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숙원’이라는 미망(迷妄)
제주 제2공항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명분 중의 하나는 제2공항 건설이 ‘제주도민의 숙원’이라는 것이다. 제주도청뿐만 아니라 국토부도 즐겨 사용하는 논리이다. 일반적으로 숙원(宿願)이라고 하면 오래된 소원을 말한다. 그런데 제2공항 건설이 언제부터 어느 정도로 강한 숙원이었는지,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은 숙원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나 지역 주민들이 ‘숙원사업’에 목을 매고, 이 언어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첫째, 민주화 이후에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자, 각 지방정부는 국책사업의 유치경쟁에 경쟁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기에 국책사업은 대부분 권력 핵심의 의사에 따라 좌우되었고, 지역민들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위로부터 결정되는 대형 국책사업들은 추진 과정 자체가 불투명했고, 정경유착의 의혹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비판이 거세지자 지자체에도 점차 권한의 일부가 이양되는데,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부터 대형 개발프로젝트의 유치는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 수장들의 정치적 명운을 좌우하는 잣대가 되었다. 이때, 대형 개발프로젝트가 지역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라는 주장은 좋은 명분이 되었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도 지역의 숙원사업에 재정을 투여하는 것이 추진 과정에서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반발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이 지역주민들의 진짜 숙원이 맞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제주도 구좌읍 동복리 일대에서 추진되고 있는 사파리월드 조성사업에 대해 동복리 마을회는 “동복리민의 숙원사업으로써 중단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열대 동물들을 데려와서 제주에 동물원을 짓고 가둬두는 것이 언제 어떻게 지역주민들의 숙원사업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제2공항 건설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말에 건설된 비행장을 1958년에 제주비행장으로 개편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제주공항을 확장하고 현대화하라는 요구는 늘 존재해 왔다. 초기에 그것은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는 몇몇 특권층의 요구였고, 항공이 제주도민의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개장 이후에도 제주공항은 세 차례에 걸쳐 활주로를 확장했고, 몇 차례에 걸친 여객청사의 신축과 증축을 거쳤다. 특히 1980년대에 내국인 관광 활성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자 1990년대부터 제주도정과 관광업계를 중심으로 공항인프라 확장에 대한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항인프라 확충 요구가 곧 바로 제2공항 건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5년 11월에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가 나오기 전까지 제주도와 정부에서 내놓은 보고서들의 대안은 또 하나의 공항을 짓는 ‘제2공항 건설’이 아니라, 현 공항을 폐쇄하고 항공 기능을 하나의 공항으로 통합하는 ‘신공항 건설’ 방안이었다. 그러니까 제주의 개발주의자들과 부동산 투기자들이 금과옥조로 들먹이는 “제2공항은 제주도민의 숙원사업”이라는 주장은 햇수로 6년차에 불과한 새로운 주장이다.
제주의 개발주의자들이 ‘숙원사업’이라는 말을 신봉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배제하는 손쉬운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염원’인 ‘숙원’이라는 말에는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체험해 온 불편이나 불이익이 있고, 따라서 외부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으니 개입하지 말라는 정치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제주의 자연이 좋아서 이주한 젊은 이주민들에게는 ‘외지인’이나 ‘전문시위꾼’이라는 딱지가 붙고, 모르면 닥치고 있으라는 정중한 충고에서부터 위협적인 협박이 들러붙는다. 그것은 이곳 <프레시안>의 “제주도가 환경부장관에게” 연속 기고문에 달린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제주도정은 “제2공항 건설은 제주의 백년대계”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정작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의 대안을 제2공항 건설로 결론지은 사전타당성 보고서는 자료의 고의적인 누락과 조작의 혐의를 받고 있고, 인프라 확충의 대안 도출 과정도 자의적으로 진행하여 최소한의 객관성과 타당성도 갖추지 못한 최악의 보고서였다. 이런 보고서의 결론을 제주의 백년대계로 삼자는 주장은 무모하고 끔찍하다.
도민 여론의 추이
그렇다면 이 문제를 결정할 일차적 주체인 제주도민의 여론은 어떠한가? 제2공항 건설을 자신의 숙원이라며 지지하고 있는가? 제2공항 문제에 대한 도민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면, 그 결론은 명확하다. 초기에 대형 국책사업의 유치가 제주 경제를 회복시키고 지역균형개발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제2공항 찬성으로 기울었던 여론은 추진 과정의 비민주성,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 주민 생존권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제2공항 반대 쪽으로 기울었다.
