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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대립 회피하는 정부...한국 외교에 좌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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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중 대립 회피하는 정부...한국 외교에 좌표가 없다"

[위성락-정욱식 대담] ① 미중 갈등 속 좌표 잃은 한국

지난 3월 18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 출범 이후 두 달 만에 열린 미중 간 고위급 대화에서 본격적인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양국은 1시간 동안 날 선 신경전을 벌여 향후 미중 관계의 험로를 예고했다.

여기에 김여정 북한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지난 3월 15일 담화를 발표해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비난과 미국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전했으며, 이후 3월 25일 북한은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한일 간 갈등은 더 짙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일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본에 대한 한국의 국민 감정은 더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한국은 현재 '미중 대결, 남북 불통, 한일 갈등' 이라는 외교적 악조건에 놓여있다. <프레시안>은 한국이 처한 대외적 여건을 진단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길을 들어보기 위해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대담을 마련했다.

최근 외교 개혁과 북핵외교 및 4강외교에 대한 정책 제언을 담은 저서 <한국외교 업그레이드 제언>을 출간하기도 한 위성락 전 본부장은 현재의 미중 갈등 양상에 대해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이른바 '전반적이고 압도적인 대외 환경'"이라고 규정했다.

위 전 본부장은 "우리는 지금 좌표가 없는 상황이다. 이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들은 그때 그때 사안별로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입장만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렇게 하면 양쪽에서 잡아당기는대로 흘러가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정확한 좌표가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미국이 3시 방향으로 당기고 중국이 9시 방향으로 당기면 우리는 1시나 1시 반 정도로 좌표를 정한다면 어떨까"라며 "이랬다면 쿼드는 '좋지 않은 아이디어'라는 입장을 가지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 전 본부장은 "미중 대립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은 반역사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라며 "이른바 '촛불 민심'을 받아 들어선 정부도 이에 대한 고민을 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때를 놓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며 철저한 상황 진단과 그에 따른 좌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미중 관계에 대해 "미중 관계는 '대결'(Confrontation) 이라는 적대적 요소와 '경쟁'(Competition) 그리고 '협력'(Cooperation)적 부분도 존재하고 있다"며 "미중 관계를 대결적인 것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으면 다른 요소를 놓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한국은 미중 간 대결적인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야 한다. 경쟁에서도 가급적 선의의 방식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협력 문제도 이를 북돋을 수 있는 기본적 인식을 가지고 미중관계에서 한국의 좌표를 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담은 지난 15일 서울 서교동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했다. 두 편으로 나눠 대담 내용을 소개한다.

▲ 왼쪽부터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바이든 정부는 동맹을 무시했던 전임 트럼프 정부와는 달리 동맹 강화를 중시하고 있다. 반면 유독 중국에 대한 강경 입장만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대(對)중국 또는 대 동북아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동맹과 함께 대중국 압박봉쇄 정책을 펴는 것이라면 한국으로서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할 수도 있는데, 바이든 정부가 한국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나?

위성락 : 바이든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중국이 자유나 민주, 공정과 같은 미국의 가치와는 다른 가치에 기초한 질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전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국의 주변에 확산시키고 있다'고 본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을 규합해 대처하고 견제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 대중 정책의 기본적 줄거리는 이어받았지만 스타일이 크게 다르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견제가 트럼프 정부 때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이며 스마트하다. 중국 견제에 동맹을 규합한다는 점에서 체계적이고, 무조건 견제하거나 때리는 것이 아니라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며 대결할 것은 대결하는 등 분야를 나눠 대응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이고 스마트하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대중국 견제 주문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생성된다. 그래서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등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적인 안보 협의체) 등에 함께 하자는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우리에게 하는 주문 또는 기대가 고정돼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장 높은 수준으로는 쿼드에 들어오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함께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구축하는 정도를 바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이를 강요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어떻게든 미국이 하고 있는 큰 방향에 함께하고 향후 수위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중국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경우에도 오래 시간을 끌다가 미국이 하도 하자고 하니까 우리의 '신남방정책'과 접점을 찾아보겠다며, 민감하지 않은 협력 프로그램 1~2개를 함께 하고 있는 수준이다. 쿼드에 대해서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피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북핵 공조 정도로만 대응하고 있어서, 미국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점은 분명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 정도로 대립하면, 단순한 두 나라의 대립 차원을 넘어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이른바 '전반적이고 압도적인 대외 환경'으로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피할 수 없었던 냉전 시대 구도 속에서 한반도가 분단되고 전쟁이 나고 군부 독재가 출현하고, 박정희 정권이 지나가도 또 군부인 전두환이 나왔고 북한은 핵 보유로 이어졌던 것과 유사하다.

