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2019년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라도 만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런 바람을 가지고 '남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과 전략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성찰과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숱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8월 한미연합훈련 강행과 내년도 국방예산안 및 2022~2026년 국방중기계획을 보면서 마지막 기대마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솔직히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대통령 스스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마지막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실제 정책은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쪽으로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국방부는 내년도 예산을 포함해 향후 5년간 315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에서는 사병의 급여 및 급식비 인상안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국방부도 밝힌 것처럼 국방중기계획의 핵심은 5년간 106조 원이 넘는 방위력개선비, 즉 무기 구매 예산을 투입해 첨단 무기를 대거 도입하겠다는 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군사적 합리성 차원에서도 의문시 되는 사업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경항공모함 및 한국형 아이언돔, 그리고 미사일방어체제(MD) 관련 예산이 대표적이다.
또 합동 전력 차원에서 전력을 구성하기보다는 육해공의 나눠먹기 사업들도 대거 포진해 있다. 그만큼 중복투자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사시 평양을 속전속결로 점령하겠다는 '입체기동작전' 관련 예산도 대폭 늘었다. '묻지마'식 군비증강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끝없는 탐욕'이다. 무기 체계의 수명을 20-30년이라고 볼 때, 이미 우리나라는 엄청난 국방비를 투입해 상당한 무기와 장비를 구매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그러하다.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2위로 평가받았던 군사력이 작년과 올해 세계 6위로 평가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와 군은 이미 사들인 무기와 장비를 잘 운영할 생각보다는 새로운 무기를 더 사들이고 있다. '첨단무기 중독증'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통일외교국방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성과(?)는 세계 6위의 군사력이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 가운데 가장 잘 지켜진 것도 이것이 될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세계 5위의 군사강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지금과 같은 대규모 군비증강이 계속되면 다음 총선(2024년) 이전에 5위로 올라설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후퇴시키고 앞으로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기에 너무나도 씁쓸하다. 국방비를 동결하거나 조금 줄여서 자영업과 보건·의료 분야 지원에 사용했다면, 생존의 벼랑 끝에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생명의 다리 몇 개는 놓을 수 있었기에 너무나도 안타깝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무장해제나 급격한 군축이 아니다. 이미 상당한 군사력을 건설한 만큼, 이제는 국방비를 조절해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는 데에 쓰자는 것이다.
국방비를 동결하거나 소폭 감축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방위력건설비는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이제는 과도한 군비증강보다는 군사적 합리성에 기초한 적절한 군비증강을 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합의해놓고 실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을 해온 '언행불일치'를 조금이라도 개선하자는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