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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하게 드러난 다단계 '후려치기' 실상..."건물 해체계획서 본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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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하게 드러난 다단계 '후려치기' 실상..."건물 해체계획서 본적 없다"

경찰, 관련자 영장청구 및 전방위 압수수색 진행

'광주 재개발 참사'에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참사가 발생한 광주 학동4구역은 2025년 입주를 목표로 아파트 건설이 진행 중이었다. 시공사는 현대산업개발이지만 1차 하청사인 한솔기업에 철거공사 하도급을 맡겼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실제 공사는 불법 재하청 업체인 백솔건설이 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15일 굴착기 기사인 백솔건설 대표 조모 씨, 한솔기업 현장관리인 강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재개발조합과 광주시 도시경관과, 광주 동구 건축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조 모 씨는 철거 현장에서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혐의를, 강 모 씨는 조 모 씨에게 불법 재하도급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과 함께 재개발사업 시행사인 현대산업개발 관계자 3명과 철거 시공·재하청사 한솔기업 관계자 1명, 감리회사 관계자 1명 등 모두 7명을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광주시와 동구청 등 행정기관의 관리·감독 부실 여부와 재개발사업 조합장과 유착관계 등도 규명할 예정이다.

▲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지의 철거건물 붕괴참사 현장에서 16일 오전 경찰 과학수사요원 등이 잔해물을 살펴보며 사고 원인 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 9일 이곳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며 시내버스를 덮쳐 탑승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아무 일 안 하고 앉아서 돈 버는 시공사

현재까지 경찰 조사로 미뤄볼 수 있는 이번 참사의 근본원인은 건설업의 고질병인 '불법 다단계'라고 할 수 있다. 참사 당시 현장 작업을 했던 굴착기 기사(백솔 기업 대표) 조 모 씨는 경찰 조사에서 "건물 해체계획서는 한 번도 본 적 없고, 감리자도 본적 없다"고 진술했다. 한마디로 아무 계획도 없이, 안전 관리도 없이 철거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더구나 굴삭기 기사는 통상 건물 윗부분부터 철거해야 하는 작업 절차를 어기고 1~2층을 먼저 허물었다. 또한, 굴삭기 팔이 짧아 건물 천장에 굴삭기 앞부분(어태치먼트)이 닿지 않자 건물 안까지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된 잔해들과 함께 참사가 발생한 도로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빠른 시간 내 철거 작업을 마치려고 작업을 서두르다 참사가 발생한 셈이다.

건설업에서 '시간'은 말 그대로 돈이다. 공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인건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업체에서 시간을 단축하려는 이유다. 문제는 시간 단축과 비례해서 안전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실 다단계 구조만 아니더라도 시간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다. 이번 붕괴 참사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다단계는 총 3단계(현대산업개발-한솔기업-백솔)다. 인력소를 통한 인력이나 특수고용계약직 등을 따진다면 이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다단계의 가장 아래 단계인 백솔건설이 받은 공사 금액은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받는 금액의 14%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재개발조합이 현대산업개발, 다원이앤씨(석면 철거업체) 등과 맺은 철거 공사 계약 규모는 127억 원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백솔 건설은 14%인 18억 원만을 받았다.

재개발조합으로부터 석면철거 작업을 수주한 디원이앤씨도 백솔 건설에 이 작업을 맡겼는데, 이 역시 자신들이 받은 공사비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디원이앤씨는 3.3m³당 6만 원을 받았으나 백솔건설에 재하청을 줄 때는 3.3m³당 8000원을 준 것이다.

현대산업개발 등 시공사는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고 계약을 따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80% 넘는 돈을 중간에서 가져간 셈이다.

다단계 '후려치기' 성행하는 건설업

이렇게 '후려치기'를 당해도 재하청 구조 속에서 백솔건설 같은 영세사업장은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건설업에서 다단계로 내려가면, 공기(완료 시간)를 따지기보다는 물량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제곱미터당 얼마, 몇 칸에 얼마' 이런 식이다.

그렇게 물량으로 작업을 하면, 재하청 업체들 입장으로서는 시간이 곧 돈이다. 이 물량을 빨리 끝내고 다른 물량을 하면 돈이 벌리는 구조다. 낮아진 단가 속에서도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빨리빨리'가 건설 현장에서 고착화된 이유기도 하다.

여기에 불법 다단계 구조는 내국인이 아니라 '저임금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건설업에 대규모로 들어오는 상황을 만들었다. 낮아진 공사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미 건설 현장의 대다수 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는 품질은 물론, 안전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시공사나 정부, 지자체에서 건설 감리와 감독을 철저히 하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이는 요원한 일이다. 이번 광주 재개발 참사에서도 감리자는 참사 당일조차 철거 공정을 확인하지 않았고, 감리 일지 작성 여부도 불투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업에서는 1차 도급은 허용하나, 그 밑으로 확장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광주 재개발 참사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설업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다단계가 성행한다. 이번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생기지 않으면 걸리기도 힘들고, 설사 걸리더라도 처벌은 이윤보다 미약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을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나, 건설에 실제 책임을 져야 하는 시공사, 그리고 건설 계약을 맺은 재개발조합, 건설 과정을 관리해야 하는 지자체 등이 처벌을 받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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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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