미중 대립으로 인한 구체적인 모습을 지금 당장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삶의 모든 요건을 규율할 정도로 압도적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은 반역사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다. 그런데 이른바 '촛불 민심'을 받아 들어선 정부도 이에 대한 고민을 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때를 놓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처한 국제 환경에 대한 깊은 인식과 함께 이를 헤쳐 나갈 나름대로의 명확한 입장과 방략을 정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대한 외교를 전개하는 것이어야 한다.

프레시안 :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깊은 상호 의존관계가 있기 때문에 군사 대결로 일관했던 냉전 시절의 미-소 대립에 비해 그 대결의 정도가 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이 지금까지 해왔던, 소위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 외에 없다는 회의적인 지적도 나온다.

위성락 : 미국과 중국의 상호 경제 의존이 냉전 시절의 미-소 대립보다 문제를 더 어렵고 심각하게 한다고 본다. 미-소 대립은 상호 경제 교류가 없는 정치‧군사적 대결뿐이었다. 그래서 그 싸움은 미국이 이기기 쉬웠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경제력도 엄청나고 미국과 경제 부문에서 상호 얽혀있어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에 제약이 많다. 대중국 경제 제재가 미국 자신에도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론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 미-소 대립은 냉전 70년 만에 끝났지만 미중 갈등은 이보다 오래 갈 수도 있다. 미소 대립보다 더 큰 규모로, 심각하게, 임팩트 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리 입장에서 고민이 더 길어지고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미경중'은 현상을 설명하는 효용은 있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미룬 채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종의 '주술'일 뿐 정책적인 '가이드라인'이 될 수는 없다. 이쪽 저쪽 풀을 골고루 뜯어먹겠다는 안미경중을 미중이 이를 그냥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유하자면 하나는 사자고 하나는 호랑이다. 그들도 우리한테 기대하는 것이 있다. 미국은 '안미경미'로, 중국은 '안중경중'으로 가자고 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이익만 주장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사실 지금 좌표가 없는 상황이다. 이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들은 그때 그때 사안별로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입장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대로 흘러가게 된다. 예를 들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도 처음에는 미국 MD(미사일 방어체계)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배치를 피하다가 미국이 압박을 넣어서 결국 배치하게 됐다.

이렇듯 특정한 사안에 대해 진폭이 크면 미국이나 중국은 '한국은 잡아당기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은 동맹이 이럴 수 있냐고 하고 중국은 한국이 미국 동맹이지만 '당기면 끌려온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3월 한국에서 열린 한미 외교‧안보장관회의(2+2) 에서도 한국의 좌표가 명료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한국을 견인하고 싶은 미국은 회담 끝난 지 몇 주 만에 워싱턴으로 한국과 일본의 안보실장을 불러들여 한미일 회의를 또 열었다. 미국은 한미일 3자 회담이 한국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데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타이밍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중국 샤먼(廈門)에서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 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 세번째)과 서욱 국방부 장관(맨 오른쪽)이 지난 3월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 두 번째),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맨 왼쪽)과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 리셉션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정확한 좌표가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미국이 3시 방향으로 당기고 중국이 9시 방향으로 당기면 우리는 1시나 1시 반 정도로 좌표를 정한다면 어떨까? 이랬다면 쿼드는 '좋지 않은 아이디어'라는 입장을 가지기가 어렵다.

쿼드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의 위치를 시간으로 표시해보자면 호주는 2시 반, 일본은 2시, 인도는 12시 반 정도에 위치해 있다. 호주‧일본은 미국과 조약 동맹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또 다른 조약 동맹인 한국이 쿼드에 없으니까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2시 반인 인도도 있는데 동맹인 한국이 쿼드에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 이상하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쿼드에 대해 다른 나라의 이익을 배제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후임인 정의용 현 외교부 장관은 "투명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고 국제 평화 번영에 기여한다면"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메시지는 다른 국가들, 특히 중국에게 '아직 한국은 쿼드를 투명하고 포용적이지 않고 평화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구나' 라는 평가를 할 수 있게 한다.

