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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복잡한 사회적 중재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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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복잡한 사회적 중재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 코로나 대응은 모두가 완주해야 할 단체 달리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오는 14일까지 2주 더 연장되었다. 많은 이들이 2주마다 반복되는 정부의 방역조치 단계 발표에 귀를 기울인다. 일상생활, 혹은 생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용어가 되었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학술논문에나 언급되는 'social distancing'의 낯선 번역어였다.

신종 감염병이기에 누구에게도 항체가 존재하지 않고, 백신과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유행 통제는 오로지 공중보건 개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신속한 검사와 접촉자 추적, 격리가 한 축이라면, 손 씻기,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가 또 다른 한 축이다. 후자의 조치들은 정부의 노력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협조와 참여가 절대적이다. 이러한 조치들을 '비약물적 중재(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라고 지칭하는데, 성격 상 '복잡한 사회적 중재(complex social intervention)'에 해당한다. 이는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어떠한 목적의식이나 의지가 없는 피 실험 대상자들에게 연구자가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일방적으로 중재를 가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사회적 중재는 다른 많은 외부적 요인들이 이미 존재하는 개방된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며, 자기의지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실행의 수준이 달라진다. 많은 이가 깜빡 하고 수칙을 잊어버릴 수 있고, 열심히 실천하려 했지만 주어진 환경 때문에 그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수칙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일부러 수칙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작년 여름 광화문 집회 참여자들처럼 정부 방역 지침을 의도적으로 위반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중재에서 있을 법한 결과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다. 그런가 하면 임종이 임박한 위독한 노부모를 만나기 위해 자가격리 지침을 위반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시민의 안타까운 상황 역시 복잡한 현실의 일면이다. 사람들 모두가 백퍼센트 따르는 정책이란 존재할 수 없고, 어떤 정책이든 예상치 못한 부수적 피해가 따를 수 있으며, 물리적 강압과 처벌로도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두에게 동일 수준으로 적용될 수 없다. 무작정 강력한 제한 조치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공동취재진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이 처한 여건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이 다르고 그에 따라 치러야 할 대가도 다르다는 점에서 어렵고 논란도 많은 중재다. 일자리가 안정되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이들에게는 원격업무에 따른 다소간의 번거로움, 갑자기 늘어난 자녀 돌봄의 부담, 사회활동의 감소가 주는 답답함 정도가 문제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 혹은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충격이거나 도저히 완수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학교와 보육시설이 문을 닫고, 해외여행길이 막히고, 공연과 대중 행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이들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찌감치 해고 위협과 소득 상실에 직면해야 했다.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요식업과 개인서비스업이 다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영업제한 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경제적 피해만이 문제는 아니다. 원격 수업이 지속되면서 가정의 돌봄 역량 차이에 따른 어린이들의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 격차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다. 사회복지시설이나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던 이들, 대개 건강문제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이미 가지고 있던 이들은 더 큰 곤경에 직면했다. 예컨대 청소년 쉼터에 거주하는 가정 밖 청소년들은 필요한 장비나 환경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한 채 온라인 수업에 임해야 했고, 집단 시설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일반 가정과 다르게) 독서실이나 학원가는 것에도 제약을 받았다. 거리 청소년을 위한 아웃리치 활동도 축소되어 도움의 손길이 절박한 아이들을 놓치기도 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수칙을 지키고 싶어도, 여럿이 공동 생활해야 하는 비좁은 쉼터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접촉 의심 사례가 발생해도 격리 자체가 마땅치 않다 ("인권기반 코로나19 방역체계 구축을 위한 사례연구" 참조).

하지만 마땅한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유행의 주요 고비마다 거리두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가져올 사회적 피해와 지속가능성을 우려했다. 정파적 논쟁처럼 비춰지기도 했지만, 강조점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이를테면 작년 10월 초에 발표된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바로 보기)은 강력한 거리두기 조치가 아동 예방접종률 감소, 심혈관 질환 악화, 암 검진 감소, 정신 건강 악화, 경기하락과 불평등, 그리고 이로부터 초래된 장기적 건강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집단면역에 도달할 때까지 사망률과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 즉 '집중된 보호' 개념을 통해 (나머지) 사회는 전반적으로 정상화하면서 고위험군 보호에 집중하자는 제안을 했다. 예컨대 양로원에 "면역력이 있는 직원"을 채용하고 직원과 방문자 검사를 강화하며 "직원 교체를 최소화"하자는 식이다. 사회의 나머지 부분은 그대로 둔 채 고위험군만 보호하는 핀셋 방역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지 회의적이지만, 이들의 문제의식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열흘 뒤, 또 다른 일군의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존 스노우 제안서(☞바로 보기)를 저명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이들은 취약집단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저위험군 유행 전파를 통해 집단 면역을 달성하자는 앞서의 주장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청년층 감염이 완전히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감염 이후 면역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접근은 지역사회 유행을 지속시키면서 보건의료 체계에 상당한 부담을 가져오고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보호는 유행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에 달려 있으며, 효과적 백신과 치료제가 당도할 때까지 지역사회 유행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와 경제를 보호하는 가장 최선의 전략이라며 고위험 전략과 인구집단 전략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주장이,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초래된 각종 건강, 사회적 문제들이 미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견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주장이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것이 있다. 현재 어떠한 방역 조치로도 유행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한정 지속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방역조치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부작용이 좀 있더라도 아예 한 달 동안 '완벽하게' 봉쇄를 해서 유행을 '끝장'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언론 기사에서 이러한 종류의 댓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한 희망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애초 감염병 취약시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은 예측됐다. 하지만 실효적인 사전 대응은 미흡했다. 사진은 경남 창원시 민원콜센터의 근무 모습(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창원시청

우리는 위험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그에 따른 보건학적,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화를 통해 유행의 속도를 늦추면서 벌어들인 그 시간 동안, 의료체계를 강화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대비책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 사회의 방역 성과를 코로나19 발생률과 사망률, 전반적 경제지표 측면에서 본다면 국제적으로 양호한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이렇게 벌어들인 시간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기요양 시설에 어떻게든 감염이 시작되면 중환자 병상, 돌봄 인력, 접촉자 격리 공간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교정 시설에도, 이주 노동자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기숙사에도 애초에 5인 이상 집합금지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분명했다. 이미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싱가포르에서 비슷한 사례들이 작년 봄부터 터져 나왔고, 국내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런데도 이들 공간에서의 유행 가능성에 대비하지 못했다. 독서실과 학원은 영업을 하는데 학교와 공공도서관은 오히려 문을 닫는 희한한 상황도 1년 내내 반복되었다. 여러 명이 비닐하우스라는 밀폐 공간에서 하루 종일 함께 농 작업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기숙사에서 개인적 모임을 가지면 방역 수칙 위반이 되는 기묘한 상황도 현재 진행형이다.

예방접종이 시작되었지만 코로나19 유행이라는 긴 터널을 벗어나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화와 완화를 몇 번이나 더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 사람들이 이러한 조치를 따르기 어렵게 만드는 제약조건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진단하는 것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방역의 성공을 위한 방역'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방역을 위해서 말이다. 코로나19 대응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할 최후의 아마겟돈이 아니라, 모두가 완주해야 경기가 종료되는 단체전 장거리 장애물 경주이다. 가늘게, 길게, 그리고 동료 인간에 대한 애틋함으로 '함께' 나아갈 때만이 우리는 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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