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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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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블랙리스트에서 코로나19까지]블랙리스트 청산의 핵심은?

<프레시안>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에서 보내오는 기고글을 통해 블랙리스트부터 코로나19까지를 관통하는 실질적 문제와 쟁점들을 공유할 예정이다. 블랙리스트 권고안 전반에 대한 점검과 비판, 예술인권리보장법, 배제되는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목소리,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의 안부, 동물복지보다도 무관심하다는 예술인복지와 예술인고용보험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위기에 놓인 예술계의 문제를 사회 전반에 알리고 블랙리스트와 같은 국가폭력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편집자

동성아트홀, 극장 간판 화가의 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고등학생 무렵 극장의 영화 간판을 그리며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만경관, 한일극장 등 대구 시내 주요 개봉관의 간판을 그렸다. 극장 간판을 그리며 극장주를 꿈꿨던 그는 1992년 힘들게 모은 전 재산에 빚을 더해 3억 원을 만들어, 대구 동성로에 있던 재개봉관인 푸른극장을 인수하고 이름을 '동성아트홀'이라고 지었다. 그렇게 오랜 꿈은 이뤄졌지만 90년대 중후반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소극장의 인기는 금세 시들해졌다. 경영이 힘들어지자 극장주가 표를 팔고 아내가 매점을 담당하고, 아들은 영사기사로 일하는 등 온 가족이 함께 일하는 방식으로 견뎠다. 2004년 5월엔 제한상영관으로 운영하는 것을 모색하기도 했다. 전국의 첫 번째 제한상영관으로 큰 화제를 모았지만, 화제성이 수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결국 제한상영관이라는 도전은 3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동성아트홀의 시효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2004년 동성아트홀은 새로운 인연과 함께 돌파구를 찾았다. 대구경북시네마테크를 만난 동성아트홀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은 연간 상영일 수의 60%에 해당하는 동안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조건으로 운영비를 보조하는 사업으로, 극장 운영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 동성아트홀엔 소중한 기회였다. 동성아트홀은 2004년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제한상영관이라는 간판은 내렸지만 같은 해 9월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제한상영관에서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변신했지만 지역사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대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예술영화를 꾸준히 상영하면서 조금씩 인지도가 높아졌다. 2005년 2월 관객 중 하나가 자발적으로 포털 사이트에 팬카페인 ‘동성아트홀릭’을 개설했고, 카페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사람들은 금세 동성아트홀의 지킴이가 되었다. 2006년에는 지역 대학인 계명대학교 미술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극장의 벽면에 작품을 설치하고 벽화를 그리는 등 동성아트홀을 관객 친화적인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06년에는 2005년보다 10배나 많은 관객이 동성아트홀을 찾았다. 2011년 동성아트홀을 다룬 지역 신문 기사에 따르면 당시 네이버 카페 동성아트홀릭의 회원 수는 1만3천여 명, 다음 카페 동성아트홀릭의 회원 수는 2천여 명이나 되었고,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의 모범사례로 동성아트홀을 소개하기도 했다. 영화 간판을 그리던 청년의 꿈은 이렇게 행복하게 계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2015년 2월 25일, 동성아트홀은 문을 닫았다.