중국이 신경쓰여 쿼드에 대해 소극적이었다면 사안별로 협력하자는 대안을 내거나, 지금 쿼드에는 들어가지 말고 쿼드가 1차 외연을 확장할 때 2선 국가로 들어가는 방법을 고민해봤을 수도 있는 것이다.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도 우리가 참여하지 않았는데, 한국 같은 무역 대국이 TPP 바깥에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러다가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관심을 보이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입 검토를 언급했다.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말이다.

우리가 중국에 '미국 편으로 가긴 가는데 어디 이상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면서 예측가능성, 일관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데, 문제는 관료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런 걸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 때 그 때 대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모든 것을 편하고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중급 규모 국가가, 사방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분단되고 핵을 마주보고 있는 국가가 이렇게 하면 여러 가지로 상황이 어려워진다. 또한 이렇게 '그 때 그 때 식 대처'를 하려면 외교 역량이 뛰어나야 하는데 그 정도의 역량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때 TPP 협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역시 중국을 의식해서인가?

위성락 : 중국도 의식하고 일본을 의식한 것 같다. TPP에 가입하면 한일 FTA를 체결하는 셈이 된다는 점, 또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여기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통상교섭본부를 외교부에서 떼어다가 산업자원부로 넘겼는데, 당시 산자부는 FTA는 그만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미중 대립이라는 큰 패턴의 변화가 만들어진 구도 속에 각 측은 무역과 안보에 대한 구조와 단체를 만들게 된다. TPP에 대항해 중국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을 조직하기도 했다.

한국은 주변 강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말고 일단 관심을 갖고 검토하겠다거나 협력해 보겠다는 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AIIB에 들어가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쿼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우리 역량에 맞게 거대한 변화에 어떻게든 참여해서 역할을 해야 한다.

정욱식 : 우리와 미국은 안보 동맹이 아니라 방위(Defense)동맹이다. 안보에는 '외교'와 '국방'이라는 두 축이 있고 우리는 여기에 남북관계까지 겹쳐 있는 상황인데, '안미경중'은 안보에 대한 철학을 발견하기 힘든 측면이 존재한다.

또 미중 관계를 표현하는 여러 용어들이 있는데,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학 교수가 2007년 12월 국제경제정책 학술지인 <국제금융>에 게재한 '차이메리카(Chimerica : '중국‧China', '미국‧America'을 합성한 용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최근 미중 관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결'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사실 미중 관계는 '대결(Confrontation)'이라는 적대적 요소와 '경쟁(Competition)' 그리고 '협력(Cooperation)'적 부분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미중관계는 이같은 '3C'로 표현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미중 화해 이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제휴 관계였다가 소련 붕괴 이후 흐름이 바뀌었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기였던 1990년대 초반, 미국은 단일 패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 잠재적 도전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바이든 대통령 때 중국의 힘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이전 미국 정부 때부터 계속 있어왔던 것이다.

대결과 경쟁, 협력 요소는 꾸준히 존재해왔으며 동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중 관계를 대결적인 것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으면 다른 요소를 놓칠 수 있다. 물론 지배적인 부분은 경쟁이겠지만, 이게 악의적 대결로 갈 것이냐 선의의 경쟁으로 갈 것이냐는 부분도 중요하다.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 일각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고자 하는 흐름이 한반도 문제와 유착돼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이 북한의 핵 능력을 과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중단하기로 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팀 스피릿'을 재개한 것은 미 국방부 중심의 이른바 '네오콘'들이 가지고 있었던 중국에 대한 효과적 전략 수립 맥락에서 나왔던 부분이 강하다. 그 이후에는 MD를 중심으로 이러한 흐름이 이어졌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북핵 문제 해결을 추구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북한 위협론을 소위 '꽃놀이패'로 삼아서 중국의 견제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어렵겠지만 '3C' 중에 대결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우리가 최대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만약 미중 간 대만 해협이나 동중국해에서 충돌이 벌어져서 주한미군이 투입된다든가 우리가 미국의 기항지가 되는 경우가 되면 한국이 중국에 적대행위를 하는 셈이 된다. 이건 국가 생존 관련 문제가 될 수 있다.

반면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한미 관계에 어려움은 올 수 있겠지만 그게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서 한국이 대중국 발진기지가 될 경우 중국이 보복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을 공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결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야 한다. 경쟁에서도 가급적 선의의 방식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협력 부분도 이를 북돋을 수 있는 기본적 인식을 가지고 미중관계에서 한국의 좌표를 잡아야 한다.

