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수산마을은요
17세기부터 수산리와 흘전촌으로 구분되었는데, 수산리의 옛이름은 물미로 믈미,믈메(지금 대수산봉)라는 오름 북서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흘전촌의 옛이름은 홀압, 홀앞,곶앏,곶앞으로 ‘덤불 숲의 앞’이란 뜻이다.
고려시대 수산평 일대에 말과 양등을 방목하였다는 기록에 비추어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말-14세기초로 추정한다. 수산1리는 500여 년 전.수산 2리는 800여년전에 설촌한 후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성산읍역사문화지). 수산리지에는 100년이라 기술되어 있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고 해발 고도가 낮으며 평탄한 지대를 이루고 있어 목야지로 이용되었다. 욍미오름(대왕산), 낭끼오름, 궁대오름, 뒤곱은이오름, 돌리미오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수산진성. 진안할망당. 울렛모루하로산당(본향당), 누루못, 부부석, 현윤경효자비, 홍달한효자비, 충남부대최융양경위청덕비.신술당, 개나물. 폭남못. 거머리못. 이전물, 4.3마을복구기념비, 한못, 수산굴등 많은 역사유적과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다. 제주 제2공항이 생겨 살기 힘든 마을이 되면 공동체가 사라지고 학생이 부족해져 학교가 폐교된다. 오름이 깍여 없어진다. 도로가 생기고 건물들이 생긴다. 삼촌들은 땅과 집을 팔고 떠날 수 밖에 없다.
수산마을 내 가족 이야기
나는 1969년 여름에 알 동네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이란성이라서 닮지 않아서 중학교동창 남자들은 같이 잘 다녔던 친구로 인식될 정도였다. 1남4녀의 큰딸이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이 알 동네 동창이신 두 분이 연애결혼을 하셨다. 숨어서 연애하느라 엄청 힘들었단다. 그리고 할머니 두분은 모두 20대 중반에 할아버지들을 잃으셨다. 친할아버지는 아버지 네 살때 4.3으로 돌아가셨고 , 외할아버지는 6.25 한국 전쟁때 해병대로 징집되어 전쟁에서 돌아가셨다. 두 할머니가 한 동네에서 홀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수산마을 알 동네는 예전에 4.3과 전쟁으로 많은 할머니들이 혼자서 자식을 키우시고 생계를 꾸려 사신다. 외할머니는 지금 연세 95세로 살아계신다. 요즘 할머니에게 예전 이야기들을 들을려고 노력한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현대사 기록이기에...
"친할아방은 산사람들과 토벌대 싸울때 죽창에 찔러 죽었주게. 그때 세상은 죽는게 너무 흔한 세상이었주. 무슨 정신으로 살아신고. 그냥 죽지 못해 살았쥬."
"우리 할아방은 전쟁3번에 죽어 부렀주. 왜정 때 징집돼서 갔다가 돌아오니 4.3. 낮과 밤 피해다니멍 겨우 살아나난 6.25전쟁. 그때 나강 못 와부렀쥬"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재를 별로 못 느꼈단다. 모든 아이들이 아버지가 없었기에.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속 깊이 울꺽하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눈물이 난다. 가만히 보시던 할머니는 "무사 울엄시? 울지 말라. 살다보니 이런 좋은 세상도 오고. 겅헌디. 무사 나라에서 쓸데어시 공항은 지으켄 햄시? 늙은 할망들 시끄러웡 어떵 살랜? 젊은 사람들 미깡(귤) 농사랑 밭농사 지으멍 살아사 헐껀디. 대통령 좋은 사람이랜 생각해신지 아닌거여. 어이구", "우리 창현이 너무 애썽 어떵허코게. 농사도 해야 하고 데모도 해야 허곡"라고 한다. 창현이는 외손자이고 수산리 청년회장이다. 할머니 눈에 예쁜 손자다.
수산마을 수산초등학교와 수산진성 이야기
가족 7명 모두가 수산초등학교 출신이다. 8회부터 43회까지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감싸는 성이 문화재인줄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 소중함도 잘 몰랐으리라. 그 성 위에서 소꿉놀이를 했고 학교 왼쪽 계단에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를 외쳤다. 그때는 커 보였던 계단이 지금은 너무 조그마하다. 학교 오른쪽 성 동문밖에 있는 과수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면 오후에는 검질도 맸고 귤도 따고 심지어는 집에서 짚을 갖고 오는 게 숙제였다. 수산2리 친구들은 등에 부모님이 등에 매어 준 짚을 메고 오다가 노느라고 정신이 팔려 학교에 도착해보면 등에 짚이 하나도 없어서 엄청 혼난 적도 있다. 그 귤을 판 돈 으로 급식을 했는데 거의 매일 국수만 줬던 기억(밀가루 냄새가 엄청 났다)
해마다 학생 수가 감소해서 학교에 폐교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마을 어른들이 학교가 없어진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전국에 있는 수산리 출신 사람들에게 모금 운동을 해서 빌라를 지었다. 2동16 세대가 살 수 있었고 초등학교를 둔 학부모들에게 관리비만 내고 거주할 수 있게 하니 1시간 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그곳이 지금 리사무소 옆 ‘대왕주택’ 수산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행복하단다. 학교 운동장에서 마음 놓고 뛰어다니고 마을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워준다.
