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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국가'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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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보편적 복지국가'가 먼저다

[복지국가SOCIETY] 국민 모두의 실질적 행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

포스트 코로나 비전을 위한 사회복지체제를 둘러싸고 기본소득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회안전망의 방향을 놓고 크게는 기존의 보편적 복지국가론과 기본소득론이 대립하는 형국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이론체계에 기반을 둔 논쟁이다. 그런데 여기에 재난지원금 지급방식 논란이 더해지면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개념들이 뒤섞여 국민과 정치권에 혼란을 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할 중심 목표는 국민 행복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론과 기본소득론 논쟁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체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열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재원을 가지고도 어떤 사회정책 시스템을 갖는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보다 진지하고 생산적인 토론과 논쟁이 요구되는 이유다. 모처럼만에 다시 벌어진 우리 사회의 비전 논의가 좋은 성과로 연결되는 데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나의 입장을 적어본다.

단연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중심 목표는 국민의 행복이다. 국민 행복을 위한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이 되는 중심 과제는 '사회적 안전망'과 '소득불평등의 완화', 그리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양극화와 만성적 실업,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어떻게 하면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탄탄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해서 정의롭고 투명한 사회의 기틀을 만들고 전 국민의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지, 더 나아가 공동체와 환경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관건이 될 것이다.

왜 보편적 복지국가여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이런 과제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길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민주당의 당헌에도 실렸던 보편주의 정체성을 살리고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복지국가를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과정도 될 것이다. 보편적 복지국가가 잘 구현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 덕분에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도 많은 재난지원금 없이 잘 견뎌나가고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 시스템은 국가가 사회적 위험(육아, 실업, 장애, 질병, 노후, 주거, 재난 등)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가족처럼 보호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불평등과 격차를 현격히 줄이고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을 극복할 사회적 안전망을 탄탄하게 쌓아 사회적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사회를 지향한다.

지구상에서 북유럽 5개국이 여기에 가장 근접해있다. 극단적 빈곤에 처한 기초생활 수급자에 대한 공공부조로 선별적 복지 제도도 포함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편적 복지 원리를 근간으로 한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 각종 현금성 사회수당과 사회서비스 등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사회보험의 대상에 사회구성원 모두를 포괄하려 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지향을 갖고 있고, 위험에 처했거나 복지를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는 모두에게 같은 조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편주의이다(무상급식, 보육료 지원, 아동수당 등).

보편적 복지국가와 기본소득의 본질적 차이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은 대상자의 소득이나 자산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정부가 일정 소득액을 지급한다는 측면에서 같다. 그러나 기본소득론이 모든 개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비해 보편적 복지는 '상황에 맞는 보편주의'를 적용한다. 즉, 국민 모두의 행복과 안정을 추구하지만 사회적 위험에 처했거나 복지가 요구되는 대상에게 복지 지원을 집중함으로써 불평등과 격차를 완화하고 사회적 안정을 이루어간다.

다시 설명하면, 소득 창출 능력이 없고 부모의 소득과 상관없이 양육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아동(대학생 포함)과 소득 창출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고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노인에게는 우선적으로 조건 없는 보편적 복지가 적용되어야 한다. 현재 아동수당은 만 6세까지 보편복지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노인연금은 현재 하위 70%에만 적용되고 있다(그래서 본 의원은 노인 백퍼센트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기초연금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실업(미취업 청년 포함), 질병, 장애 등의 사회적 위험에 처한 국민을 대상으로도 보편적 복지 제도가 시행된다. 소득만이 아니라 보육, 교육, 주거, 의료 등의 가족 중심 사회서비스를 통한 사회 안정을 지향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현금이나 사회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갖는 공무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노동자, 중소기업 임원 등의 개인에게까지 지급될 필요는 없다. 나 같은 국회의원 개인에게도 기본소득이 필요할까? 물론 이들도 본인이 실업에 처한다든가 질병이 걸렸을 때, 혹은 노인이 되었을 때에는 보편적 복지의 대상자가 된다. 또한 가족 단위로 보았을 때, 아동인 자녀가 있거나 노인인 부모가 계신다면 간접 혜택을 받는다. 이와 같이 보편적 복지국가는 필요 충족이 충분하도록 모두에게 적용되는 '맞춤형 복지안전망'을 짜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이 위험에 처했든 그렇지 않든, 복지가 필요하든 그렇지 않든 무조건적·무차별적으로 똑같이 현금을 지급한다. 위험에 처한 대상에게 보편적으로 충분히 보상이 되어야 하는데, 모두에게 무차별적 지급을 하다 보니 기본소득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축소된 소액 지급에 그치게 된다. 왜냐하면 기본적 생활을 보장할 정도의 돈을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하려면 천문학적 수치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정해보자. 기본적 생활 보장을 위해 5000만 국민 모두에게 매월 100만 원을 지급한다면 연간 예산 600조 원이 든다. 우리나라 연간 국세 수입(약 310조 원)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액수로 인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충분한 지급을 주장하거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소액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위기는 사회 근간을 흔들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 등 기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국가가 품어야 할 때다. 사진은 지난 4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폐업한 가게 앞. ⓒ프레시안(최형락)

