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국가들이 문을 걸어 잠그면서 이전에 빽빽이 차있던 항공편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난 10월 한 달간 인천공항 이용객은 19만7000명으로, 이는 팬데믹 이전의 하루 평균 인천공항 이용객과 비슷한 숫자라고 한다. 크게 침체된 항공 산업에서 낮은 이용료와 빠른 운송을 통한 수익으로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던 저가항공사가 눈에 띄는 타격을 입었지만, 대형 항공사들이라고 타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지난 달 16일, 정부는 아시아나항공의 오랜 경영난에 대한 대책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책을 발표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도록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8천억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이번 '빅딜'의 배경으로 코로나 이후 항공운송 산업의 위기를 말하면서도, 두 항공사가 합병할 경우 세계 항공 산업 10위권의 '초대형 항공사'가 탄생한다는 기대 역시 숨기지 않는다.
누가 항공 산업의 위기를 만들었나
코로나로 인한 위기 때문에 항공 산업을 지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은 코로나 이전부터 심각하게 악화되어 있었다. 2019년 산업은행 주도로 현대산업개발에 매각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바도 있다.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2020년 6월 말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약 1100%, 아시아나항공은 2300%에 달한다. 초기 비용이 많이 투입되며 승객 마일리지가 부채로 집계되는 항공 산업의 특징상 부채율이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인수를 위한 자산조차 현금화할 수 없는 대한항공이 이미 빚더미에 올라있는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할 때 높은 부채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항공운송 산업의 사정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데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국토교통부는 자본금과 항공기 보유 기준을 완화하며 항공 산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내용으로 항공면허 발급 기준을 변경했다. 2020년 현재 저가항공사를 포함해 국적 항공사는 12개로 늘어났으며, 2018년 면허체계가 한 번 더 바뀐 뒤에 국제운송면허를 취득한 3개 항공사가 취항을 예정하고 있다. 그 전부터 이미 포화상태라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운송면허 기준을 완화해가며 추가로 발급하고, 비행기 편수를 늘려가며 해외여행을 적극 권장하는 등 소위 '소비 촉진'을 부추겨온 주체는 정부였다. 규모의 경제 운운하며 덩치 키우기에만 몰두해온 항공 산업은 예기치 못한 상황의 변화를 맞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위기에 빠진 항공 산업을 살려내는 역할을 자처하지만, 정작 항공 산업의 위기를 만들어낸 게 정부 정책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개별 기업과 산업 규모를 키우는 정부 대책
과포화와 경영난에 허덕이는 항공 산업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정부의 재편 기조는 다시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향하는 듯하다. 도민들의 반대 의견과 심지어 여론수렴 절차까지 무시한 채 추진 중인 제주 제2공항, 주민들에 대한 소음 피해 보상을 무시하며 낮은 예산을 책정한 채 추진되던 김해신공항, 김해신공항이 백지화 된 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강수까지 두며 추진 중인 부산 가덕신공항, 면허를 취득한 뒤 취항을 앞두고 있는 3개의 신생 항공사 등 정부는 항공 산업의 위기를 말하면서도 새로운 공항을 짓고 항공사를 출범시키는 일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가 제시하는 항공 산업 재편의 모양새는 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보장하며 개별 기업의 덩치를 키우는 식이다.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이 기존 한진그룹 주주들과 경영권을 두고 대립하는 구도 아래에서, 기존 주주들은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에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지만 기각되기도 했다. 정부가 나서서 개별 기업의 경영권을 추켜세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합병하게 될 경우 중복되는 직군의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리라는 우려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테지만 중복적인 부분에 자연감소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현재 정부의 정책은 산업과 기업의 사정만 고려하고 있을 뿐, 그 안에 속한 노동자들의 생존권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산업'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거대한 항공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주로 항공종사자인 파일럿과 승무원을 떠올리지만, 비행기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행기에 짐을 싣고 내리거나, 비행기를 정비하거나, 기내식을 준비하고 시트를 정돈하는 등 지상에서 항공을 책임지는 수많은 지상조업사들이 있다. 국내 항공 산업에서 일하는 항공종사자는 약 2만8000명, 지상조업사는 약 2만 명에 이른다. 더해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을 유지 및 운영하는 인력까지 생각한다면 항공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는 훨씬 늘어난다. 비행이 줄고 항공 산업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은 이 모든 사람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 합병을 두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조 6곳이 공동 입장문을 통해 노동자들의 의견 배제된 일방적 인수합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정부가 그리는 항공 산업의 재편 과정에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고려되고 있지 않다. 이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의 70%가 강제 휴직중인 상황이다. 또한 이번 합병 소식이 전해지기 전부터 600여 명이 정리해고된 이스타항공 노동자들,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에 사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된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처럼 생존권을 요구하며 싸우는 항공노동자들도 있다. 지난 11월 8일에는 한 승무원이 기약 없는 무급휴직 끝에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항공 산업의 위기를 만들어온 것은 항공 산업의 규모를 늘리기에 급급했던 정부 정책이었다. 현재 항공 산업이 위기를 마주했을 때, 그 안에 속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하는 것도 국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산업의 규모를 키우고 기업을 회생시킨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개별 기업만 이득을 보고 노동자들은 손해를 떠안으며 잘려나가는 상황이 1998년 경제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마다 반복해서 나타났다. 기존 산업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기업에만 거액을 지원하며 다시 산업의 규모를 키우려는 방식의 대책은 '재편'이나 '전환'이 될 수 없다.
항공 산업 재편의 원칙은
기후위기에 대한 높은 관심 속, 엄청난 양의 탄소에너지를 소모하는 항공 산업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정부가 스스로 외쳐온 그린 뉴딜이나 저탄소 전환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항공 산업 재편의 목표는 산업의 '재부흥'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이 되어야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저 기업을 살리고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데 몰두하는 게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을 새롭게 그려나가고 그 안에서 기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일자리와 직군을 만들어내는 '대전환'이다. 항공 산업 재편 과정에서 정부가 지녀야 할 원칙이다.
그간 두 항공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책은행이 지원한 돈만 아시아나 항공 3조5400억 원, 대한항공 1조2000억 원에 이른다. 지난 5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조성한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역시 주로 항공 산업에 투입된 바 있다. 현재 추진 중인 두 항공사의 인수합병 계획 역시 산업은행이 최소 8000억 원을 더 지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항공 산업에 대한 재편을 주도해나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제시하는 두 항공사의 인수합병책은 국가 재정을 투여해 개별 기업을 확장한 뒤 재벌 총수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의 책무는 개별 기업을 살리거나 산업을 키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지금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항공 산업 재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원칙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그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위치에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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