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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태, 백선엽, 그리고 노태우 씨의 국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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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현태, 백선엽, 그리고 노태우 씨의 국가장

[민교협의 시선] 관용의 공화국이 아니라 정의의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지난 10월 26일 사망한 노태우씨의 장례를, 많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국가장으로 치렀다. 사망 다음날 국무회의는 그의 장례형식을 신속하게 심의하고 국가장을 결정했다. 우리나라 국가장법은 그 대상자를 행정안정부장관이 제청하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정부의 이 결정은 법률의 형식 논리상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 대상자에 있다. 관련법은 그 대상자를 전직, 현직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노태우씨의 경우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공훈을 남겨 국민적 추앙을 받는 사람의 기준을 적용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제13대 대통령을 역임한 노 전 대통령은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역사적 과오가 있"지만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방정책으로 공헌했으며, 형선고 이후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을 고려"(경항신문 2021/10/27)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무회의의 이러한 정당화 논리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대결과 갈등을 초래한 유사한 두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는 2011년에 사망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안현태씨 스캔들이고, 다른 하나는 2020년에 사망한 후 역시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힌 백선엽씨 스캔들이다. 한 사람은 전두환 정권의 부패에 관여하고 스스로도 뇌물을 받은 반민주주의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일제 치하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룰 체포하고 사살하는 일에 앞장서온 반민족주의자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국가적․국민적 영광으로 채워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던 것은 노태우씨의 국가장 승인에 관한 정부 결정과 동일한 논리에 기인한다. 안현태씨는 중대한 사법적, 정치적, 도덕적 흠결이 있지만 무장공비 살상과 베트남전 참전으로 표상되는 호국의 영웅이고, 백선엽씨는 간도특설대의 부끄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을 필두로 반공주의 군인으로서 국가수호의 영광을 받을 전사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쟁은 호국으로 불리는 그들의 공적이 반민주와 반민족의 역사적 과오를 상쇄할 수 있는가에 있을 테지만 정부는 여론 수렴 없이 또는 여론에 맞서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서둘러 판단해왔다. 그러한 정치적 등식 위에서 노태우씨 또한 반 헌정주의 쿠데타와 반인륜적 민간인 학살의 책임이 있음에도, 주목할 만한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낸 인물이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추앙받을 자격이 있다고 정부는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10월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서 가수 인순이 씨와 테너 임웅균 씨가 88서울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를 추모곡으로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이 결론은 이내 여러 정치, 사회단체들의 중대한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단체들은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거나 국가장 기간 조기, 분향소 미설치와 같은 방식으로 비판하고 저항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으로 구성된 5월단체는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냈다.

정부는 27일 오전 국무회의를 거쳐 직접선거로 당선된 첫 대통령 노태우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국가장으로 진행하여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장법은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긴 사람이 서거한 경우 국가가 장례를 치러 국민 통합에 이바지하려는 취지이다. 국가장은 정부가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고 정치적 판단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의 헌법을 파괴한 죄인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신군부 실세로서 자신 또는 책임이 무거운 1980년 5월 학살에 대해 그는 광주 시민과 국민에게 단 한 번도 직접 사죄하지 않았다(통일뉴스, 2021/10/29)

다른 단체들의 성명 또한 대체로 같은 맥락에 놓여 있었다. 단체들은 5.18이라는 반민주적, 반인륜적 학살행위의 책임을 물어 그의 국가장을 반대했다. 여기서 우리는 정부의 논리와 반대 단체들의 논리가 대립하고 있음을 본다. 정부는 그의 역사적, 정치적, 인륜적 범죄를 ‘과오’로 규정하면서 외교적 공적으로 상쇄될 수 있다고 본 반면, 반대 여론은 그가 주도하거나 가담했던 군사반란과 5.18을 중대 ‘범죄’로 규정하면서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상 사라질 수 없을 부끄러운 과거로 해석했다. 노태우씨는 1980년의 비극에 대한 총체적 진실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로 고백한 적이 없다. 그리하여 5.18은 여전히 그 책임자와 극우세력들에 의해 여전히 왜곡되고 이용되고 있는 상황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은 헌법 제1조 1항에서처럼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라는 원리 위에서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것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민주공화국은 주권을 가진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국가와 정치공동체에 대한 강력한 소속감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데서 탄생하고 유지되는 정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부터 공화국의 궁극적 존재조건인 형제애와 애국의 심성이 생성된다.

