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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추위 26년 ‘투쟁의 깃발’은 승리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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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추위 26년 ‘투쟁의 깃발’은 승리를 보장한다?

(2)'생존권 쟁취’에서 ‘강원랜드 사수투쟁’까지

한편 당시 공추위 집행부는 유지웅, 김창완, 남경문, 심규호, 유종원, 박경록, 황문구, 최재광 등 청년층 중심으로 10명의 기획팀을 구성해 이슈 만들기에 나섰다.

공추위 기획팀은 사전 협의를 통해 상가철시, 삭발투쟁, 단식투쟁, 거리행진, 횃불시위, 이장퇴진, 군의원 도의원 사퇴, 지방선거 거부, 등교거부, 세금납부 거부 등 조직적인 저항운동이라는 이슈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1995년 2월 27일 제1차 생존권 쟁취 투쟁현장인 사북 동원복지회관 광장에 집결한 고한사북지역의 주민과 광부들이 궐기대회사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공추위

당시 기획팀장을 맡았던 유지웅씨의 회고.

“공추위 기획팀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상가철시와 삭발, 단식투쟁에 이어 지방선거와 등교거부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2월 27일 집회에서 시가행진을 마친 뒤 사북읍사무소 점거도 계획했다. 실제 점거까지는 아니지만 관공서의 상징인 읍사무소 점거 기도를 하면 집회성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28일 2차 궐기대회가 종료된 뒤 경찰은 3월 1일부터 주간 집회와 야간 집회가 없는 것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우리는 고한 150명, 사북 150명 등 청년 300명의 특공대를 편성해 야간에 고한과 사북에서 돌발 횃불시위를 펼치는 특별 이벤트를 기획했다. 당시 횃불 야간 집회는 처벌이 매우 엄중했지만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경찰에 알리지도 않고 횃불시위를 진행했는데 기대보다 성과가 아주 좋았다. 당시 정보형사들이 노발대발했지만 3.3합의로 형사처벌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공추위는 1995년 3월 1일 통상부장관과의 협상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자 ▲생존권투쟁 장기화 선포 ▲3월 5일 제3차 주민 총궐기대회 ▲동원탄좌, 삼척탄좌노조 3월 5일부터 총파업 돌입 등의 강도 높은 투쟁 전략을 발표했다.

공추위 중심의 투쟁 지도부가 비상상황에 돌입하는 긴박한 순간에도 대통령의 중요한 해외순방을 앞두고 국가정보기관에서는 하루 전부터 극비리에 은밀한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박효무 공추위 초대 공동위원장은 투쟁을 이끌면서 정치적으로 생존권투쟁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 것은 물론 정보당국의 도움과 협조가 절실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생존권 투쟁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이슈를 보내면서도 정보당국과 긴밀히 접촉했다.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박효무 초대 공추위 공동위원장의 당시 활동은 이슈 선점과 집회 타이밍을 가장 핵심으로 파악할 정도로 뛰어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박효무 1, 2대 공추위 공동위원장. ⓒ공추위

박효무 초대 공추위 공동위원장은 “생존권 투쟁 같은 대규모 집회 타이밍을 언제로 잡고 이슈는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진다”며 “당시 대통령의 유럽순방에 앞서 집회날짜를 잡았고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을 끌기 위한 특단의 이슈를 만들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의 세계화 외교’를 표방하며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5개국과 사회개발정상회의 참석차 3월 2일 63명의 경제인들이 수행하는 12일간의 첫 유럽순방을 코앞에 둔 상황이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보통 6개월~1년 전부터 당사국과 사전준비를 해왔던 중요한 일정이기에 총궐기 투쟁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 제2의 사북사태 이미지로 중앙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정무적 판단까지 할 정도로 공추위 집행부의 ‘촉’이 뛰어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추위 집행부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안전기획부가 지역민심을 제대로 수집해 곧장 청와대에 직보하는 것은 물론 언론에서도 사회이슈화 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대응했다.

박효무 초대 공추위 공동위원장의 회고.

“당시 안기부 강원도지부가 사북 총궐기대회를 아주 신속하면서도 핵심 사안으로 청와대에 직보했다. 안기부 강원지부장이 28일 오전 전화로 오후 7시 안기부장 특보가 사북에 방문하니 자리를 꼭 지키다가 특보를 꼭 만난 것을 당부했다. 또 이 만남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비밀로 해야 한다며 신신 당부했다.

