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쓴맛에 대한 거부감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 독성이 있는 식품에는 쓴맛이나 아린맛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그렇게 쓴맛에는 거부감을 갖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의 쓴맛은 입안에 오랫동안 남아 지속적으로 혀에 자극을 주는 쓴맛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기 보다는 그 자체의 쌉싸래한 맛을 즐기면서 오히려 그 쓴맛과 쌉싸래한 맛에서 상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커피나무의 열매인 커피생두를 로스팅 하게 되면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휘발성 향기 성분들이 생성되고, 떫은 맛 뿐이었던 커피생두가 고소한 맛, 단맛, 신맛, 감칠맛, 쓴맛 등의 여러 가지 맛을 지닌 커피원두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처럼 다양해진 커피의 맛 중에서 대표적인 맛은 과연 무엇일까? 요즘 커피 맛의 트렌드를 보면 신맛이 커피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고, 일반적으로 단맛과 고소한맛을 커피의 맛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맛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커피의 쓴맛은 커피 음용이 시작되면서부터 커피를 대표하는 맛이었고 지금도 커피 맛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맛 요소이기 때문에 커피맛에 있어서 쓴맛은 커피맛의 균형을 잡아주고 커피의 본연의 맛을 말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25종이 될 정도로 다양한 쓴맛을 느낄 수가 있고, 그 역치(생물이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 또한 다른 맛에 비해 낮은 편이기 때문에 쓴맛에 굉장히 민감하다. 때문에 커피의 쓴맛과 다른 식품의 쓴맛을 구분할 수 있다.
한편 쓴맛은 여러 성분으로부터 느낄 수가 있는데 그 성분에 따라 긴 시간 고통을 주는 쓴맛부터 아주 짧게 쓴맛을 주는 성분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커피의 쓴맛 또한 커피의 가공이나 로스팅에 따라 쓴맛도 다양하게 나타나며 다른 맛들과의 조화를 이룰 때도 있고 다른 맛들을 상쇄시키면서 쓴맛만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커피에서 쓴맛을 내는 물질은 약 30여종이라고 밝혀졌는데 퀸산, 트리고넬린, 클로로젠산, 카페인, 갈색색소 등이 대표적이다.
커피의 쓴맛을 내는 성분 중 카페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피의 쓴맛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성분으로 알고 있는데 카페인이 쓴맛을 내지만 그 역치가 낮아 커피 전체의 쓴맛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오랫동안 입안에 남아있는 나쁜 쓴맛도 아니다.
오히려 커피에서 좋지 않은 쓴맛을 내는 성분은 카페인의 쓴맛 역치보다 약 10배 정도가 낮은 퀸산과 클로로겐산 락톤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로스팅 과정을 통해 생성이 되며 이 성분들의 생성을 줄이는 로스팅을 통해 커피의 쓴맛을 짧고 상쾌한 맛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로스팅 단계가 강할수록 커피의 쓴맛은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클로로겐산 락톤의 분해물인 페닐인단(Phenylindanes)이 강하게 로스팅 된 커피에 많이 생성이 되고 로스팅이 강하면 강할수록 캐러멜화가 더욱 많이 진행되기 때문에 쓴맛을 내는 갈색색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커피의 쓴맛은 커피나무 종(種)에 의한 차이도 있는데 카네포라종은 아라비카종 보다 클로로겐산과 알칼로이드 성분의 함량이 높기 때문에 동일한 로스팅 단계일지라도 아라비카종 커피보다 쓴맛이 더 많이 생성될 수 있다.
그렇기에 커피의 짧고 상쾌한 쓴맛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커피 종의 선택과 커피생두의 가공, 로스팅, 추출 전 과정에서 좋지 않은 쓴맛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커피의 대표적인 맛 중 하나가 쓴맛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커피는 쓰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커피가 쓴맛을 가지고 있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커피산업과 문화의 발전사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커피 음용의 시작은 정확한 기록이 없기때문에 조선 후기 무렵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2013 대한관광경영학회에서 발표된 ‘문헌을 통해 본 우리나라의 커피역사’를 참고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커피는 조선 후기에 외교업무를 보던 공사관 또는 외국문물을 접하기 쉬운 상인들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이때의 커피는 고급스러운 기호식품으로 대중들이 널리 소비되지는 않았고, 커피의 대중화가 시작되게 된 배경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의 보급품으로 건조 방식의 커피가 대량생산 되면서랃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급속한 산업 발전을 이뤄가던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는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문화가 아닌 바쁜 일과 속에서 피로를 풀기 위해 빨리 한 잔씩 마시는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커피의 다양한 맛을 즐기는 원두커피 문화가 아닌 커피의 쓴맛과 약간의 구수한 맛만 내어주는 조제커피를 음용하는 문화가 크게 발전을 하게 되었다.
편리한 조제커피의 인기로 인해 쓰고 구수한 맛이 커피의 대표적인 맛이 되어 버렸고, 쓴맛을 중화시키기 위한 크림과 당과 같은 부재료들이 첨가된 여러 종류의 커피가 생산되고 소비되면서 되면서 우리나라의 커피산업과 문화는 조제커피가 2000년대 초반까지 주도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로 우리나라의 조제커피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지만 원두커피 시장은 더디게 발전되는 결과를 나타내게 되었다.
하지만 급속한 우리나라의 커피문화 발전으로 인해 요즘에는 ‘커피는 쓰기만 하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오히려 커피 속에서 신맛, 단맛, 쓴맛, 고소한맛, 감칠맛 등 다양한 맛과 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커피는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맛 요소의 균형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인 맛일 수 있는 쓴맛도 커피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 이유는 커피의 쓴맛이 단맛과 고소한맛 그리고, 상큼한 신맛까지도 잘 살려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커피의 좋은 쓴맛을 잘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너무 강하게 로스팅 된 커피원두는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커피 추출 시에는 과다 추출을 방지하기 위해 커피원두의 분쇄도를 너무 곱게 하지 않으며, 추출수의 온도를 85~95℃ 정도로 조절하는 것이 커피의 좋은 쓴맛을 표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가지 요소를 잘 참고 한다면 커피의 온전한 맛을 잘 즐길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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