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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38명 사망, 책임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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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38명 사망, 책임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시민단체, '2021년 최악의 살인기업' 한익스프레스 선정

1993년 <심슨가족> 인형을 만들던 태국 장난감회사 '게이더'. 이곳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188명의 노동자 목숨을 앗아갔다. '산재추모의 날'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이 참사는 노동자 개인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사용자가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갈지 모른다며 공장 문을 잠가 버린 게 이러한 사단을 만들었다. 아무리 개인이 화재에 주의를 기울였다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런 구조에 놓인 노동자의 상황은 시대가 바뀌고, 국적이 달라도 여전히 유효하다. 2020년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공사 현장 지하에서 우레탄 폼 작업과 화물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한 용접을 동시에 진행하다 발생한 폭발 사고였다.

작업현장에서는 이렇게 혼재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법이나 공기 단축을 위해서 비일비재하게 사용되는 방법이다. 한익스프레스 공사는 기간을 하루 줄일 때마다 5000~6000만 원을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 안전관리원도, 소화기도 없었다. 화재 시 노동자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대피로와 유도 대피등을 설치해야 했으나 그러지도 않았다. 모두가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귀결됐다. 시민단체가 선정하는 2021년 '최악의 살인기업'에 한익스프레스가 선정된 이유다.

▲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 등은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최악의 살인기업'에 한익스프레스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허환주)

한익스프레스 유가족 "보통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회가 다가오길"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 등은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이용해 발주사로써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책임을 방기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한익스프레스는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폭발 위험이 있는 작업을 동시에 하도록 강제했고, 결로 현상을 막는다는 이유로 위급한 상황에서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는 대피로조차 막으면서 대형 참사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38명은 모두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물류센터 시공 원청인 건우는 아홉 곳 업체에 재하청을 맡겼다.

노동건강연대 등은 한익스프레스를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한 이유를 두고 "'하청의 재하청'으로 다단계 하청 구조를 만든 책임은 바로 발주사(한익스프레스)의 안전 책임 방기에 있기 때문"이라며 "다단계 하청 구조는 하청업체 수익성 때문에 공사기간 단축 압박을 받고, 안전관리도 소홀히 하게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고의 실질 책임이 있는 발주사에는 강한 처벌이 없다는 점이다. 2020년 12월 선고된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발주사인 한익스프레스 경영기획팀장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산재참사 유가족 김선애 씨는 "주변에서는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느냐고 묻지만 당사자에게는 지난 1년의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며 "더구나 실질적 책임이 있는 발주사 관계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김 씨는 "보통 사람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사회가 다가왔으면 한다"면서 ""가슴 아픈 사고가 줄어들고, 일하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실제 책임 있는 사람들이 처벌받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됐으나 현실은 그대로"

손익찬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자건강권 팀장)는 한익스프레스 산재참사 관련 재판부 판결을 두고 "법원은 발주사의 공기단축 요구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 모두 소극적으로 판단했다"며 "공기단축 요구가 있었으나 시공사가 발주사의 요구를 과도하게 해석해서 (공기단축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 발주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고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2022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손 변호사는 "현행 산안법 제69조에는 발주사가 공시가긴을 단축해선 안 되고 이를 위반 시 1000만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며 "아직 중대재해법 시행령이 완비되지는 않았으나, 건설공사발주사나 도급인의 공기단축 요구가 사망의 원인이라고 본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4조에 따른 의무 위반으로 보아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재계의 반발로 하위법령이 소극적으로 입법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동건강연대 등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으나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이윤에 눈이 멀어 중대재해 예방은커녕 최고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와중에 경총, 전경련 등 사업주 단체와 재벌 대기업은 과잉 처벌 운운하며 이 법을 무력화 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올해만 벌써 149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고 151명의 노동자가 끼여 죽고, 부딪혀 죽고, 깔려 죽고, 감전돼 죽고, 질식해 죽었다"며 "더구나 사망한 노동자 80%는 50인 미만 작언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이었다"고 설명했다.

1년 유예기간을 두고 2021년부터 실행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3년의 유예기간을 둔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영세 사업장은 처벌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건의를 받아들인 결과다.

이들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마련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조차 노동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며 "법은 제정되었으나 노동자가 죽고,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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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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