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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배송·야간노동에 대한 소비자 책임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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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배송·야간노동에 대한 소비자 책임은 없을까?

[박병일의 Flash Talk]

조선 전기에 편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궁성문은 초저녁에 닫고 날이 밝은 뒤에 열며 도성문은 인정(人定: 밤 10시경)에 닫고 파루(罷漏: 새벽 4시)에 연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2경(밤 9시부터 11시) 뒤부터 5경(새벽 3시부터 5시) 전까지는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통행이 금지되었다고 하며, 이를 어기는 사람을 매우 엄격하게 처벌하였다고 전해진다.

위와 같이 조선시대에 야간 통행을 금지시켰던 이유는 한양의 치안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 '불'이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비록 치안이 목적이긴 했지만, 이와 같이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이 되면 백성들을 의무적으로 귀가하여 쉬도록 함으로써 누구나 밤에는 자고 날이 밝으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어둠과 빛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밤낮이 없는 사회에서 살게 되면서, 노동자 시간에 대한 자본가의 처분권 행사가 어두운 밤에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24시간 3교대제 또는 심지어 2교대제가 흔히 존재하는 근무 형태가 되었으며, 소비자 편익에 따라 24시간 영업이 자연스러워졌다. 예컨대, 하루 중 아무 때나 편의점을 방문해도 원하는 제품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총알배송'이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어느새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문 앞까지 배달이 이루어지는 새벽 배송이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상기에 언급한 편익에 대한 욕망은 누군가 다른 노동자의 밤 시간을 우리가 구매함으로써만 획득 가능하고, 그로 말미암아 노동자는 자연의 시간을 거슬러 소비자를 위한 시간 결핍을 강요받는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야간 시간대의 노동력 거래와 이로 인한 야간 노동(근로기준법상 야간 노동이란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사이의 근로를 말한다)이 노동자에게 엄청난 희생을 부과한다는 사실이다.

첫째,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야간 노동을 '2급 발암물질(Group 2A)'로 규정하고 있다. 둘째, 암이 아니더라도, 24시간 생체주기가 파괴되어 각종 질병을 야기하고, 종국에는 이 질병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수명 단축에 이르게 한다. 셋째, 예를 들어, 아이가 학교에서 귀가하기 전에 출근하고, 퇴근했을 땐 이미 아이가 등교한 상황을 경험하는 등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기가 대단히 어렵다. 넷째, 쉬어야 할 때 강요되는 노동은 집중력 저하를 초래하여 업무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반면 활동 시간에 강제로 쉬어야 함에 따라 피로회복을 더디게 한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편익에 대한 욕망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다만 누군가의 야간 노동이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노동 시간의 분업 구조에 있어 지금보다는 좀 더 정의롭고 인간 중심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현행 노동법에는 야간 노동과 야간 노동자에 대한 관련 조항이 부족하다(제56조(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제57조(보상휴가제), 제70조(야간 근로와 휴일 근로의 제한)가 전부이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가 야간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증명하며, 따라서 야간 노동에 대한 법규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야간 연속 근무 제한, 휴식 보장, 업무량 조절, 근무 선택권 보장, 야간 노동 규제를 위한 단체협약 등에 대한 종합적인 규정 보완이 시급하다.

둘째, 근로기준법에는 휴일 또는 연장·야간 근로를 할 경우 본래 임금의 0.5배를 추가로 지급(그나마 거의 대부분 야간 노동자들의 급여는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하게 되어있을 뿐, 시간 보상에 대한 규정이 없다. 주간 근무 30시간이 신체와 삶에 미치는 영향과 야간 근무 30시간으로 인한 결과가 동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야간 노동 시간에 대한 보상(예를 들어, 의무적 보상 휴가)이 적용되어야 한다. 참고로, 근로기준법 제57조에서 말하는 보상 휴가제는 금전적 보상을 대신하여 주어지는 휴가를 의미하기에 추가적인 시간 보상과는 상이하다.

셋째, 앞서 지적했듯이, 만일 야간 노동이 우리 사회에서 불가피하다면, 제도화된 0.5배 가산 수당이 적절한지, 그리고 노동의 대가에 대한 공정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면 어느 정도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요구된다.

넷째, 야간 노동은 병원, 경찰, 소방 등과 같은 공공서비스형 야간 노동과 기업의 이윤추구로 인해 발생한 야간 노동으로 구분할 수 있는바 공익을 위해 필요한 전자에 대해서 만이라도 우선 예산과 인력이 충분히 확충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이때, 기업 윤리와 기업의 사회적 기여가 크게 강조되고 있는 것 못지않게 야간 노동으로 인한 다른 노동자의 건강 악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료비)의 증대를 바탕으로 획득하는 소비자의 편익 추구가 과연 바람직한지, 자성이 필요하다. 야간 배송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구매 결정이고 소비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인지도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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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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