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하반기부터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국내외에선 두 가지 희망적 사고가 유행해왔다. 하나는 북한이 강력한 경제제재와 자연재해, 그리고 코로나19라는 '3중고'에 직면해 있는 만큼,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버티지 못하고 대화에 나올 것이라는 기대이다.
백신과 식량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과 개별 관광 및 작은 교역 추진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력한 지렛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1월 노동당 대회에서 이를 "비본질적 문제"로 일컬으면서 "근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미연합훈련 및 남한의 첨단무기 도입을 자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7월 27일을 기해 남북 통신선이 복원되자, 북한 경제위기설이 더욱 유행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북한이 대북 지원과 제재 완화를 노리고 통신선 복원에 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잘못된 진단이라는 점이 금방 드러났다. 8월에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강행되자 북한은 대미·대남 비난을 쏟아내면서 통신선을 다시 단절시킨 것이다.
그리고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주목할 만한 발언을 내놨다. 경제건설, 농업, 국토건설, 도시경영, 과학, 교육, 보건 등 여러 부문에서 "진일보의 성과들이 이룩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1월 당대회를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경제발전계획 실패를 자인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중요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은 경제난을 자인했을 때에도 남북대화나 북미대화에 나서지 않았었다. 그런데 북한이 경제건설 등 각 방면에서 성과가 있다고 자평하는 상황에서 과연 한미의 인도적 지원 의사 표명이 북한을 대화로 나오게 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
또 하나의 희망적 사고는 군비경쟁과 관련되어 있다.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의 50배 이상이고 국방비만도 북한 GDP의 1.5배에 달한다. 북한이 군비경쟁에 부담을 느껴 대화에 나올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진단이다. 북한의 "국가방위력" 건설은 선택과 집중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북한이 "상용무력"이라고 말하는 재래식 군사력 건설에는 상당한 자원의 투입을 요한다. 그래서 북한이 선택한 것이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은 줄이면서 '가성비'가 뛰어난 핵과 미사일로의 집중이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이 2013년에 선포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요체이자, 북미정상회담 및 남북정상회담이 허망한 결과가 나오자 다시 꺼내든 "국가 방위력 건설"의 핵심이다.
북한은 우라늄 채굴부터 사용후 연료 재처리 및 핵무기 생산에 이르기까지 핵 주기를 완성해놓고 있다. 미사일 개발 및 제조 능력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남한의 20-30분의 1 정도의 군사비를 쓰면서도 한미동맹을 상대로 "군사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까닭이다.
이제 우리는 이 두 가지 미신에서 깨어나야 할 때이다. 그리고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군사적 갈등에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대북정책과 국방정책은 별개가 아니라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바로 국방정책임을 깨달아야 한다. 동시에 이미 한국의 군사력이 대북 억제가 충분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새로운 인식, 즉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바로 국방정책이고 한국과 한미동맹의 대북 억제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자각은 새로운 대북정책 논의에 생산적인 물꼬를 터줄 수 있다. 임기 말에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경쟁적으로 국방력 강화를 외치고 있는 유력 대선 후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