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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 '대선 공약' 다시 돌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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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 '대선 공약' 다시 돌아보길"

[특집 인터뷰]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③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정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기존 정규직과 취업준비생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 비정규직 직접고용이 발표됐을 때는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정규직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정' 담론이 등장했다. 지난 6월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이 파업에 들어가고 정규직이 이에 반대하는 가운데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이 비정규직의 파업 중단과 정규직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협의 테이블 참여를 요구하며 단식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잘못된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6월 <경향신문>에 실은 칼럼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거짓말이고 경제의 도덕화'라며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아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 격차 해소와 관련해서는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월 '첫 정책 과외교사'로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만난 뒤 정 교수의 평소 지론인 '직무급'이 주목받는 일도 있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잘못된 정책일까.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대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일 서울 합정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인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을 만났다.

조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평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 '바람직한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방안'을 주제로 세 편에 걸쳐 게재된다.

바로가기 : [인터뷰 ① : "문재인 정부, 집권 초와 달리 노동정책 유턴했다"]
바로가기 : [인터뷰 ②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경제의 도덕화'라는 강준만에 반박한다"

임금 격차 감소 위해 정부, 국회, 노조가 할 일

프레시안 : 한국사회의 임금 격차가 심각하다. 이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돈문 : 임금 격차를 보면, 대기업, 중소기업 격차 있고 성별 격차, 정규직 비정규직 격차 있다. 그 중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보다 여성에 비정규직이 많고 구모로 보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이러한 구조, 즉 고용 형태별, 기업규모별, 성별 임금 격차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를 줄이려면 상대적 저임금 부분인 중소기업,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올려야 한다.

프레시안 : 이를 위한 것인 최저임금 인상인듯 싶다.

조돈문 :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임금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려면 비정규직이 노조로 조직돼 있어야 효과가 있다. 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20% 정도 되는데, 비정규직은 2%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노동조합으로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는 효과는 사회적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상 최저임금 외에는 비정규직 임금을 올릴 방법이 없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는 이걸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계속되지는 않았다.

프레시안 : 최저임금 인상 말고는 임금 격차를 줄일 방법은 없는가.

조돈문 : 법적으로는 여러 '차별 처우 금지 조항'을 '동등 처우 조항'으로 바꿔야 한다. 노동관계법에는 기간제, 파견, 단시간 노동자 등에 대해서 정규직과 차별 대우를 못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이게 실효성이 없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노동자가 차별 처우를 받았을 경우, 이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등 처우 조항'으로 바꾸고 사용자가 이를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 즉, 사용자가 노동자를 다르게 처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 이렇게 동등처우 방식으로 바꾸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노동시장 정책으로 보면,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정이라는 불이익을 받고 있으니 기업이 이를 금전적으로 보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는 비정규직 근로계약 갱신이 안 되면 회사가 계약종료수당을 따로 줘야 한다.

멀리 볼 필요 없이 경기도가 금년 1월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에게 고용불안정을 보상하는 공정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를 공공부문에 전체에서 시행하고 민간 부문에 확산하면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 높아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줄면 기업이 비정규직을 쓸 인센티브가 낮아진다.

프레시안 :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에는 노동조합의 역할도 중요할 듯하다.

조돈문 : 하후상박(下厚上薄) 임금 인상 정책이다. 정규직 임금을 깎을 필요는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에 차별화를 두면 된다.

프레시안 : 정규직 임금을 깎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을 듯하다.

조돈문 : 스웨덴의 연대임금을 참고하면 된다. 스웨덴은 매해 노사간 임금 교섭을 할 ,때 먼저 내년 임금 인상 총액을 정한다. 그리고 그 총액에서 누구에게 얼마의 임금을 올릴지는 노조가 사업체 단위 교섭에서 연대임금 정책에 따라 확정한다. 보통 임금 수준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인상률을 누진적으로 적용한다. 이를 '저임금 특례조치'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임금 격차를 줄여 나간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 인상률의 혜택을 주면 임금 격차를 축소할 수 있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도 이런 조치를 하는 노조가 있나.

조돈문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가 예전부터 하후상박형 임금인상률 차등 정책으로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줄이려 노력했다. 희망연대노조와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도 그렇게 한다. 지금 말한 사례들은 민주노총 노조들인데 한국노총에서도 금융노조가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런 식의 임금 인상 정책을 실천해왔다. 그런 모범 사례가 있다. 이런 노력들이 확산되면 된다.