정치사상가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이 공화국이라는 근대적 유토피아의 가능성과 조건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유한 인물이었다. 구성원들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과 그에 따른 적대의 감정이야말로 공화국의 우애와 애국의 심성을 해친다는 사실을 인식한 루소는 경제적 불평등의 최소한이라는 물질적 토대 위에 서는 공화국을 상상했다. 말하자면 평등의 공화국이다.

그런데 공화국의 조건과 관련해 루소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는 개념을 발명했다. 루소는 그 시민종교를 "특정한 나라에 국한된 것으로 그 나라에 신들, 즉 저마다 고유한 수호신을 부여"하는 것으로, "신의 예배와 법에 대한 사랑을 결부시키고, 조국을 시민들이 뜨겁게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바로 수호신에게 봉사하는 일이라고 가르치는"(사회계약론) 종교로 정의했다. 하지만 그 시민종교는 전통적인 의미의 신이 아니라 조국이라는 신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전근대와 결별한다. 시민종교는 조국에 대한 헌신과 의무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애국적 시민들의 믿음의 터전이다. 우리는 근대국가를 세속성의 논리 위에서 물질적 이해관계를 본질로 하는 공동체로 이해하려 하지만 루소의 사상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공화국의 정치적 공동성과 우애와 애국을 위해서는 성스러움의 실체가 필요하다. 성스러운 존재에 대한 숭배를 실천하는 시민종교야말로 그러한 정치적 필요에 부응하는 제도다.

분열된 공화국의 통합을 깊이 성찰한 사회사상가 뒤르케임(Emile Durkheim)은 이 시민종교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성스러움을 체현하고 표상하는 정치적 토템을 요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근대 공동체가 종교적 성물을 숭배한다면 근대적 공동체는 정치적 성물을 추앙한다. 그 토템은 국가와 그 국가의 존재근거가 되는 정치이념이다. 뒤르케임은 국가와 정치이념을 담고 있는 성스러운 토템을 공유함으로써 근대적 공동체로서 공화국의 통합이 형성되고 유지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정치적 성물을 어떻게 집단적으로 공유할 것인가. 여기서 정치의례의 필요성이 등장한다. 국가는 집단적 의례를 거행함으로써 그 정치적 토템을 시각화하고 구성원들이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가장법은 바로 이 성스러운 토템과 의례의 원리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제1조(목적)는 "이 법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逝去)한 경우에 그 장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함으로써 국민 통합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공적을 남겨 사망한 뒤에 국민들의 정치적 숭배를 받는 인물과 그가 실천하고자 했던 정치적 가치야말로 루소와 뒤르케임이 말하고 있는 성스러운 토템이 아닐 수 없다. 법률은 그 공적, 국가적 사자를 위한 의례를 거행해 국민들이 그 토템을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공화국의 통합을 실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노태우씨가 과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애국의 토템인가, 그리고 그의 장례는 공화국을 위한 형제애를 국민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공화국이 지향해야 할 애국의 가치와 이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독립, 호국, 민주다. 정치적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반영하고 있는 그 애국의 이념들은 서로 충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독립에 맞선 호국이란 있을 수 없고, 민주를 부정하는 호국이라는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민주에 대립하는 호국으로서 안현태씨, 독립을 부정한 호국으로서 백선엽씨를 애국의 모델로 만들어낸 것이 정당하지 않은 것처럼, 민주주의를 부정해온 노태우씨를, 그의 외교적 성과를 근거로 호국의 전범으로 삼아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의례를 -- 국가장은 지난 시절 국장과 국민장의 통합적 형식이다 — 거행하는 것 또한 타당하지 않다. 한국 민주주의의 덕성과 이념의 응축체인 5.18의 진실을 말하지 않은, 그 희생자들에게 단 한 번도 용서를 구하지 않은 인물을 애국자로 규정하고 그의 국가적 장례를 통해 공화국의 통합과 결속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통합을 위해서는 원칙 없는 관용이 아니라 엄격한 정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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