28일 집회를 마치고 식사도 거른 채 저녁 7시 고한신협 3층 사무실에서 국정원장 특보를 만났다. 고한번영회 사무실에 국정원 직원이 영상카메라를 설치하고 석탄산업 국가경제 기여도, 서민연료 기여도, 산림녹화 기여도, 탄광의 고용기여도 등 5가지에 대해 설명토록 했다. 내용이 틀리다 싶으면 다시 녹화하는 등 약 4시간가량 녹화를 진행했다. 안기부 특명단의 영상녹화는 안기부장에게 보여주며 편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인 1일 이른 시각 권영해 안기부장이 YS에게 녹화영상과 사북상황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곧장 사북 주민총궐기의 조속한 해결을 참모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YS의 유럽 순방 직전 3.3합의를 위한 특명이 청와대 재가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산업부 장관도 대통령 해외순방에 함께 출국하면서 박운서 통상부 차관이 3.3 합의를 위해 사북을 방문했다.

26년 만에 처음 밝히는 이 비화는 (나의)자랑 같아 숨겨왔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밝혀도 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긴박하고 무모할 것 같았던 싸움은 치밀한 계획과 이슈 만들기 및 정보기관과 언론의 도움으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95년 3월 3일 내국인출입 카지노를 핵심으로 하는 3.3 합의내용이 발표되는 순간 공추위 지도부가 포효하듯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고 있다. ⓒ공추위

1995년 3.3. 합의를 통해 내국인출입 카지노를 핵심으로 하는 폐특법이 그해 정기국회를 통과한 이후 폐광지역과 공추위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추위는 1997년 3월 17일 주민총회를 개최해 제3대 김길수 위원장을 선출하면서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 명칭을 ‘고한사북남면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로 변경했다.

김길수 위원장은 폐특법 제정이후 강원랜드 설립 등 3.3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이 지지부진한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최각규 강원도지사와 통상산업부, 건설교통부 등을 잇따라 방문했다.

김길수 공추위 집행부는 지역민심을 전달하며 지지부진한 3.3. 합의사항의 조속한 이행이 없을 경우 또 다시 주민 총궐기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고 이후 강원랜드 설립과 폐광지역 개발을 위한 법규추진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듬해 6월 29일 강원랜드 설립되었지만 당시 신낙균 문광부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 관광호텔에 슬롯머신 영업 허가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하며 강원랜드 카지노 개장 전부터 염장을 지르고 말았다.

또 집권당이었던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은 한술 더 떠서 관광산업 육성 정책기획단을 설치하고 관광호텔의 슬롯머신 허용문제를 당론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공추위와 폐광지역에 비상이 걸렸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1998년 제4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송재범 위원장은 서울에서 제주도로, 다시 서울로 관광호텔의 슬롯머신 허용 결사반대집회, 카지노 토론회 반대토론, 농성 등 상황별 맞춤 투쟁전략을 구사했다.

송재범 위원장 재임시절 ▲인천 영종도 카지노 신규추진 발표 ▲금강산 카지노 추진 ▲제주도 카지노 추진 등 강원랜드를 위협하는 굵직굵직한 카지노 정책들이 수시로 발표됐다.

송재범 공추위 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상경 투쟁을 밥 먹듯 하는 ‘투사’가 되어야 했다. 취임이후 전국의 관광호텔 슬롯머신 설치와 제주도, 영종도 카지노 및 금강산 카지노 추진을 막기 위해 새벽부터 주민들과 도시락 싸들고 관광버스로 상경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송재범 제4~8대 공추위 위원장. ⓒ공추위

송재범 전 위원장의 회고.

“하루는 버스 2대를 이끌고 지역주민 70여 명과 함께 서울시청 부근의 관광공사로 향했다. 30분간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도록 봉쇄한 경찰은 책임자가 누구냐고 묻더라. 종로경찰서 과장은 내가 대표자라고 하자 영창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정선경찰에서는 상경버스에 주민들이 신나와 연탄재를 휴대하고 있다는 정보를 경찰청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좋다, 영창 가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조건이 있다. 우리가 새벽부터 도시락 싸들고 비싼 관광버스 대절해 상경했는데 관광공사 입구와 공청회장에서 구호제창과 노래를 부르고 되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종로경찰서 담당과장이 불법 행위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관광공사 입구에서 현수막을 들고 구호제창에 이어 투쟁가를 부른 뒤 공청회장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조끼와 머리띠를 두른 주민들이 공청회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를 부르니 교수들은 주눅이 들었다.

