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문을 닫는 공간, 가게들이 많아졌다. 학교의 경우 등교와 개학이 연기되었고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올해 5월 초, 교육부에서 첫 등교 수업을 결정할 때에는 교육부 장관이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에 학생들의 의견이 일정 부분 반영되었으리라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학사 일정 등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비판 의견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학교와 가정에서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 등 현황 파악과 사회적 논의 또한 찾기 힘들었다. 특히 학교 운영 방식과 학사 일정을 정할 때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나, 시험과 수행 평가가 늘어나면서 더 커지는 부담 등을 고민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교육부는 '온라인 수업 매뉴얼' 등을 중심으로 지침을 발표했고 언론에서는 등교/개학 연기와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학습 격차' 발생을 주요 문제로 다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설정은 바람직한 걸까?
학생의 안전이나 배움보다 시험 성적에 더 관심이 많은 사회
올해 11월 3일 학생의날(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학생인권 실태조사'(전국 중고생 501명 온라인 설문 참여) 결과에 따르면 "정부/학교는 학생의 안전이나 배움보다 시험과 성적에 더 관심이 많다"라는 문장에 80.4%의 참여자들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큰 수치에 조금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을 겪으면서도 시험은 치르고 입시를 위한 경쟁을 멈출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능을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철저한 방역을 주문하는 발언을 접하며,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겪으면서도 수능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몇 년 전의 상황이 떠오른다. 오죽하면 현재 수도권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에도 '거리 두기 3단계' 조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능 때문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올까.
"아이들의 불안, 걱정, 우울, 그리고 여러 어려움은 제쳐 두고 이 시기에도 학력이 뒤처지는 것을 최우선에 두는 교육부나 어른들의 태도에 아이들은 일단 놀라는 반응, 기가 찬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고는 어른들과 자신들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공부와 성적에 대한 관료들과 기성세대의 환원주의적 강박은 워낙 익숙하지만, 이런 재난의 시기에도 가장 큰 걱정이 학력이고 그 격차라고 하니, 이 나라가 얼마나 학력을 숭상하는지를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김현수)
코로나 이후 달라진 일상과 그로 인해 드러난 문제를 진단하면서 우리 사회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이야기하지만 그 논의 속에서도 청소년들의 삶은 예외이다. 위의 책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이 시기에도' 학력 격차를 걱정하고 모의고사와 수능은 어떻게 해야 할지,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평가는 어떻게 할지가 우선 과제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의 대책도 온라인 교육의 활성화나 대입 정상화 등에 집중되어있다. 어쩌면 대학 진학이 주된 목표가 되어버린 교육에서 자연스러운 풍경일 수밖에 없다. "고3이 뭘 그런 거에 신경을 써?", "그 시간에 문제나 하나 더 풀어"라는 식의 말을 안 들어 본 청소년을 만나기 어렵다.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한 공부가 아니면 많은 것들이 '나중에 대학 가서 하면 될 일'로 여겨진다. 수능 이전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은 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학력 격차 해소인가
지난 11월 14일, 코로나 상황 속에서 쉽게 묻혔던 청소년의 삶과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온라인 발언대 행사 '빡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라'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 고등학생은 이렇게 발언했다.
"코로나 시대에 학생은 그저 무생물에 가까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입시에서 최상의 성적을 내기 위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정은 최상의 컨디션을 기준으로 짜입니다. 아픈 몸을 적극적으로 예상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에서도 청소년은 그저 아프면 안 되는 몸이 됩니다. 입시까지 정해진 일정을 이어가기 위해 절대 감기 비슷한 증상이 발현되어서는 안 되는 몸이 되고, 수업에 빠지면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기에 의심 증상이 발현되어도 '증상 없음'을 체크 하고 등교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두통, 열을 호소하는 친구들을 자주 봅니다. 시험 기간이라 스트레스를 받은 건지 코로나 증상인지를 구분해 낼 수 없는데, 수업을 놓칠 수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같은 반 학생이 열이 나는 이유가 코로나이지 않기를, 내가 코로나 환자 옆에서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몸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자꾸 '몸이 없는 교육'을 견뎌 내길 강요합니다. 학교는 학생의 아플 권리도, 건강할 권리도 보장하지 않은 채로 아득바득 입시 준비만을 이어 나갑니다. 수많은 존재들의 몸을 부정하는 것을 감히 교육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온라인 발언 대회 '코로나19 속 빡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라!'에 참석한 대구 지역 고등학생의 발언)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교육을 '견뎌 내야' 하는 걸까. 이 발언을 통해 "교육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 확대를 추진하고 학습 격차를 걱정하는 논의는 어디에 기준을 두고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며 새로운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방향이 '비대면으로도 입시 교육 잘 하는 방법'이라면 곤란하다. 청소년들이 고통스러운 교육, 비인간적인 교육을 방법만 바꾸어 이어 가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이 교육에 참여하는 목표는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되고 있다. '경쟁을 통해 더 높은 학력/지위를 가질 기회를 주는 과정'이며, 시험 결과에 따라 학생들을 줄 세우고 차별하는 것이 교육의 최우선 과제처럼 생각된다. 코로나19 이후 교육에서 나타난 격차 문제 등을 이야기하는 방식 역시 이러한 전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습 격차에 대한 걱정은 얼핏 보기에는 불리한 여건의 학생들을 걱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 속에는 이미 기존의 교육 제도가 적극적으로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성찰은 빠져 있다. 시험 성적 분포에서 '중간이 사라진' 상황은 단지 교육 접근성이 불평등함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 가난하고 열악한 여건의 학생들이 '노오력'하여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줄었다는 문제로 다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험 성적 격차를 줄일 방안을 고민하는 것에, 경쟁을 좀 더 공정해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무엇에 집중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교육의 목표가 서열화와 경쟁이기에 평가와 시험, 그리고 어떻게든 수업을 해서 진도를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할 대안을 고민하기보다는, 시험 성적으로 나타나는 '학력 격차'가 고민거리가 되었다. 수업 일수 등을 줄인다면 우선되어야 할 교육 과정이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논의하기 이전에 고3 학생과 재수생 중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느냐 하는 논의가 먼저 제기됐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대학 입시 일정만은 어떻게든 치러내는 지금, 이제라도 무엇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는지 다시 질문해야 한다. 교육은 등급과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고 학교를 줄 세우며 차별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을 좀 더 공정한 경쟁의 과정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성장과 삶을 위한 과정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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