아래의 표는 2015년 말에 제주도정이 사전타당성 보고서의 결론대로 제2공항 건설을 공식화한 시점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으로 검색가능한 여론조사의 결과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각각의 여론조사는 제2공항에 대한 찬반 입장을 직접적으로 묻는 것도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질문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제주의 100여 개 이상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결집한 비상도민회의 내에는 제2공한 건설 문제에 대해 다양한 대안적 입장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현 수준 이상의 공항인프라 확충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부터, 정석비행장을 활용하는 방안, 현 제주공항의 시스템 개선, 보조활주로의 확장 방안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다양한 대안적 입장들도 제2공항 반대 여론에 포함시켰다. 반면, 새로운 부지를 택해서 제2공항을 건설하자는 입장은 제2공항 찬성 여론에 포함시켰다.
도민여론의 추세는 명확하다. 제2공항안이 발표되었던 2015년 말과 2016년 초 이후로 반대의견은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2019년을 기점으로 반대의견이 더 많아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제주의 공항인프라 확충이나 관광사업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제주도민들은 과거와 달리 과잉관광의 문제나 환경수용력 등 환경이나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점차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것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직접 펴낸 보고서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민의 공론을 수렴하여 제주도가 2016년 2월에 발표한 '제주미래비전 – 청정과 공존사회를 향한 제주의 전략'은 “제주는 섬관광지로 관광객 수 증가에 의존하는 양적 성장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그러나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경우 관광수용력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는 제주의 양적 성장과 자원 중심 개발, 가격 중심의 경쟁구도, 관광수용력 한계로 인한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주는 질적 성장과 가치창조 중심의 관광개발 방식으로의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요컨대, 관광객의 양적 증가에 대응한다는 것 이외에 어떤 사회적 가치도 반영하고 있지 않은 제2공항 건설 계획은 제주도의 비전과 정책 목표와도 상충되며, 비전과 가치가 부재한 계획이다.
둘째, 제주의 공항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 중에서 최종 대안을 제2공항 건설로 결정한 과정 자체가 심각한 거짓과 부실에 기반한 것이어서, 제주도민의 분노의 원천이 되었다. 첫 번째로 현 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은 바다를 대규모로 매립하는 방식 하나만 제시되었고(그래서 공사비와 환경 문제 때문에 대안에서 탈락했다), 더 가까이에 활주로를 건설하는 방안이나 보조활주로를 활용하는 방안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외국의 전문기관(ADPI)이 보조활주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공항수요량을 처리할 수 있다는 하도급 용역 보고서를 제시했지만, 국토부는 이를 은폐했다가 나중에 마지못해 공개했다. 두 번째의 신공항 건설방안은 제대로 된 검토도 거치지 않고 2015년 9월 원희룡 도지사의 요청에 의해 정치적으로 배제되었다. 그랬던 원 지사는 이후에 시민들이 공항인프라 확충 대안과 입지선정 과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도민결정권을 주장하자, 이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며 일반 시민들이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제2공항 건설방안은 현 공항의 최적 개선방안과 상관관계에 있다. 현 공항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그것으로 부족한 용량만큼의 규모로 건설하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 전문기관은 현 공항 개선으로 충분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고, 그것이 이 보고서가 은폐된 진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들은 시민활동가들과 지역 언론에 의해 차례대로 폭로되었는데, 양파 껍질처럼 끊임없이 드러나는 거짓과 부실은 반대 여론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다. 즉, 반대여론의 상승은 누군가의 선동이나 조종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실과 거짓으로 점철된 제2공항 건설안 자체가 자멸해 온 과정일 따름이다.
셋째, 제2공항 추진 과정 자체가 비민주적인 불통의 과정이었다. 국토부의 느닷없는 성산 입지 선정은 성산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것이었다. 이후에도 국토부와 제주도정은 주민들의 반대의견은 묵살하고 제2공항 건설을 전제로 한 민원만을 듣겠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도민들의 공론조사나 주민투표 요구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부했다. 결국 도민들도 성산 입지의 주민들 누구도 자신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제2공항 문제를 결정하는 그 어떤 자리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다수의 도민들이 제2공항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고(62.4%), 제2공항 갈등의 원인으로 국토부의 일방적 추진(33.3%)과 제주도정의 중재 노력 부족(21.2%)을 꼽았다. 그리고 압도적 다수(84.1%)가 공론조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2019년 6월 JIBS 여론조사).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과 난맥상을 해결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제주도민들에게 의견을 묻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제주 도민들은 ‘숙원’이라는 이름의 낡은 과거로 돌아가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미래를 결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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