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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바꿉시다" 대구은행의 조직적 증거인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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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바꿉시다" 대구은행의 조직적 증거인멸

[은행권의 '정유라' 그들은 왜 당당한가] 여전히 구제되지 못한 채용비리 피해자

채용비리 증거인멸을 위해 컴퓨터를 바꾸는 건 일도 아니었다.

대구은행은 이미 우수 거래처 자녀를 채용하려 국가보훈처가 관리-발행하는 '보훈번호'까지 조작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이들은 자석으로 컴퓨터 하드디스크 정보를 영구 삭제하고, 파쇄기로 증거서류를 없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된 20명 관련 정보가 그렇게 사라졌다.

대구은행 부정입사자 20명 중 10명이 한 남자의 손을 거쳐 최종 합격했다. 그는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대구은행에서 인사부장을 맡은 임OO 씨다. 박인규가 당시 대구은행장이었다.

▲ 대구은행. ⓒ셜록

임 씨는 대구은행 부정입사자 중 주요 인물들을 여러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합격시키는데 관여했다. 그가 주도한 주요 부정입사자들은 이렇다.

'박인규 대구은행장 운전기사 딸 김OO, 고OO A병원 관리이사 딸 고OO, 인사부 직원의 외사촌 동생 박OO, 대구은행 사외이사 친척 구OO….'

박인규 은행장은 2017년 10월께, 성OO 본부장과 임 부장에게 채용비리 관련 증거서류를 없애도록 지시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한 시점이었다.

박 행장은 인사부 컴퓨터 교체부터 지시했다.

"채용과 관련해가 문제될 만한 컴퓨터 자료가 있는지 전부 다 살피보고, 문제될 것 같으마 (인사부) 컴퓨터를 (통째로) 바꾸는 게 좋겠심다."

지시를 받은 임 부장은 인사부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민감한 자료들이 많으니 컴퓨터를 바꾸는 게 좋겠심다. 비자금 사건으로 대구은행이 시끄러븐데, 특기사항 등이 기재된 채용청탁하고 인사에 민감한 자료까지 문제되마 안되니깐 이번 기회에 삭제합시더."

인사부 직원들은 우선, 컴퓨터 네 대를 교체했다. 컴퓨터 안에는 채용청탁 경로 및 청탁 주체 등이 적힌 ‘임직원 명부 파일‘이 저장되어 있었다. 인사부 직원들은 이 데이터를 ‘디가우징’ 방법으로 삭제했다.

디가우징은 강한 자기장을 이용해 하드디스크를 영구적으로 지워 복구를 어렵게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이들은 파쇄기도 동원했다. 인사부는 채용청탁 내역이 기재된 '채용특기자 리스트' 문건, 각 전형 단계별 면접평가표 원본 등을 문서 세단기를 이용해 잘게 찢어버렸다.

이 모든 증거인멸을 주도한 인사부장 임 씨. 기자는 지난 11월 4일, 대구에 위치한 임 씨의 집을 찾았다. 현관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그의 부인이 대답했다.

"(임OO) 아직 퇴근 안 했심더. 그라고 이때까이 우리 죄깞 다 치뤘심더. 와 집까이 찾아옵니꺼? 인자 찾아오지 마이소!"

다음날, 그가 지점장으로 근무 중인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대구은행 OO 지점을 찾았다. 임 씨 대신, 부하 직원이 기자를 맞았다.

부하 직원은 "홍보팀을 통해 문의해 달라"고 말했다. 곧이어 대구은행 홍보팀이 기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기자님, 저희(대구은행) 영업점이나 지점을 찾아가십니까? 그 부분은 자제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을 직접 찾아가는 건 너무 과한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임 씨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입사시킨 입사자들은 어떻게 지낼까? 임 씨가 관여한 부정입사자 10명 중 과반이 2020년 11월 현재, 대구은행에서 일한다.

반면, 채용비리 피해자는 여전히 구제되지 못하고 있다.

▲ 대구은행. ⓒ셜록

대구은행은 2016년 하반기 중견행원 채용에서 사외이사 친척 구OO을 뽑기 위해 지원자 홍OO의 세일즈면접 등급을 S에서 C로, 지원자 권OO의 등급을 B에서 C로, 지원자 박OO의 1:1 심층인터뷰 및 토론 면접 각 등급을 A에서 C로 하향 조작했다.

이들을 대신해 점수가 상향 조작된 구 씨는 2016년 하반기 중견행원 채용에서 최종합격했다. 그는 현재 대구 북구에 위치한 대구은행 지점에서 근무 중이다.

대구지방법원 재판부(재판장 손현찬)은 업무방해,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된 임OO 부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2018년 9월에 선고했다. 임 부장은 작년 4월 진행된 항소심에서 벌금 2000만 원으로 감형됐다.

1심 재판장은 피고인 임 부장에 대한 양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임 씨는) 박인규 행장의 지시를 받아 대구은행 채용비리에 가장 주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범행기간 및 횟수도 적지 않으며 (그가 관여한) 부정채용자 지원자도 10명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증거인멸 행위까지 범했다. 위 피고인에 대한 비난 가능성은 박인규 다음으로 크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지적을 받은 대구은행은 최근에야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에 대한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피해자 구제 계획에 대해선 일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법원이 "부정채용자"라고 확정 판결하고, 채용비리 혐의로 은행장이 감옥을 다녀와도, 어쨌든 부정입사자들은 오늘도 대구은행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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