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원하는 출력을 유도하여 내는 규칙의 집합. 여러 단계의 유한 집합으로 구성되는데, 각 단계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연산을 필요로 한다."
국어대사전에 '알고리즘(Algorithm)'을 검색해보면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다. 역시, 국어사전은 너무 딱딱해. 그럼 이걸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사이드경제>는 이런 상대를 만나면 구체적인 사례를 갖고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가 다루려 하는 플랫폼에서 AI(인공지능)와 알고리즘 문제는 핵심 쟁점 중 하나가 아니던가.
AI 배차 알고리즘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 알고리즘이 바로 배달·배송이나 택시·대리운전 등에서 볼 수 있는 배차 알고리즘이다. 내가 집에서 앱을 통해 음식 배달을 주문하면 어떤 원리(알고리즘)로 라이더가 선택되어 오는 걸까? 또는 앱을 통해 택시를 호출하면 어떤 기준(알고리즘)으로 기사가 선택되는 걸까? 이런 게 모두 배차 알고리즘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거리'가 아닐까? 음식점과 우리 집 사이의 거리는 정해진 것이니 변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배달 앱은 음식을 픽업하기 가장 빠른 곳, 그러니까 음식점에 가장 가까이 있는 라이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택시와 대리운전 앱 역시 현재 내가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기사들을 선택해주지 않을까?
문제가 이렇게 단순하다면 알고리즘과 AI가 쟁점이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배차 알고리즘에 포함된 원리와 기준에는 '거리'만이 아니라 '충성도'가 반드시 포함된다. 음식점에서 가장 가까운 라이더가 1km 거리에 있다. 그런데 여러 차례 일감을 배정했지만 번번이 거절한 라이더이다.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질까?
1km보다 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일감 배정(콜)을 거절한 적이 없는 라이더에게 배차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콜 거절과 함께 소비자로부터 받은 별점 등 평가 점수도 배차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과 원리가 된다. 제시간에 도착했느냐 여부가 평가에 가장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니 라이더들은 교통신호 준수보다 시간 맞추려 위험운전·곡예운전을 강요받는다.
'충성도'라는 게 기준과 원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도 논란거리지만, 이게 어디 숫자로 쉽게 평가되는 항목이던가. 그러다 보니 AI 배차 알고리즘은 언제나 쟁점이 된다. 그래서 알고리즘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나오게 되고, 플랫폼사들이 이를 영업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자 몇몇 언론사 기자들은 직접 라이더나 택배 노동을 하며 알고리즘 검증에 나서기도 했다.
알고리즘 검증에 나선 언론과 노동조합
최근에는 배달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는 라이더유니온도 직접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실시간 검증에 나선 바 있다. <인사이드경제>는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직접 수행한 알고리즘 검증, 그리고 최근 라이더유니온이 실시한 검증 내용 중에서 겹치는 부분, 즉 전형적인 문제점들을 몇 가지만 간추려 소개해보기로 한다.
➀ 배달원은 하늘을 나는 능력자?
배달앱을 'ON' 시키면 AI가 잡아준 주문에 '수락' 버튼을 누르면 배달이 시작된다. 앱에는 음식점까지의 픽업 시간 내지 고객에게 전달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는데 매번 시간이 부족하다. AI는 라이더가 있는 지점부터 목표지점까지 직선 거리를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픽업 내지 전달 시간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6월 7~9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된 라이더유니온의 알고리즘 실시간 검증에서도 나온 것처럼, 구불구불한 도로나 오르막·내리막을 구분하지 않고 AI는 그저 직선 거리(3.6km)를 기준으로 도착 목표시간을 설정한다. 하지만 가운데 건물이나 고가도로, 구조물을 뛰어넘어 날아갈 때에나 적용될 수 있는 거리다. 실제로는 돌고 돌아 6.3km를 달려야 했다.
(관련 기사 : "벽 뚫고 철로 가로질러 배달하라? 배달앱 지도엔 좌회전도 우회전도 없다")
➁ 난 누구? 여긴 어디?
신축 아파트단지는 입구 찾기가 어렵다. 아파트의 여러 개 건물 중 하나를 찾는 길에 끝도 없는 계단을 만났다. 분명 주민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전달 시간은 몇 분 남지 않았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던가 아니면 그냥 음식을 들고 뛰는 수밖에 없다.
건물을 찾아서 1306호에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건 1~2호 전용이었다. 다시 내려가 5~6호 전용 엘리베이터를 찾아 땀을 뻘뻘 흘리며 뛰기 시작한다. 배달을 마치고 나서 다음 콜을 잡기 위해 음식점이 밀집된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번엔 이놈의 아파트단지 나가는 길을 못 찾겠다.