다른 정규직 노조 중에서도 여론의 비판과 따가운 시선이 부담되니 비정규직과의 연대에 대해 전향적으로 전략 변화를 고민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가 어느 정도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금속노조나 보건의료노조는 산별 체계가 어느 정도 잡혀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저임금 특례조치' 같은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산별노조가 임금 격차를 줄이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조돈문 : 노사가 산별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확장성이 있다. 현대자동차의 개별 기업 단체협약을 다른 사업장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금속노조가 산별 협약을 체결하면 해당 산업의 모든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다. 노조법상 지역 직종 단위로는 이것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지역적 구속력 조항이다. 한 지역 동종 노동자의 2/3 이상을 조직한 노동조합이 맺은 단체협약을 해당 지역 동종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게 돼 있다. 이것을 더 확대해야 한다. 현재 노조조직률이 10%에 불과한데 2/3의 조직률 기준은 지나치게 높다. 이를 대폭 낮춰야 해당 산업 지역의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지역별로 산별 교섭을 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말인가.

조돈문 : 산별교섭을 하려면 상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노동시장은 대체로 광역 수준에서 산업별로 형성된다. 서울에서 목공일을 하면 서울 시내 건설 일자리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파주나 의정부까지도 전철 타고 갈 수 있다. 강원도나 전라남도 같은 곳으로 가면 서울만큼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긴 하지만 대체로 사정은 비슷하다.

그러면 정부 일자리 정책도 광역 단위에서 산별로 펴고. 여기에 맞춰 노사정이 참여하는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어 일자리정책을 협의할 수 있다. 여기 참여하는 노사 단체 대표가 초기업 수준의 단체교섭을 하고 이를 광역 단위 산별로 적용하면 된다.

2009년에 복수노조를 합법화할 때 국회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한 사업,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있을 때 다수노조에게 단체교섭권을 주는 제도)를 통과시켰다. 그때 민주당에서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만들면 산별교섭을 지원하고 단체협약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규정도 같이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런 고민을 살려야 한다.

▲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임금체계 개편, 직무급 요소 도입 필요하지만 노사가 함께 만들어야"

프레시안 : 지난 4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만나면서 직무급이 회자됐다. 직무급이 그 정도로 언론 조명을 받는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임금 격차 개선 대안으로 많이 다뤄졌다. 직무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돈문 : 정규직 임금체계가 대개 호봉제다. 호봉제에서 혜택을 받는 사람이 있고 못 받는 사람이 있다. 예컨대, 인천공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초임을 비교하면 차이가 크게 안 난다. 그런데 정규직에게는 근속연수를 보상하는 호봉제가 있지만 비정규직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자연히 근속연수가 올라갈수록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가 급격하게 커진다. 호봉제를 개편하려면, 직무급적 요소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는 호봉제에 어떻게 직무급적 요소를 들여와야 하나.

조돈문 : 스웨덴의 자동차회사 볼보에서도 근속연수가 오르면 임금이 오른다. 여기엔 호봉제가 아니라 숙련급 개념이 적용된다. 생산직이건 사무직이건 노동자가 일하면 숙련이 쌓인다. 그에 대해 보상한다. 12년 차까지 임금을 올려준다. 12년이 되면 '숙련 축적이 다 되었다'고 보는 거다. 이 숙련급 개념이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 임금체계에 직무급적 요소를 도입하려면 체계적인 직무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노사가 함께 직무 조사하고 동일가치노동을 판단해야 한다. 사용자들은 어떤 직무가 동일가치노동인지 잘 모른다. 연구용역을 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직무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바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이다. 자기들이 하는 일이니 어떤 일이 더 어렵고 위험한지 안다. 노사가 함께 동일가치노동을 분류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게 돼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임금체계에 직무급적 요소를 도입할 수 있다.