기본소득론이 제기된 배경과 기본소득의 문제점

기본소득론은 오래 전부터 역사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소득 불평등과 실업이 만연하는 불안정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 사회를 더 안정시키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나왔을 것이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일자리(노동)가 소멸할 것이라는 불안이 문제제기의 중요한 동인이 되고 있다. 또한 기존의 복지국가 모델들이 여전히 사각지대의 불안한 국민을 양산한다는 문제의식도 기본소득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문제제기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우리 시대의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을 지를 하나씩 따져봐야 한다. 기본소득은 과연 복지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장차 일자리(노동)는 필연적으로 소멸될 것인가, 기존의 복지국가 체제를 대신해서 기본소득으로 인간의 삶을 안정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기본소득은 현실적으로 도입 가능한가,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게 된다.

첫째, 기본소득은 사회적 안전망 확충에 기여할 수 있는가?

앞에서 제기했듯이 기본소득은 현실적 한계로 인해 인간의 기본적 삶의 안정을 보장할 정도로 급여를 담보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월 몇 만 원 수준의 소액 지급을 제시하는 데 그치기 십상이다. 실업자에게는 기본적 생활을 영위하면서 안정적인 재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적정한 급여와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출산과 보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하려는 국민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적정 급여가 지급되어야 한다.

기본소득론은 국민의 처지에 대한 고려 없이 기계적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소득액을 적용하려다 보니, 최소한에 한참이나 미흡한 현금 지급이라는 점에서 치명적 한계를 갖는다. 결국,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게 된다. 복지체제는 인간의 삶을 안정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각종 사회적 위험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더라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기본소득은 소득재분배를 통해 소득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가?

부자들에게 더 거두는 누진적 소득세 구조를 통해 마련한 재정을 모두에게 똑같이 배분하면 약간의 재분배 효과는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제한적인 재분배에 그친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분배되고, 그것도 소액에 그치기 때문이다. 아동과 노인, 학생, 장애인, 실업자, 환자, 육아휴직자에게는 모두에게 현금이나 사회서비스가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지만, 안정적인 급여생활자나 사업가 개인에게까지 현금이 지급됨으로써 재분배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보편적 복지 안전망은 누진적 소득세의 세입구조와 맞물리는 보편적 복지 체계로 인해 강력한 소득재분배 효력을 발휘한다. 복지를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적용되는 각종 보편적 사회수당 및 사회서비스는 사회임금의 비중을 높여 소득 격차를 줄이고 대다수의 국민을 중산층화 함으로써 사회를 보다 안정되게 재편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안정된 사회구조가 이를 입증한다.

셋째,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들과 함께 시행될 수 있나?

현실에서는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정치사회적 관심과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한정된 재정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12%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0%이고, 북유럽 국가는 25∼30%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보편적 복지의 사각지대가 넓고 보장성이 미흡하다는 사실을 잘 입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대한 정부의 재정 능력을 확충해야 하며, 이렇게 마련된 재정은 모두 보편적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보장성 수준을 높이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도입하게 되면 재정적으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확대·강화하는 데 브레이크가 걸리게 된다. 즉, 기본소득을 지급하느라 기존 복지국가의 발전을 지체시키고, 심지어는 근간을 허무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론 입장에서는 아동수당, 무상교육, 무상 대학등록금, 기초연금 등의 지급 대상과 급여액을 높이는 일과 실업수당, 상병수당, 장애수당, 육아휴직수당 등의 폭을 넓히고 급여액을 높이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이다. 지금 당장, 그것을 위한 재원 마련이 시급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기본소득론은 전 국민에게 기계적·획일적으로 같은 금액을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다보니 기본소득은 거대한 재정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지도 못하고 보편적 복지의 확충·강화 정책과 충돌하게 된다.

넷째, 기본소득은 복지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가?

국민 모두에게 조건 없이 똑같이 현금을 나누어주면, 사각지대에 있던 대상자를 기계적으로 해소하는 데 약간의 기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말의 의미는 사회적 위험에 처한 대상자에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소액의 지원은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사각지대 문제는 소득 중심의 사회보험인 전 국민 고용보험의 완성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그것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실업부조로 해결해가야 한다(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

다섯째, 기본소득은 지속적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가?