이런 현상은 서울 시내 큰 대학에 들어가면 훨씬 더하다. 우선 대부분의 대학이 오르막길이고 기숙사나 부속병원 등의 건물은 외진 곳에 있고 길 찾기가 수월하지 않다. 게다가 새로 생긴 건물들이 많아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도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AI는 그저 건물 이름과 호수, 전달시간만 통보해줄 뿐 길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➂ '똥콜' 거부하다간 '징역' 간다
라이더(배달원) 사이에선 먼 거리 배달 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주문을 '똥콜'이라 부른다. 이런 콜이 들어오면 거절하면 간단한 일 아닐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알고리즘은 거리만이 아니라 충성도를 중요한 배차 기준과 원리로 삼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문 배정(콜)을 자꾸 거부하게 되면 다음 콜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심지어 몇 회 이상 콜을 거부하게 되면 1주일 계정 정지와 같은 페널티가 부과되기도 한다. 라이더들 사이에선 이런 일을 '징역 간다'고 표현한다. 계정이 정지되면 "ON" 버튼을 누를 수가 없으니 이 플랫폼사의 앱을 통해서는 1주일간 어떤 배달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밥줄이 끊어진다는 얘기이다.
(관련 기사 : '깜깜이' 배달콜, '똥콜' 걸리자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왔다)
AI의 부정확성을 노동자에게 전가
자, 그럼 이쯤에서 개념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알고리즘이란 무엇일까? 앞서 배차 알고리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배달이라는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배달원(라이더)에게 일이 배정되는 과정에 적용되는 원리와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알고리즘이 적용된 디지털 시스템이 바로 AI인 것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AI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정확성이 한참 떨어진다. 배달원이나 택시가 어디쯤에 있는지 위치 정보까지 표시해줄 정도로 기술은 발전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거리가 아니라 직선 거리를 기준으로 배달 시간을 계산한다거나, 위치 정보와 길 안내 수준은 '기술 혁신'이란 이름을 붙여주기엔 너무나도 허접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제아무리 뇌 역할을 흉내 낸다 할지라도 인간의 판단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알고리즘을 통해 AI가 배차를 진행하긴 하지만 AI의 부정확성, 이를테면 △ 어느 길로 다니며 헤맬 것인지 △ 어떤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지 △ 복잡한 이 길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등 일의 최종 완성 책임은 배달원(라이더)에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직선 거리를 기준으로 삼는 것 역시 실제 거리를 계산할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직선 거리를 기준으로 삼아야만 배달 시간을 짧게 산정할 수 있고 그만큼 배달원(라이더)들을 쥐어짤 수 있는 거다. 화장실 갈 시간도, 잠시 땀 닦을 시간도 없이 정해진 시간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드는 것. AI와 알고리즘은 그저 거들 뿐 실제 일의 완성은 노동자가 다해야 한다.
일의 배정에 관여하는 알고리즘은 취업규칙
물론 알고리즘은 위에 설명한 사례보다 훨씬 다양한 곳에 활용된다. 이를테면 최근 네이버가 자사의 쇼핑·동영상 검색 알고리즘에서 자사 상품과 동영상이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조작해온 사실이 드러나 공정위로부터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라이더 배정이 아니라 고객과 음식점을 중개하는 배달앱 상에서 어떤 알고리즘으로 각종 음식점 홍보가 이뤄지는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하지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인사이드경제>가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플랫폼 알고리즘은 주로 '일의 배정에 관여하는 플랫폼', 즉 지난 글에서 얘기한 '좁은 의미(협의)의 플랫폼'에서 사용되는 알고리즘을 다루고 있다. 일감이 어떤 순서로 배정되는지,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는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 말이다.
"일감의 배정과 취소, 일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평가와 페널티 부과, 임금(가격)의 결정 기준과 원리 등을 정해놓은 것"을 알고리즘이라 했는데, 만일 이게 디지털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그렇다. '취업규칙'이다.
"그거 다 AI가 하는 거에요"라는 거짓말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하는 제빵사를 예로 들어보자. 본사는 전날까지 팔린 빵에 대한 빅 데이터를 활용해 그날그날 잘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빵의 종류와 수량을 결정해서 지시한다. 제빵사는 지시에 맞게 시간에 맞춰 굽는다. 빵을 제대로 굽지 못하거나 실수를 할 경우 평가에 반영되며 때로는 임금이나 승진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걸 정해놓은 것이 바로 취업규칙 아닌가.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예로 들어보자. 1~2개월 동안 축적된 백 오더(차량 주문 내역)에 따라 그날그날 어떤 차를 얼마나 생산해야 하는지가 결정된다. 정해진 조립설명서에 따라 생산이 이뤄지고 불량이나 부품 이종(異種)이 생기면 평가에 반영하며 때로는 임금이나 공정 배치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기준과 원칙이 바로 취업규칙 아니던가 말이다.
배달·대리운전·모빌리티·택배 등 '좁은 의미의 플랫폼'에서 배차 알고리즘, 즉 일감 배정에 관여하는 알고리즘이 문제가 될 때마다 플랫폼 업체들은 "그거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AI가 하는 거에요"라며 피해가려 한다. 하지만 똥콜을 몇 번 이상 거부하면 징역을 보내는지 결정하는 건 AI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들이다. 그 기업의 결정사항이 AI에 프로그래밍 되는 것일 뿐이다.
애꿎은 AI와 알고리즘 핑계를 대는 이유는 이들 플랫폼 기업들이 라이더를 비롯해 택배·모빌리티·대리운전 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단순히 중개만 하는 넓은 의미의 플랫폼과 달리, 일감 배정과 가격 결정이라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통제하는 좁은 의미의 플랫폼은 알고리즘 자체가 취업규칙 역할을 하는 만큼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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