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섞인 주)의 유권자들의 표심은 '레드 스테이트'의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들과는 다르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정치를 싫어하지만 성향적으로는 보수 내지는 중도인 교외 유권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영킨은 한번도 트럼프에게 지원 유세를 요청하지 않았다. 그는 트럼프의 공개적인 지지를 받기는 했지만, 트럼프와 공동 유세를 열지는 않았다.
성공한 기업인 출신인 영킨은 트럼프를 거스르지는 않았지만 합리적이며 온건한 보수의 이미지를 통해 트럼프와 차별화에 성공했다. 또 교육 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워 교외 지역 유권자, 특히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그는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CRT'와 관련된 매컬리프의 발언("나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무엇을 교육해야만 한다고 강요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을 중점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교육 문제에 관심이 높은 교외 지역의 백인 중산층 학부모들에게 "부모들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 주요 지지층으로 만들었다. NBC 출구조사에 따르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영킨은 백인 여성 유권자들을 상대로 트럼프보다 20% 포인트 더 많이 득표했다.
<USA투데이>는 4일 "공화당이 트럼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공화당원들은 영킨의 승리는 공화당이 보다 단합된 기반을 찾을 수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며 "영킨이 트럼프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전략가 스코트 제닝은 "미국을 다시 지루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광기에 기반한 트럼프식 정치에서 벗어나야 공화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3. 바이든과 민주당의 고민 "선거 승리는 쉬웠지만 통치는 어렵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다룬 뮤지컬 <해밀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그의 오른팔 격인 해밀턴(미국 초대 재무부 장관)에게 "승리는 쉽지만 통치는 어렵다"고 말했다. 4일 CNN의 크리스 실리자 기자는 이 대화를 인용하면서 "민주당이 지난 10개월 동안 행정권과 입법권의 모든 지렛대를 통제하면서 바이든의 주요 공약 관련 의제들을 통과시킬 방법으로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얻은 교훈"이라고 평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절정에 달했을 시점에 '반(反) 트럼프'를 무기로 민주당은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장악했지만 지난 9개월여의 시간 동안 딱히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특히 핵심 공약인 '사회복지법안'(3조 달러)은 공화당과 민주당내 보수 성향의 상원의원들의 반대 때문에 절반(1조7000억 달러) 규모로 줄였는데도 여전히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반면 집세, 기름값, 식료품비 등 물가는 급등해 민생은 오히려 악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겐 무관심과 냉담으로 이어져 이들의 투표 참여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에겐 오히려 투표 참여를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이번 버지니아와 뉴저지 선거에서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았는데도 공화당에게 전혀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정치 상황과 유권자 심리 때문이다.
이제 꼭 1년 남은 중간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아니라 바이든을 저울질할 것이다. 바이든과 민주당이 이에 충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중간선거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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