이때 직군이나 직급과 단계를 너무 많이 나누면 안 된다. 직군 수는 물론 직급과 단계의 수를 최소화하고 직급 간, 단계 간 임금 격차도 줄이는 방식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예컨대, 청소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 청소노동자와 다른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독일이 그렇게 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할 때 '표준임금체계'라는 걸 만들어 해보려고 했다. 이에 대해 나는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안을 낼 때 노동계가 비판하고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적 임금 체계를 내라고 이야기했다. 그 당시 한국노동연구원이 표준임금체계를 만들었는데, 나름대로 직급 간, 단계 간 임금 격차를 줄였다. 임금 격차를 줄이는 건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격차를 줄인다면서 최저임금 수준으로 임금을 하향평준화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민간부문에도 공공부문과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가 있다. 최소한 동일 직무의 민간부문 중위임금과 공공부문 중위임금을 맞췄어야 했다.

프레시안 : 임금체계 개편안을 만드는 과정도 중요할 것 같다.

조돈문 : 노사가 같이 만들지 않으면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안을 만들어도 확산되지 않는다. 노사 협의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면. 호봉제에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야 할 거다. 호봉 간 격차는 줄이고 초봉 수준은 높이는 한편, 수당에 비해 기본급 비중을 높여야 한다.

물론, 기본급 비중을 높이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복잡한 임금체계가 걸림돌이다. 한국에서는 단체교섭 할 때마다 이상한 수당이 자꾸 붙는다. 그리고 그 혜택은 정규직만 본다. 현대차를 예로 들면 사측에서 정규직의 기본급을 올리기는 부담스럽고, 노조는 나름대로 성과를 내야 하니 새로운 수당을 만든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임금체계를 이제는 단순화할 때가 됐다.

프레시안 : 개별 사업장 노사 합의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산별로 논의하거나 정부가 들어오는 식으로 큰 틀에서 진행해야 할 텐데 이것이 가능하느냐가 늘 문제다.

조돈문 : 공공부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공부문에서도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시행된 부문부터 시작할 수 있다. 전환 노동자의 임금체계를 어차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표준임금체계 적용 대상도 전환 노동자였다. 그런데 최저임금 수준으로 하향평준화해 임금체계를 만들었으니 누가 받겠나.

프레시안 : 임금체계 개편의 물꼬는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조돈문 : 임금체계에 대해 문제의식이 많다. 정규직 노조가 과거에 비해서는 임금 연대를 많이 한다. 진전되는 부분이 있다.

▲ 2018년 작성된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모델(안). 1급 직무 1단계 월급이 당해년도 최저임금 157만 3770원(시급 7530원 X 209시간)과 동일하다. ⓒ민주노총

한국 사회 불평등 해소 위한 상생과 공존의 조건

프레시안 : 과거에 비해 나아진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규직 비정규직의 갈등을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이기도 한다.

조돈문 : 건보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정규직이 반대한다. 인천공항에서도 정규직이 반대했다. 심지어는 전교조도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했다. 이런 데가 많다. 그런데 그런 반대가 정상이다. 모든 노동자가 임금수준 높이고 고용안정성 강화하길 원한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임금 수준을 높이라는 거나 정규직이 내거 지키라는 건 어떤 면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한국사회에는 그런 조건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조돈문 : 지금은 정규직이 자기 걸 지키는데 골몰할 수밖에 없게 돼있다. 현대자동차가 1998년에 정리해고를 했다. 회사가 진짜 어렵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명예퇴직을 받았다. 그런데 재정위기라던 현대차가 곧바로 천문학적인 돈을 써 기아차를 인수했다. 노동자들 보기에 회사가 사기 친 것이었다.

현대차 정리해고 이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퇴직자들이 굉장히 오랜 기간 일자리를 못 찾고 건설 일용직으로 일한다. 원래는 실업자들이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에 고용보험 혜택을 잘 받으면서 전에 일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그때 명예퇴직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후배들 보고 '너희들 기업에 위기가 오면 반드시 명예퇴직 받고 회사 살리라'고 하겠나. 아니다. 반대다. '너희는 때려죽인다고 해도 공장에 남아라'고 한다. 노동자 개개인은 바뀌어도 노동자 집단은 그대로다. 게임 상대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전 사례를 보고 학습하고 경험하고 판단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나 기업은 너무 근시안적으로 단기 처방만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와 사가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조돈문 :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전국민고용보험 이야기를 계속하게 된다. 해고 문제를 보면, 정규직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고 볼 수도 있다. 80% 이상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다. 비정규직은 40%밖에 못 받는다. 그런데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경우도, 실업급여 평균 수급기간이 3~4개월이고, 소득보전율은 3~40%다. 다시 말하면 정리해고 된 다음 받는 실업급여 총액은 한달치 월급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그 사이에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생계도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상시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으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잘 펴서 일자리와 구직자를 빨리 매칭해야 한다. 스웨덴의 1/10밖에 되지 않는 일자리 상담 인력으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니 이를 확충해야 한다.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제도도 확충해야 한다.