ⓒ연합뉴스

동성아트홀은 문을 닫았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매년 150~200편의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며 지역 영화문화의 거점 역할을 했던 동성아트홀은 2014년 8월,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에서 탈락했다. 영진위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등 상급 기관으로부터 지역 극장 수입이 지원금보다 적다는 지적이 있었고, 지원 사업의 심사기준을 시설 및 접근성 등을 우선 고려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지원에서 탈락했다고 설명했지만, 2004년부터 10년간 이어오던 지원 사업의 탈락은 치명적이었다. "지금의 예술영화전용관은 위원회의 지원금 의존율이 매우 높고, 관객 점유율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하는 예술영화 시장과 관객 성향을 고려하여 예술영화전용관도 함께 변모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 심사위원회는 지원극장의 제반여건과 운영실적 및 향후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지원을 결정하였다"라는 심사평에 영화계와 언론, 지역사회 등은 크게 반발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연 6000여만 원의 지원금이 끊기자 경영은 금세 힘들어졌다. 동성아트홀과 함께 지원에서 탈락한 극장 중 거제아트시네마는 지원 탈락이 결정되자마자 문을 닫았고, 대전아트시네마, 안동중앙시네마 등도 경영난을 겪었다. 동성아트홀은 지역 관객의 후원을 통한 운영 방식을 검토하기도 했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협동조합 방식의 극장 운영도 모색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동성아트홀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동성아트홀을 살리고자 했던 관객과 시민들의 마음은 지역의 한 독지가를 움직였다. 대구지역 병원의 원장인 독지가는 극장의 성격은 유지하고, 이전 극장주를 명예 극장장에 위촉하고 (이전 극장주의 아들을 포함한) 운영 인력의 고용도 승계하는 조건으로 동성아트홀을 인수했고, 내부 시설을 재정비하고 4월 1일 다시 문을 열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다시 행복하게 계속될 것 같았지만, 2017년 6월 25일 2년 만에 동성아트홀은 다시 운영 중단을 발표했다. 이번엔 극장 운영을 두고 인수자와 기존 운영 인력 간의 갈등이 발생했다. 결국 극장 인수자가 약속한 고용 승계는 2년 만에 중단되었고, 전 극장주의 가족은 모두 동성아트홀을 떠나게 됐다. 현재도 동성아트홀은 운영되고 있지만, 극장 간판을 그리던 극장주의 흔적은 '동성아트홀'이라는 이름에만 남았다. 동성아트홀 전 극장주의 이름은 '배OO'이다.

문제 영화를 상영한 동성아트홀을 지원에서 배제하라

2017년 1월 동성아트홀이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것은 단순히 심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의도적인 지원 배제임이 밝혀졌다. 1월 31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을 통해 영진위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영화나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대해 지원을 하지 않도록 지시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2017년 7월부터 시작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의 조사 결과도 동성아트홀에 대한 지원 배제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냈다.

2014년 3월 동성아트홀은 '독립다큐멘터리특별전'을 개최했는데 <천안함 프로젝트> 등 14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이 사실이 대구지역의 한 언론에 보도되었고, 이 사실을 접한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은 '좌파 성향'의 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영진위가 지원하는 데 대하여 질책하고 '페널티'를 주라고 지시했다. 2014년 4월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의 지원 대상 선정 절차를 이미 진행하였는데, 동성아트홀과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했던 다수의 극장이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 문체비서관이 문체부 차관에게 동성아트홀 등에 대해 확실한 조치할 것을 재차 하달했고, 이는 다시 영진위에 하달됐다. 결국 영진위는 6월, 이미 진행된 예비심사 결과를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의 ‘개선사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부결하고 재공모를 결정했고, ‘시설 부문’의 배점을 높이는 방식으로 심사세칙을 개정했다. 시설 부문의 배점을 높인 것은 동성아트홀 등이 오래된 극장이라 시설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진행된 재공모에서 결국 동성아트홀은 탈락했다. 2018년 취임한 오석근 영진위 위원장은 이 동성아트홀 등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배제를 포함한 영진위의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블랙리스트가 재발하지 않도록 후속 조치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후속 조치는 부족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면서 영진위의 블랙리스트 사업들은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정부에 반대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지원 배제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과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도 부분적으로 정상화되었고, 지원 사업의 심사제도도 정비되었다.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에서 부당하게 배제되었던 극장에 대한 지원도 재개되었다. 2014년 부당하게 지원에서 배제된 동성아트홀, 대전아트시네마와 안동중앙시네마 등은 2017년부터 다시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부당한 지원 배제 사실이 밝혀지고, 영진위 위원장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사업이 복원되고 지원이 재개된 것으로 동성아트홀 블랙리스트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겉보기엔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아니다. 완전히 다르다. 다시 지원을 받게 된 동성아트홀은 1992년부터 2015년 2월까지 배OO 씨 가족이 운영하고, 대구경북시네마테크의 대표 남OO가 프로그래밍하던 그 동성아트홀이 아니다. 극장의 이름과 주소는 같지만,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완전히 바뀌었다. 동성아트홀 블랙리스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무엇이 해결되었다는 말인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무엇이 해결되었나

