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질책이 조기 폐지의 큰 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의아하다. 생계급여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이미 지난해부터 예정돼 있었다. 시기를 몇 달 앞당긴 것을 두고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나와 대통령의 의지를 미담으로 설파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대통령의 의지가 그토록 강력했다면, 그 강력한 의지는 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앞에서는 멈추었는가?
정부는 가난한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는가?
단언컨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아있는 한, 한국 사회의 비수급 빈곤층을 보호하는 실질적 사회안전망은 완성 될 수 없다. 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80만 명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생계형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다. 최저 수준인 국민건강보험료조차도 낼 수 없는 생계형 체납자들은 병원에 갈 경우 진료를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당이득금 환수조치를 당한다.
결국 위축된 비수급 빈곤층은 아파도 참고 병은 깊어진다. 비수급 빈곤층 17.3%가 치료를 포기하며, 수급 빈곤층 14%가 치료를 포기한다. 2018년 한국 사회를 비탄에 빠지게 만든, 방배동 김 씨 또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의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김 씨는 국민건강보험 생계형 장기체납자였다. 그는 2008년부터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다. 2005년 뇌출혈 수술 이력이 있어 지속적 관리가 필요했지만,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방배동 김 씨는 죽고도 5개월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정부는 비수급 빈곤층의 의료권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보장성 강화의 혜택은 국민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기만이 아닌가? 정부는 비수급 빈곤층, 생계형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에 대한 가혹한 의료공백을 계속 방기하겠다는 말인가? 제2차 기초생활보장 기본계획(2021~2023)에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계획조차 없다. 가난과 질병은 함께 온다. 사실상 동일한 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인데 왜 의료급여에서는 부양의무자기준을 존속시키는가?
2017년 UN사회권규약위원회는 한국 사회권규약 이행에 대해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3%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절대빈곤층 7%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규모임을 꼬집은 것이다. 조속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또한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사각지대를 큰 폭으로 해소하여, 비수급 빈곤층 발굴에 성과가 있다. 하지만 예외조항을 두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가족부양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다. 수급 신청자에게 고소득 고재산 부양의무자가 있을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예외조항은 복지국가의 가치를 훼손하는 가볍지 않은 문제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은 복지국가의 최소한 약속이다. '가족관계의 단절'은 한 사람이 빈곤으로 추락하는 중요한 맥락이다. 가족과의 관계 단절을 증명하기 어려워 수급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가난한 국민에게 단절된 가족 관계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국가가 가난한 국민의 삶을 파헤칠 권리도 없다.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지극히 국가와 개별 국민 양자 간 약속이다. 국가는 최소한의 약속을 이행하는 데, 왜 잔인한 채권자처럼 행동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득 고재산 부양의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책임을 물으려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고 사후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만큼은 자격 여부를 떠나서 국가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생계급여에 있어서 자격을 논하는 것 자체가 복지국가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복지국가 제도와 프로그램은 '필요'가 발생하면 작동해야 한다. 복지 '필요'가 발생하면 '자격'이 갖추어졌다는 의미다.
생계급여 수급 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의 30%다. 이 소득 수준만으로도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수급 자격을 심사하는 과정을 남겨두었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작동에 있어 가족부양의 여지를 잔존 시켜두었다. 복지국가의 지향과 가치를 훼손했다는 측면에서 정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가난한 이들의 존엄과 복지국가
가난한 이의 '존엄'이 지켜져야 복지국가다. 20대 수급 청년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청년과 그의 아버지는 주거급여와 생계급여를 받았다. 그럼에도 청년은 생수 한 병 사서 마시기 어려운 여건 속에 우겨 넣어진 삶을 살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약속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의 보장은 도대체 언제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정부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의 불완전한 폐지를 두고서, 빈곤 사각지대 문제를 모두 해결했으며, 한국의 사회안전망이 모두 구축되었다는 자화자찬해서는 안 된다. 부양의무제의 완전한 폐지 외에도 비상식적으로 더디게 현실화 되는 기준중위소득, 그것을 바탕으로 책정되는 생계급여, 수급자가 되어도 생수 한 병 마시기 어려운 사람들의 삶이 있다. 진정으로 대통령의 의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닿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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