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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냥팔이 소녀들, 결국 일하다 두 눈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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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냥팔이 소녀들, 결국 일하다 두 눈을 잃었다

[프레시안books] 김성희, 김수박의 <문밖의 사람들>

1845년 말 세상에 나온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 이 동화는 영국에서 한창 산업혁명이 진행 중일 때 발간됐다. 당시만 해도 성냥은 모든 가정이 반드시 챙겨야 할 생활필수품이었다. 이때의 성냥은 백린(흰색 인)이란 물질로 만들어졌는데, 쉽게 불이 붙는 속성 때문이었다.

문제도 있었다. 이 물질은 제조 과정에서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끼쳤다. 가루인 백린은 성냥 제조 과정에서 공장 내 공기 중에 상존했는데, 이 물질이 호흡기 등으로 인체에 들어갈 경우, 체내 칼슘과 강력하게 결합한 뒤 소변으로 빠져나간다. 신체 내 칼슘을 갉아먹는 식이다.

이러한 반응은 어린이들에게 더 강하게 발생했는데, 당시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10대였다. 어린이들의 연약한 뼈, 특히 턱뼈에서 백린에 의한 괴사가 일어났다. 그럴 경우, 치아가 턱뼈에 눌어붙거나, 치아를 뽑다가 치아가 턱뼈 조각과 같이 발치되기도 했다. 당시 턱뼈 등의 괴사로 죽은 노동자 비율이 전체의 약 10% 정도였다고 한다. 직업병에서 10% 사망률은 사실상 작업장 노동자 전체가 걸렸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이곳에서 일했던 10대 소녀들은 백린이란 물질이 자신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자신이 왜 아픈지, 죽는지도 알지 못한 채 공장 밖 길거리에서 동화 <성냥팔이 소녀> 주인공처럼 죽어나갔다.

하지만 이 백린은 이후에도 계속 작업장에서 사용됐다. 이를 대체할 물질이 나왔지만, 여전히 공장에서는 이를 이용한 것이다. 생산 비용 절감이 이유였다.

아무런 안전교육도 장비도 없이 일하다...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문밖의 사람들>(보리출판사 펴냄)이란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만화가 김성희 작가가 그리고 김수박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었다.

이 책은 실화다. 2016년 스마트폰을 만드는 대기업의 3단계 하청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다 시력을 잃은 청년 이야기를 담고 있는 르포 만화책이다. 실명한 청년들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실명의 이유>(북콤마, 선대식 지음)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공개된 바 있다.

실명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주인공은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였다. 이 책은 그녀를 마찬가지로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녀가 노동건강연대라는 단체에 들어와 시력을 잃은 청년들을 세상에 알리는 서사구조로 책은 진행된다.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노력과 고민, 슬픔들이 담담하게 나열된다. 누군가의 오롯한 평생이 있어야만, 작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만화의 또 다른 한 축은 반도체 하청 공장에서 일하다 시력을 잃은 이진희 씨가 맡고 있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러 서울에 올라 은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반도체 하청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아무런 안전 장비도, 교육도 받지 않은 채 현장에서 작업하다 나흘 만에 의식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다. 다시 그녀가 눈을 떴을 때의 세상은 고장 난 TV 화면처럼 보였다.

▲ <문밖의 사람들< ⓒ보리출판사

약품의 위험을 알았다면, 실명했을까

이 책은 두 명의 청년, 시민‧사회활동가와 산업재해 피해자를 교차해 보여주면서 한국 사회에서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어떤 노동 현실에 처하게 되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보통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산업재해와, 다소 생소한 시민‧사회 활동가를 조금은 더 가깝게 끌어당긴다.

작가들은 이 책을 쓸 때, 우리 사회의 안전과 연대의 문 안으로 들여야 할 이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 말속에 책의 구성과 의도가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이진희 씨가 했던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 공장 작업은 매우 간단하다. 화학약품을 이용해 똑같은 공정을 반복한다. 다만, 누구도 그 화학약품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만약 그 약품이 인체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만 했다면, 실명을 당했을까.

신체는 가장 취약한 곳에서부터 고장난다. 일종의 전조다. 가장 먼저 몸의 위기를 알려주는 존재다. 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이 전조를 빠르게 파악한 뒤, 고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그런 점에서 일종의 몸과 같다. 아픈 부위처럼 위기를 알려주는 전조가 존재한다. 취약 계층은 몸의 취약한 '곳'과 비슷하다. 사회가 후퇴되거나 망가지는 현상을 가장 극명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이들을 잘 살피고 돌봐야만 사회가 건강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은 거꾸로 흘러간다. 취약 계층일수록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실명한 이진희 씨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

사회적 책임은 작고 개인의 책임만 가중되다보니 열악한 환경은 개선되지도, 개설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점차 우리 사회가 후퇴하는 이유다. 이 책은 그런 구조 속에 놓은 취약한 계층, 즉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하다 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사고가 최소한으로 발생하도록 대비하고, 일어난 사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그것이 사회의 책임이자 의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몸과 시간을 갈아 넣어 돈으로 바꾸는 일을 하다 이진희 씨는 몸의 일부이지만 전부인 눈을 잃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업주'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라고 생각하니 암담하기까지 하다. 19세기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나는 이유다.

그래도 박혜영 활동가라는 '존재'가 이진희 씨라는 '존재'를 만나 연대를 이루고 어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보다는 내일이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 낙관하게 된다. <문밖의 사람들>이라는 책이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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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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