1992년 푸른극장을 인수하여 2015년까지 동성아트홀을 운영했던 배OO 씨는, 2014년 동성아트홀이 영진위의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것이 자신이 극장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재공모 심사 결과 극장 시설 부분의 점수가 낮아 탈락했다고 영진위가 답했을 때, 1992년에 인수한 극장의 시설을 그때그때 개선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으로 지원에서 탈락했고 그 결과 극장의 문을 닫게 되었다고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잘못으로 지원 사업에서 탈락해 극장을 문을 닫게 되어 관객들이 더는 예술영화를 편하게 볼 수 없게 되었다며 자신을 탓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잘못으로 정말 고마운 대구경북시네마테크의 남OO 대표와 더는 예술영화관을 함께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고, 내 탓에 극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생각에 힘들어했을지도 모른다.

폐관 결정을 하고 얼마 뒤 지역의 독지가가 극장 인수를 제안했을 때, 어떠한 권리도 요구하지 않고 동성아트홀이라는 이름과 공간을 쉽게 넘겨준 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잃어버릴 뻔했던 소중한 공간을 관객과 시민들에게 되돌려줄 귀한 기회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명예 극장장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성아트홀의 정통성을 새 인수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배OO 씨가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원한 것은 극장에서 일했던 아들이 동성아트홀이라는 이름의 예술영화관에서 영사기사로 계속 일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2017년 인수자는 고용 승계의 약속을 저버렸고, 이 바람 또한 재가 되어버렸다. 2014년 정부 정책에 반하는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시작된 동성아트홀 블랙리스트 사건은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바뀐 것은 그뿐이 아니다. 동성아트홀이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이듬해 열린 네이버 카페 동성아트홀릭의 이름은 더는 동성아트홀릭이 아니다. 동성아트홀을 사랑한 관객들이 모였던 카페는 대구지역의 독립·예술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모이는 ‘대구아트홀릭’으로 바뀌었고, 이 카페에 동성아트홀과 관련된 게시물은 더는 없다. 블랙리스트는 2015년 초 동성아트홀을 지키려고 했던 관객들을 결국 동성아트홀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의 지원 배제 사건은 ‘사람’에 대한 범죄이고, ‘피해자’와 ‘피해사실’이 존재한다. 동성아트홀의 배OO 씨 같은 피해자는 우리 주변에 무수하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야당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 등으로 명단을 관리당하고 지원에서 배제된 많은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그들이 어떤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받았는지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어떤 피해가 있는지 조사는 없었고, 당연히 피해자들이 받은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피해는 회복되거나 보상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 피해는 당사자가 입는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예술가가 예술 활동을 더 이상하지 못하거나, 중요한 문화예술공간이 운영을 중단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우리 모두가 입게 된다.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1년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운영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진 몇몇 사건에 대해 해당 기관의 장이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하고, 문제가 된 사업을 일부 정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처방을 통해 앞으로 진행할 사업은 공정하게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고 블랙리스트가 청산된 것은 아니다.

진상규명, 책임자에 대한 처벌 이상으로 피해자의 명예와 피해를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정의다. 국가 범죄의 희생자인 피해자를 기억하고,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그들의 명예와 피해가 복구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와 그들이 입은 피해가 배제된 블랙리스트 청산은 제대로 된 청산이 아니다. 사건만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고 사람이 입은 '피해'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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