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담화문에 대해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다면, 최소한 차별과 혐오로 인한 소수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비판했다.
장 의원은 22일 페이스북에 "동시대 약자들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고, 변화하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거부하는 종교적 신념은 또 하나의 독선적인 기득권으로 변질될 수 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염 추기경은 이날 생명주일(5월2일)을 맞아 발표한 담화문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일부 조항에 드러나는 '젠더 이데올로기'와,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비혼 동거'와 '사실혼'의 '법적 가족 범위의 확대 정책'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며 사실상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이 담화문은 '성별 이분법은 신의 뜻', '남녀의 구분은 인격적 친교와 생명탄생의 토대', '동성애는 객관적인 무질서', '비혼 동거는 사실상 동성혼 허용' 등의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또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되지만 동성혼 금지는 차별이 아니다', '인공 생식은 한 아빠와 한 엄마를 갖고 싶은 아이의 선택권을 침해한다', '우리 사회의 성교육이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방법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라고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장 의원은 이에 대해 "2021년 대한민국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바로 극심한 불평등과 약자에 대한 차별 그리고 혐오"라면서 "이런 시대에 맞이하는 생명주일에 시민들이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메시지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 소수자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종교는 정치와 분리된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자기 종교의 교리에 대한 특정 시각의 해석을 잣대로 우리 사회 모든 시민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입법부와 행정부가 논의하는 법안과 정책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모습은 이러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라고 비판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가정과 혼인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라는 제목의 4700여 자 분량의 담화문을 냈다.
담화문에서 염 추기경은 "'젠더 이데올로기'는 남녀의 생물학적인 성의 구별을 거부하고 자신의 성별과 성적지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념이다. 이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다르게 창조하시고 서로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게 하신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른다"라며 "'동성애'로 이해되는 '비혼 동거'와 '사실혼'을 법적 가족 개념에 포함하는 것도 평생을 건 부부의 일치와 사랑, 그리고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가정의 고유한 개념과 소명을 훼손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남녀의 구별은 각 사람이 성장하고 인격적 친교를 맺으며,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서로를 보완해주고 협력하는 가운데 함께 인격적인 성장을 이루며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라며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가부장 문화 아래 성차별의 구실이 되고, 또한 문화적으로 남녀의 성적 차이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이 있었다고 해서, 그런 이유로 남자와 여자의 구별과 다름이 가진 풍요로운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했다.
또 "생명과 안전, 주거와 고용, 교육과 의료 등 인간의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공동선에 참여할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각 사람이 인종, 출신국가, 성별, 피부색, 종교 등은 물론 동성애와 같은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부당한 차별이나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을 당해서는 안 된다"라면서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한 부당한 차별의 반대를 동성혼 등을 용인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라고 했다.
염 추기경은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개념을 부정하며 "이 용어는 한 사람이 타고난 몸과 그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성적인 성향을 분리하여 사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타고난 몸은 객관적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고,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이 서로를 향하며 결합하는 것이 자연법의 질서이지만, '젠더 이데올로기'는 객관적인 몸의 질서와는 다르게 자신의 성적 성향이나 성별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톨릭교회는 객관적인 몸의 질서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동성애 등 이러한 성향 자체를 '객관적인 무질서'로 바라본다"라고 했다.
이어 "동성애 성향을 지닌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경우라도, 그 행동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으므로 그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라며 "동성애 행위처럼 성적 행동이 타고난 몸의 객관적 질서와 인격적 의미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은 단지 이기적으로 이용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된다. 물론 이성 간의 성행위에서도 서로의 몸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거나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주지 않는다면,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염 추기경은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혼인과 가정이 토대로 하는, 몸의 결합과 출산이라는 객관적 의미가 구조적으로 빠져 있으므로 '혼인'이라고 불릴 수 없으며, 이는 부당한 차별과는 다른 문제"라며 "만일 두 사람의 주관적인 애정만을 조건으로 동성 간의 혼인을 사회적·법적으로 인정한다면, 혼인이 지닌 고유한 의미는 훼손되고 공동선에 기여하는 혼인의 가치는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뿐만 아니라 동성 간에는 불가능한 자녀 출산을 위하여, 인공적 생식 기술을 이용하거나 자녀 입양을 하려고 한다면, 이는 부모 사랑의 결실로 태어나 '한 아빠와 한 엄마를 갖고 싶은 자녀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전인적 성장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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