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여성가족부는 2020년 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한 2149개 상장기업의 성별 임금격차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양성평등 임금의 날' 시행에 따라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성별 임금격차 조사는 최초라며 그 의의를 소개했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 대비 35.9%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결과는 여타 조사와 다를 바 없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말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어떤 조사든 30%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며 1년에 1%도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2019년 대비 0.8%가 격차가 줄었다는 것보다 성별 임금격차 이면에 있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가족이 아니라 일터가 원인이다
그동안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겠다며 정부가 꾸준히 실행해온 대책은 모‧부성 보호 제도나 가족친화기업 인증제와 같은 '일‧가정 양립 정책'이다. 성별 임금격차 문제의 해법을 가족정책에서 찾는 이유는 출산과 양육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경렬단절을 저임금의 주된 원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육아휴직의 사용이 퇴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가족친화 기업을 독려해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으면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여성의 경력이 끊기고 이로 인한 임금격차의 발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국가에서나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성별 임금격차를 줄여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일‧가정 양립 정책은 충분한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30대 인구 10명 중 4명이 결혼하지 않았고, 출산은 더욱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2020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대비 2020년 1인 가구는 10%p가 늘어 전체 가구 중 약 30%까지 늘어나는 동안,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가구는 12.5%p가 줄어 31%를 차지했다. 정부가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원하겠다는 '가족' 자체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철민 의원이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자녀돌봄 설문조사'에서 맞벌이 가구 중 연차 사용이 어렵다고 응답한 사람이 69%,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응답한 사람은 84%였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돌봄지원 정책조차 대상자들에게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가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돌봄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의 저임금 문제는 다 연결되어 있지만,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로 적당히 버무린 가족지원정책만으로는 그 무엇도 해결하지 못한다. 고착화된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일의 세계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경험이다.
차별이 성별 임금격차를 만든다
임금은 그저 노동자 개인의 능력이나 생산성의 결과물이 아니다. 노동시간, 회사의 규모, 노동조합의 존재 여부 등은 물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지까지 포함하여 일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총체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성별에 따라 임금격차가 크게 발생한다는 것은 여성이 일의 세계에서 남성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흔히 여성이 일의 세계에 진입하고 결혼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하지 않는 동안에는 남성과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2017년 대졸자의 첫 일자리 월평균 소득은 남성이 약 241만 원인데 반해 여성은 197만 원에 불과하다. 시작부터 약 20%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임금격차가 어떻게 가능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2018년 밝혀진 금융기관의 채용성차별이었다. 하나은행, 신한금융, KB국민은행 등 굵직한 금융기관에서 남성을 많이 뽑도록 성비를 미리 정해두고 여성 지원자의 점수를 임의로 조작해 탈락시켜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여론의 강력한 지탄 속에 각 금융기관은 여성의 채용 비율을 늘리겠다고 하고 후속보도를 통해 여성 채용자가 신규 직원의 절반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절반에는 '텔러'라 불리는 80%가 여성인 창구 업무 전담 계약직을 포함시킨 결과였다. 여성이 소위 대기업-정규직-고임금 일자리의 문을 통과하기 더 어렵고, 비정규-저임금 일자리로 쉽게 내몰리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왜 여성이 첫 직장을 얻으면서부터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게 되는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채용과정만이 아니다. 성별 임금격차를 심화시키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근속연수다. 남성에 비해 짧은 여성의 근속연수는 호봉, 승진, 경력 등에 영향을 미쳐 저임금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정부가 가족 정책을 통해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겠다고 나서는 이유도 바로 이 근속연수 때문이다. 그럴 때 살펴야 하는 것은 과연 일터라는 공간이 오랜 기간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갖춘 곳인가 이다.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성차별적인 일터에서 오랜 기간 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회식 자리에서 남성 상급자 옆자리에 젊은 여성 직원이 앉도록 하는 것과 같은 구태는 그나마 언론에 오르내리면 잠시나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사회적 확인이라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터의 일상에서 공기처럼 흐르는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같은 직급의 남성 노동자에겐 시키지 않는 사무실 책상 정리를 여성 노동자에게만 지시하고, 이를 거부하면 배려심이 없고 이기적인 사람처럼 평가한다. 임금 인상을 이야기하면 여자가 그 정도 받으면 된다는 식의 반응하고, 애인이 있는지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관리자의 질문은 퇴사를 압박한다.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 실태와 제도개선 방안 연구'에서는 유형과 상관없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20-35세 이하 노동자가 성차별을 자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근속연수가 짧은 이유는 그저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을 동등한 노동자로 대우하지 않는 일터라는 조건이 강력하게 작동한다. 애초에 회사는 여성 노동자를 직장에 '충성'하고 '헌신'할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여성 노동자에게 어떠한 비전도 보여주지 않고 값싸고 쉽게 부릴 수 있는 노동력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같은 연구에서 이직을 경험한 여성의 약 60%가 이전 직장의 성차별이 이직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배경이기도 하다.결국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의 세계에서 여성 노동자가 경험하는 차별적인 조건들을 바꿔낼 때 가능하다. 이는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바꿔낼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요구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여성 노동자에게 권리를
성별 임금격차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 반복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더 높고, 직급이 더 낮고, 작은 기업규모에서 일하며, 노동시간이 짧은 일자리에서 일하기 때문에 저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되었다. 비정규직이라서 고용이 불안해지고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회사와 그런 회사를 용인하는 사회가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킨다. 여성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기만 해도 성별 임금격차가 평균 5%p가 줄어들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여성 노동자는 10%p이상 격차가 감소한다는 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노동자로서 모이고 말할 권리가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조건을 개선시키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별을 당하면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부당한 해고에 맞서고 정당한 임금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보장이 곧 성별 임금격차의 해소 방안이다.
20년이 넘도록 OECD 가입국 중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를 조사하면 언제나 1등을 차지해왔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대책 한번 내놓지 못했기 때문일까. 이제 한국사회에서 성별 임금격차는 실체가 없다고 하거나, 차별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정당한 주장인 것처럼 둔갑하는 지경이다. 성별 임금격차는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여성의 현실 그 자체다. 여성에게 부모육아휴직이나 휴직급여를 시혜처럼 베푸는 지원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내놓아야 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안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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