위성락 : 미중 관계에서 대결과 경쟁, 협력을 구분하여 설명해 주셨는데 여기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인접국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국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북한이 없었다면 중국은 우리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 ⓒ프레시안(이재호)

중국은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어떻게든, 지금보다는 떼어 내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미중 관계를 대결, 경쟁, 협력으로 구분하자면 우리에게는 협력보다는 경쟁이나 대결로 가기 쉬운 지정학적 입지가 있다.

여기에는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이후 30년 동안 중국과의 관계에서 보여 왔던 행보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그동안의 행태가 중국으로 하여금 점점 더 한국에 대해 기대를 키우게 했다. 특정한 좌표 없이 그 때 그 때 사안을 처리해왔기 때문에 중국은 "한국은 가능하다", 즉 '우리 편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된 셈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간의 행보를 종합하면 중국의 사고 속에 우리에 대한 '가능한 목표의 범주'가 있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사고 에 한국은 미중 협력보다는 대결이나 경쟁 영역으로 들어갈 공산이 더 크다.

미-소 냉전도 군축, 핵무기 비확산 등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고 실제로 비확산 부분은 거의 완벽하게 협력이 지켜지긴 했다. 하지만 냉전 전반을 살펴보면 경쟁과 대결이 많았다. 또 미중은 여기에 경제 문제까지 얽혀 있어서 경쟁과 대결 요소가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중국 위협론, 실체는 있나

프레시안 : 트럼프 이후 미국에서는 '중국 위협론'이 대두됐다. 중국이 권위주의적 체제를 전세계에 이식하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자신의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를 외국에 이식시키려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중국식 가치와 제도를 외국에 강요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이 원하는 것은 지역에서의 패권 정도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위성락 :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중국 위협론은 좀 과장된 것 같다. 중국은 냉전 시기의 소련과 비교해볼 때 이데올로기적인 부분에서 영향력이 떨어진다. 소련은 당시 '공산주의'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여기에 동조하는 세력이 전세계 도처에 있었다. 일종의 이념적 '역할 모델'이었는데, 중국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중국의 힘이 발휘되는 부분은 경제력이다. 소련은 이런 측면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국은 무역과 생산 등에서 엄청난 수치를 기록하고 있고 전세계 도처에 화교들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념적, 군사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경제를 통해 우회적으로 침투하면서 발생하는 위협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현재적 위협이라기보다는 잠재적 위협이라고 봐야 한다.

글로벌하게 보면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지역적 측면으로 보면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특히 베이징에 가까운 한반도에는 지역의 관점이 투영된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중국에게 민감한 곳이기 때문에, 중국이 글로벌하게 영향력을 미치지는 않으려고 한다고 해도 근접해있는 한국에게는 이러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

즉 중국은 가까운 곳에는 외부세력, 즉 미국 같은 적대 세력이 근접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완충지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반도는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서 지역적으로 한국은 조금 민감한 곳이다. 따라서 글로벌한 차원에서 중국 위협론이 없다고 한국에도 중국 위협론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한국은 특수성이 있다.

정욱식 : 이런 부분이 우리가 중국을 상대로, 또 미국을 상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중국이 커질수록 영향을 더 받는 쪽은 태평양 건너에 있는 미국이 아니라 황해를 맞대고 있는 한국이고 이에 따라 우리가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미국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관점을 가지고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에 대화가 가능한 전문성과 논리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이재호)

예컨대 2016년 사드 배치로 인해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가혹한 경제 보복을 당했는데, 이와 관련해 당시 우리는 미국에 대해 사드 배치가 대북 방어용이지 대중국용이 아님을 중국에 설득해 줄 것을 요구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대중 설득은 당연히 미국이 감당했어야 하는 동맹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물론 나는 사드 배치를 반대했고 지금도 철수해야 한다고 보지만 말이다.

우리는 많이 성장했지만 미국과 중국에 비하면 아직 작은 나라다. 이 작은 나라를 멀리 있는 큰 나라가 걱정해주는 형태로 가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가면 우리가 미중 관계에 있어서 좌표를 설정하기 굉장히 힘들어진다. 우리의 중국관이 무엇인지, 또 미국관이 무엇인지를 세우고 이걸 가지고 중국, 미국과 대화해야 한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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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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