노래가 끝난 뒤 공청회 주최 측에 말했다. ‘공청회를 주관하는 이모 교수를 단독으로 만나 우리 의견을 전달한 뒤 공청회장을 떠나겠다’고 하자 곧장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경찰서 과장과 이모 교수가 관광공사 14층의 소회의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내국인 카지노가 유일한 살길인데 왜 우리를 죽이려하느냐. 앞으로 강원랜드를 위협하는 카지노를 주제로 공청회를 다시 개최하면 손가락을 잘라 당신 집에 소포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는 찰나 성희직 도의원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잘됐다 싶어 성희직 의원의 왼팔을 들어 올리며 ‘이 사람이 카지노 때문에 손가락 3개를 잘랐는데 우리는 한다고 하면 반드시 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경고니 당신은 명심하는 것이 좋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그 교수는 카지노 관련 공청회를 열지 않았다.”

송재범 위원장 재임시절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박지원 문광부 장관의 금강산 카지노 허가설, 내정설이 꼬리를 물었고 DJ정권의 실세 소문과 현대그룹의 자금력 등이 뒤엉켜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로 흘렀다.

송재범 위원장은 당시 박지원 장관과의 금강산 카지노 비화도 소개했다.

“박지원 장관을 만나 금강산 카지노 담판을 지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인식되었다. 그래서 김원창 군수와 성희직 도의회 부의장을 비롯한 주민대표단과 박지원 장관을 만나기 위해 김택기 당시 민주당 위원장에게 주선을 부탁했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있는 문광부 청사에 들어가니 지하 식당으로 안내 받았다. 그런데 지하 식당에 장관은 없고 담당과장과 국장만 있었다. 화가 치민 나는 식당 의자를 집어 던졌다.

‘우리가 새벽밥 먹고 여기 온 것은 장관 만나러 온 것이지 푸대접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서 장관 집무실 옆 회의실에 주민대표단이 자리를 했다. 그런데 장관 보좌관이 성희직 강원도의회 부의장의 장관실 입장을 못한다고 저지했다. 성희직 도의원이 박지원 장관의 금강산 카지노 허가 추진을 규탄하며 장관직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에 이어 청와대에 박지원 장관을 퇴진시키라는 진정서를 냈기 때문으로 성의원의 출입을 막은 것이다.

내가 박지원 장관에게 폐광지역의 어려움과 금강산 카지노의 부당성을 진지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난 박지원 장관은 금강산 카지노를 허가해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우리를 배웅하면서 배석한 국장과 과장들에게 ‘앞으로 강원랜드 카지노에 대해 열심히 도와줘야 한다’고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박지원 장관과 폐광지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송재범 위원장 재임시절 카지노를 중심으로 하는 각종 이슈가 수시로 터져 나오자 지역사회는 강한 추진력을 갖고 있는 송재범 위원장에게 연임을 요청해 총 5회에 걸쳐 10년간 위원장을 역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송재범 위원장은 카지노 관련 이슈 외에도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삼척탄좌 폐광 임박 소식을 듣고 탄광업주를 만나기 위해 지역대표들과 서울본사를 찾아가 담판을 짓는 일도 중요 일과의 하나였다.

그의 회고.

“사북지역을 떠받치고 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폐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 40명과 본사 점거농성을 펼쳤다. 30년 이상 탄광으로 재벌이 된 동원탄좌 임직원들 만나 탄광 문을 닫는 대가를 지불할 것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들은 탄광이 어려워 경영을 못하는데 지역주민들이 왜 반대하느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이런 기업주에게는 탄광촌 공추위의 악바리 근성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강하게 업주와 밀고 당기는 투쟁을 펼친 결과 4만 여 평에 달하는 동원부지를 공시가에 강원랜드에 매각토록 했다. 특히 장학금 20억 원을 기탁 받은 돈으로 사북장학회를 만들었다. 또 삼척탄좌 폐광 시에도 본사에서 담판을 지어 장학금 5억 원과 회사건물을 희사 받아 오늘의 삼탄아트 마인이 탄생하도록 했다.”

▲3.3.생존권투쟁 및 폐특법 개정 10주년 기념식. ⓒ공추위

당시 송재범 위원장에게 강원랜드 사장들은 노후를 감안해 공추위 위원장을 그만 두면 강원랜드 협력업체 같은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송재범 위원장 시절인 2006년 5월 공추위는 3.3투쟁을 기념하는 재단법인 ‘3.3 기념 사업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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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봉

강원취재본부 홍춘봉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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