프레시안 : 스웨덴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고용보험은 어떻게 되어 있나.

조돈문 : 우리에 비하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훨씬더 잘 발달돼있다. 해고돼도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해고되면 일자리 중개청에 바로 신고되어 일자리 중개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노사교섭으로 설립된 고용안정기금은 노동자들이 해고 통지 시점부터 상담과 취업알선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실제 통지된 해고가 실현되기도 전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경우도 많다.

또, 스웨덴에서는 실업급여를 보통 12개월까지 받을 수 있고. 소득보전율도 70% 수준이다. 일자리를 찾는 동안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여유가 있다. 해고된 구직자가 적성에 맞고 평생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재취업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하면 새로운 직업교육훈련도 받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스웨덴이 OECD 국가, EU 국가 중에 경제위기 타격을 가장 크게 받았다. 그런데 극복도 가장 빨리 했다. 위기의 타격을 심하게 받았는데 스웨덴에서는 총파업하고 결사항전하고 머리띠 두르는 게 없었다.

프레시안 : 사회안전망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조돈문 : '스웨덴에서 노동조합이 세계 최고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데, 왜 노동자들이 그렇게 조용하게 정리해고를 수용할까'를 연구한 적이 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실업자 소득보장제도가 잘 돼 있다. 사회적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한국과 스웨덴에 큰 차이가 또 있었다. 노사 간 상호신뢰다. 그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거고. 신뢰란 매번 검증돼야 유지될 수 있다. 그 증거가 있다. 스웨덴의 경우, 해고자들이 자기를 해고한 기업에 재취업하는 비율이 1/3이다. 당연히 해고자 재취업 우선제도가 있다. 한편으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고용보험이 잘 되어 있다 보니, 나중에 해고된 기업에서 돌아오라고 할 때 '이미 재취업한 일자리가 전망도 좋고 적성에 맞다. 인간관계도 형성됐다' 그래서 안 돌아갔다는 사람도 많다.

또, 노동자대표이사제가 있어서 노동자들이 회사의 회계장부를 뻔히 보고 있다. 이 기업이 진짜 위기라는 걸 노조가 안다. 노동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기업을 살리려면 일시적으로 인력 감축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기업이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되살아난 다음에 돌아오거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해고 노동자와 노조를 만나 인터뷰할 때 '정리해고 때 노동자의 불안감, 사용자에 대한 불신을 어떻게 해소하냐'고 물었다. 그런 게 아예 없다는 거다. 진짜로 기업이 어려워서 해고하는 거고 재취업이 잘 되니 사실상 일시해고(lay off)로 받아들인다. 기업이 일시적으로 인력 감축해서 유동성 위기를 피하고 회복하면 다시 해고자를 불러들인다. 이런 경험이 축적돼왔다.

이런 기업과 현대차를 비교하면 현대차는 노동자들이 신뢰를 못한다. 해고된 기업에 재취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다. 실업급여는 한달치 월급을 받으면 끝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고용보험, 노사 신뢰. 삼박자가 맞다 보니 스웨덴은 경제 위기를 굉장히 조용하게 넘어가고 극복했다. 노사 간 마찰 없이 공존하고 상생했다.

프레시안 : 그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상생, 공존이 가능할까.

조돈문 : 사용자와 정규직 노조가 나쁜 의미의 담합이 아니라 긍정적 의미의 동맹도 할 수 있다. 구의역 김군 산재사망 이후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문재인 정부 정책은 자회사 방식으로 해도 되는 거였다. 그런데 서울시가 '자회사로 가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직접고용이 정답이다'고 판단해서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이건 사용자의 결단이다, 이런 성의가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이면 상대적으로 쉽다.

