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분야에서의 모달시프트(Modal Shift), 즉 교통수단변환 필요성이 제기된 지는 꽤 오래됐다. 1997년 채택되고 2005년 발효된 200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담은 교토의정서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교통수단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2009년 '지속가능교통물류발전법'을 제정하여 국제적 흐름에 발을 맞추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속가능교통물류발전법이 표방하는 목적과 입법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법과 달리 한국 교통의 체질은 변화되지 않았다. 과거의 관성대로 도로 중심의 개발과 확산이 지속되었다. 한국사회가 지속가능 사회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중독으로부터 탈피해야 함을 말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기반시설과 사회적 의식이 자동차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보니 탈 자동차의 대안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인프라 투자의 방향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통부문 모달시프트의 가장 중요한 축은 궤도교통이다. 그러나 전국망을 운행하는 철도뿐만 아니라 광역 지하철, 경전철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휩쓴 2020년에는 적자 폭이 더욱 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철도 망을 확산하는 것은 정부나 지자체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적자는 수익과 비용을 대비시킨 것으로 운영기관 회계의 직접비용 부분만 적용되어 있다. 그런데 교통부분에는 직접비용뿐만 아니라 그 교통수단이 유지됨으로 인해서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있다. 에너지 효율성, 환경오염비용, 교통혼잡비용, 사고비용 등으로 사회경제적비용이다.
이 같은 사회경제적비용을 적용하면 궤도 교통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뛰어넘는 편익을 사회에 가져온다. 지속가능교통물류발전법 17조에는 "정부는 매년 사회경제적비용을 산정해서 발표하고 교통물류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교통정책은 뿌리 깊은 과거의 관성에서 탈피하지 못해 법 정신이 구현되지 않고 있다.
도로 교통 위주의 사고 관행이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도로 건설과 확충은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이고 철도에 대한 재정지원은 비효율 기관에 대한 세금 낭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이런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라는 전제 아래 각 교통수단의 유기적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했다. 행정수도를 표방하며 추진됐지만 철도 인프라가 처음부터 고려되지 않았던 세종시 같은 경우가 대표적 사례이다. 수많은 신도시의 경우에도 철도 인프라는 정치인들의 선거 공약용으로 일부러 남겨두기로 작정한 것처럼 조성되었다. 구상 초기부터 미래 전망을 가지고 계획된 인프라와 시간이 흘러 드러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덧칠되는 인프라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간극 만큼이나 크다.
현대산업사회가 만든 도시는 인구 집약적 과밀성으로 인해 친환경적일 수 없다. 교통 부문에서라도 도시가 발생시키는 반환경적 요소를 저감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토부의 2018년 국가교통 SOC 통계 자료에 따르면 승용차의 나홀로 차량 이용 비율은 전국평균 81.6%이고 평균 재차 인원은 1.23명이다. 도시 중심, 자동차 중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궤도교통은 현대도시가 그나마 지속 가능함을 견지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타협 지점이다.
한국이 친환경 지속가능성을 촉진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견인하기 위한 유기적 완성도를 높이려면 철도망이 지금보다 최소한 1.5배는 늘어야 한다. 약 4000킬로미터인 영업킬로가 6000킬로미터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확장된 철도망은 철도수송분담률을 높여 도로에서 철도라는 친환경 모달시프트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IPCC(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2019년 1.5도 특별보고서를 내고 기존의 지구 평균온도 상승 목표치를 2도에서 1.5도로 낮춰야 한다고 발표했다. 철도망 1.5배는 1.5도를 지키기 위한,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할 만한 토건 사업일 것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해 지구를 살리려 노력하는 것은 인류가 이 행성에서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인류가 다른 생명체는 물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생하는 것이리라. 또한 인간 공동체 안에서도 갈등과 대결을 해소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빌리티 부문에도 현대사회가 만든 여러 가지 차별이 녹아있다. 이동의 자유는 모든 인간이 누리는 기본권처럼 보이지만 가자지구 거대 장벽 안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박탈된 권리이다. 장벽은 멕시코 – 미국 국경에도 있다. 지중해라는 천연 장벽은 아프리카를 탈출하는 난민들의 상당수가 최후를 맞이하는 곳이다. 앞으로 현실화될 기후 난민이나 전염병 난민, 방사능 난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이동자들이 등장 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이동의 자유는 모두가 누리는 권리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동 과정에 녹아든 불평등은 빈부와 젠더까지 폭이 다양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센델은 '자유롭게' 보이는 계약에도 자유로운 동의와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불공정한 권력이 끼어든다고 한다. 강요와 협박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형성된 불공정이 자유로운 선택의 가면을 쓴 채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선 연재에서 밝혔듯이 국토연구원의 <지역별 생활교통비용 추정 및 격차해소방안>연구 보고서에는 경기도의 교통수단별 생활교통비가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보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1.3배 높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이 카드사용 내역 빅데이터를 통해 <대도시 교통비 지출 현황>보고서를 냈다. 서울, 6개 광역시, 세종시에 거주하는 삼성카드 회원 30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가용족의 81.4%는 남성이었다. 반면 대중교통은 여성의 비중이 80.0%로 훨씬 높았다.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20년 1∼6월 광역 알뜰교통카드 이용실적 분석 결과도 여성 이용자 비율이 75.6%로 남성의 세 배를 넘는다.
80% 이상을 점유하는 나홀로 차량 안에는 대부분 남성이 타고 있다. 자동차 이용을 망설이게 할 수 있는 정책이 없는 가운데 대중교통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빈부에 따른 이동 수단의 차별, 지역간 차별은 물론 성적 차별까지 녹아있는 한국 모빌리티 현실의 반영이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신화가 맹위를 떨쳤다. 치열한 경쟁은 사회를 정글로 만들었고 정규직이란 방주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당연한 차별' 내면화를 강요당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는 모빌리티 부문에 까지 번졌다. 민영화와 민자사업 등 사회적 인프라마저 기업 이윤 창출의 장치로 전환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공기업도 수익 창출이 지상명령이 되어야 함을 강요받았다. 사회적 자산을 공동체가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공화국 정신이 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결과다. 모빌리티 전문가 미미 셸러는 교통과 같은 공공재는 시장의 결정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교통부문의 모달시프트 뿐만 아니라 상식의 모달시프트도 이루어져야 한다. 각자도생이 아닌 상생과 협력, 수익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 사회 협약에 기반한 교통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공공성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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