2공항 활주로가 학교 800미터 지점이면 아이들이 학교에 남을까? 항공기 소음에 창문도 열지 못하는 곳, 제주답지 않은 곳에 살 이유가 없을 것이다. 모두 떠날 것이다. 그러면 학교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
수산마을 4.3 이야기
수산마을은 성산읍 지역에서 4.3 희생자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희생자 신고가 된 숫자가 133명. 중산간 마을이라 산과 오름에 가까웠다는 이유로 많은 희생자가 있었다. 성산에 9연대가 주둔하고 연이어 서청특별중대가 주둔하면서 수산마을은 더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산에서 내려와서 경찰서 습격을 할 때 성산포경찰서로 가는 길목이고 직선거리로 3.8km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산마을 주민들은 경찰, 군인들 앞에서 그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다. 이런 희생 속에 일군 마을이다.
한 마을 안에서 산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고 군인 경찰 가족도 있었다. 1948년12월 .토벌대가 주민들에게 모두 학교로 모이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모두 모여 있으니 "김oo을 아는 사람 손 들어" 그러고는 "내 형 이우다"라면서 동생이 손을 드니 토벌대가 그 자리에서 총을 쏘았다. 그 자리에는 4살짜리 동생과 어머니가 있었다. 눈앞에서 형이 죽는 모습을 본 어머니와 동생. 4살짜리 동생이 일어서려고 하니 마을 주민들이 몸으로 막아 숨겼다. 일어섰더라면 또 그 앞에서 죽임을 당했으리라.
동생을 잃은 큰형은 6.25 전쟁이 나자 해병대로 자원입대했다. 나의 외할아버지랑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전사하셨다. 빨갱이라 불리나 죽는 거나 마찬가지 일 것이라 전장으로 나가신 것이다. 유해는 성산읍 충횬 묘지에 나의 외할아버지랑 같이 안장되어 있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후배인 손자를 만난다. 한 가족사가 비극이다. 마을의 많은 가족이 그렇다. 소와 말을 키우고 농사를 지내온 마을이 엄청난 아픔을 지닌 마을이 되어버렸다.
이런 아픔을 묻어두고 지금의 수산마을을 온 힘으로 지켜 온 삼촌들이 국가의 일방적인 2공항 발표에 걱정이 많다. 땅값이 오르고 개발된다고 찬성하는 사람들도 마을에 같이 산다. 4.3과 같은 광풍이 몰아친다. 찬성, 반대의 의견이 나누어 지고 서로 적대시한다면 마을 공동체는 해체되고 말 것이다. 4,3도 이겨낸 우리 마을이 더이상 힘들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여러분, 수산마을의 거욱대(방사탑)가 되어주세요!
2020년 6월에 거욱대(방사탑)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용담해안도로, 이호동, 내도동, 신엄리, 소길리등 서쪽 여러 마을의 거욱대(방사탑)을 만났다.우리가 방사탑이라 말하는 거욱대(답다니. 답대) 여러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마을 공동체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며 세웠던 탑이다. 지정문화재가 아니어서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탑들이 많았다. 그것도 불과 3-4년 전이 일이다. 그리고 개인 마당에 조경용도로 쓰이는 탑도 있었다. 복원한다고 예산을 들였으나 원형보다 규모가 웅대해지고 모양이 훼손되어 시멘트가 섞여서 만들어지는 탑들.
나는 수산마을을 사악한 기운에서 꼭 지켜야 한다. 나를 지켜준 곳 지켜줄 곳이기 때문이다. 2공항이 생겨 시멘트와 건물과 자동차와 비행기 소음에 울고 있는 수산을 내버려 둘 순 없다. 손 놓고 훼손 되어 가는 수산을 바라볼 수는 없다. 수산마을을 알리고 발로 걸으며 수산마을을 계속 알려갈 것이다. 여행자도 좋다. 제주도민들도 좋다. 수산마을로 오셔서 걸어보시라. 너무나 예쁜 초등학교도 눈에 담고 수산마을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제주의 여러 난개발을 반대하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라도 지켜야 한다. 제주가, 제주사람이 같이 용쓰며 지켜가 보자. 제2공항, 난개발의 사악한 기운이 오지 못하게 막아 보자. 혼자는 거욱대가 되지 못하지만, 함께 거욱대(방사탑)가 되는 것은 어떨까?
오은주 : 수산리 출생. 수산초등학교 32회 졸업생. 온 가족이 수산초등학교 출신이다. 제2공항 반대는 내 고향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며 마을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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