그때 정규직 노조도 동의했다. 당연히 정규직 가운데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발한 정규직 노조원들이 직접고용 반대 농성도 했다. 그래도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직접고용을 밀어붙여 관철했다. 그러면서 상당수 노조원이 탈퇴해 다른 노조로 가기도 했다. 노조 집행부 입장에서 조합원 수가 증가하면 업적이 된다. 노조 정책 때문에 조합원이 감소하면 집행부는 굉장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감수하고 관철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도 통상임금 소송으로 생긴 임금인상분을 신규채용 예산으로 돌렸다. 사용자와 정규직 노조, 비정규직 간 상생, 공존, 연대가 가능하다. 그런 사례가 점점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긍정적 변화의 신호다.

▲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정의당과 함께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부산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지하철 노동조합은 통상임금 소송 인상분을 신규 채용에 쓰자고 사측에 제안한 데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 청소용역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완수해야 할 노동 분야 과제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 임기가 내년 봄까지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데 문재인 정부가 노동 분야에서 이건 했으면 하는 게 있나.

조돈문 :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답은 대선공약을 다시 점검하라는 거다. 안 하려던 걸 새롭게 할 건 없다. 약속한 것 중 지키지 않은 것을 찾아서 실행하면 좋겠다.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이다. 일단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원칙으로 잘 마무리하여 모범사용자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법 관련 공약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공약에 상시업무 직접고용 원칙도 있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제화도 있고, 노조법 2조 개정도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의지는 있었으나 의석수가 부족했던 건 인정할 수 있는 제약조건이었다. 지금은 의회에서 여당 의석수가 확보됐으니 법 개정은 쉽게 할 수 있다. 이걸 다 하면 좋다.

그게 안 된다면, 마지막으로 '정부가 개과천선했다. 임기 마무리 전에 의석이 있으니 이것만은 하겠다'고 생각하고 딱 한 가지만 하겠다고 한다면 노조법 2조를 개정하기 바란다. 지금 노동기본권 사각지대가 넓다. 예컨대, 간접고용 노동자는 원청 사용자가 자신들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도 못 받는다. 현장에서는 법이 있어도 노조가 없으면 안 지켜진다. ILO의 권고를 받아들여서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해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익을 방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한 가지 하겠다고 하면 전국민고용보험을 꼽고 싶다. 문재인 정부 3주년에 전국민고용보험 선언했다. 정부가 이미 노동 분야에서 급격하게 역주행하던 때였는데도 그렇게 했다.

작년 말에는 전국민고용보험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모든 취업자를 고용보험으로 보호하겠다며 세 집단을 이야기했다. 첫째, 고용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지만 가입되어 있지 않은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조속히 가입시키겠다고 했다. 당장 가입시켜야 한다. 그러면 저임금 비정규직이 고용보험과 연계되어 있는 산재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의 보호도 받을 수 있다.

둘째,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다. 이들을 빠른 시일 내에 고용보험에 가입시키겠다고 했다. 지금 정부는 9개 업종을 뽑아서 77만 명만 가입시킨다고 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 노동자 전체를 가입시키고 임금노동자와 동등처우해야 한다.

셋째, 자영업자다. 이건 사회적 대화를 거쳐 점진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이는 자영업자 임의가입제에서 의무가입제로 전환하며 추가적 재원도 소요된다는 점에서 정교한 제도설계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

프레시안 : 노조법 2조 개정과 전국민고용보험만 이뤄져도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

조돈문 : 공약으로 이야기한 것 중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한다면, 사회서비스공단을 통한 돌봄 서비스 사회화를 꼽고 싶다. 스스로의 뜻으로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지금 성별 고용률 격차가 19%, 임금 격차가 37%다. 이거 잘못됐다.

돌봄서비스 영역에 여성 노동자가 많다. 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도 많은 피해를 봤다. 돌봄 노동자는 대면 접촉해야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가 퍼지면서 돌봄 시설이 폐업하고 조업 단축하고 했다. 재가 방문 돌봄 노동자도 일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위험도 높은데, 일거리가 줄고 임금 수준은 급격히 떨어지는 피해를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사회서비스공단을 만들어 돌봄 서비스를 사회화하고 돌봄 노동자 34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4개 광역에 사회서비스공단을 만들어 시범사업을 하고 확산하는 중인데 지금 계획을 보면, 공약에 비해 고용 규모가 크게 줄었다. 남은 임기 동안 전체 돌봄 노동자에 대해 이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면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도 개선하고 성차별을 해소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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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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