모든 복지 제도는 경제적 효과를 포함한다. 보편적 복지 안전망은 소득재분배를 통해 소비력(구매력)을 높이기에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기본소득은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는데, 사실상 소액의 무차별적 기본소득에 비해 보편적 복지 제도가 구매력을 더 높인다. 보편적 복지는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지만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배 효과가 높다. 이들은 한계소비성향(소득 증가분에 대한 소비 증가율)이 높기에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고, 소비 진작의 경제효과가 더 커지게 된다. 또한 국가나 지자체가 실시하는 사회적 일자리의 대폭 확대 등은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전반적으로 국민의 구매력을 높여준다. 게다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복지정책 강화, 장애인과 노인의 경제활동 유입 정책으로 노동 참여율을 높여 성장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소비력도 확대한다.

잘 짜인 사회적 안전망은 기업 간 경쟁과 산업재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업자에게 재취업을 위한 안정적 실업수당 및 교육·훈련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에 기여한다. 이는 노동을 보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이에 비해 기본소득론은 무차별적 현금 지급이 초점이므로 경제활동인구의 확대와 사회적 일자리 창출 계획이 부족하고, 유효수요 창출 효과가 보편적 복지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여섯째,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기본소득이 대안인가?

기본소득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량실업을 전제로 노동 없는 소득보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발전은 기존의 많은 일자리를 없앨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에 있었던 몇 차례의 산업혁명 과정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산업화는 다양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에 대한 상상력과 예측도 필요하다. 전문가들과 선진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향후 일자리의 증감 예측이 팽팽하게 맞설 정도로 어느 한쪽을 예단할 수 없다. 설사, 일자리가 일부 줄어들더라도 그 속도는 완만할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국가의 강화 필요성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인간 노동의 다양화에 대비하면서, 동시에 불가피한 실업에 대해서도 생활임금이 보장된 공공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대폭 늘려나가려는 준비를 하면 된다. 노동 없는 기본소득의 무차별적 지급이 아니라, 노동권의 강화와 함께 이윤 논리가 아닌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공공·사회적 일자리를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장차 기본소득에 기반을 둔 작은 정부가 아니라 재정적으로 유능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역할이 더 크게 요구된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과제

보편적 복지국가도 그동안 사각지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 고용보험 수급이 끝나고도 여전히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 빈곤 노인, 비경제활동 인력 등이다. 새로운 노동 형태인 특수 노동자(배달 플랫폼 노동자 등)의 등장과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의 소득 안전망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고용·피고용 관계 중심에서 소득 중심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부처와 국세청의 전산망을 통합하고 실시간으로 소득을 파악하는 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최대한 빨리 보편적 복지국가의 '전 국민 고용안전망(소득안전망)'을 확립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등 저소득·불안정 노동자들을 고용보험으로 껴안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임금이 아닌 가입자의 '소득'과 기업의 '이윤' 중심으로 고용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당연히 영세 자영업자들도 포함시켜야 하고, 이 경우엔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 그럼에도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이나 장기 실업자일 경우엔 한국형 실업부조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작동하게끔 한다. 이게 보편적 소득보장인 사회보험과 선별적 소득보장인 공공부조의 작동 방식이다. 이는 보편적 복지국가가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할 부분이지, 기본소득으로 대체될 일이 아니고 대체돼서도 해결될 수 없다.

우리나라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는 월 180∼198만 원이다. 2019년 현재 고용보험에 드는 예산은 약 10조 원이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고용보험의 규모가 커졌다. 그럼에도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식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를 완성하는 데는 정부 재정으로 약 10조 원 정도를 투입하면 될 것 같다. 실업부조까지 다 고려해도 15조 원 정도의 정부 재정을 투입하면 전 국민 고용안전망의 틀을 어느 정도까지 확립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보장기간과 급여수준을 더 확충하려면 재정 투입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전 국민에게 월 4만1500원씩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려면 연간 26조 원이 든다. 이 정도의 재정이면, 전 국민 고용안전망을 확립할 수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 재정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사용할 것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재정 지출의 효과·효율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기본소득은 답이 되기 어렵다.

최근의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서는 피해자 중심으로 맞춤형 보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재난지원금은 말 그대로 재난지원금 그 자체일 뿐이다. 지원 방식을 놓고 보편이냐 선별이냐, 이런 식의 이분법적 논쟁은 지양해야 한다. 피해자 중심, 사회적 위험 중심의 재난지원금 보상을 선별주의로 몰아세우는 것은 크게 잘못된 비판이다.

사회적 안전망의 본질적 핵심은 사회적 위험에 처했거나 복지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과 가정을 적절하게 지원함으로써 한 사람의 사회적 낙오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잠시 위기에 처했다 하더라도 하루빨리 정상적 조건으로 회복시켜 주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고, 우리 사회는 행복의 기본 조건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지금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창의적으로 더욱 강화할 때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국민 모두의 행복을 지향한다. 안정되고 적절한 생활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맞춤형 보편적 복지체제를 지향한다. 상황과 처지에 대한 고려 없는 무조건적·무차별적 소액 지원은 보편적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한다. 앞으로 보다 진솔하고 개방적인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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