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지난 8월 25일, 음력으로 칠월칠석이 되는 새벽 2시에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섯알 오름’을 친구 동료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곳은 1950년 8월 20일 예비검속으로 구금되었던 양민 149명이 학살 당한 곳입니다. 새벽 2시, 트럭에 실려 온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그곳에서 학살 당했습니다. 총소리에 놀라 달려갔던 사람들의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습니다. 왜 이토록 우리 땅에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지역들에 양민 학살터가 난무한 것일까요? 심지어 정당하다는 전쟁조차 너무나도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합니다. 4.3의 아픔이 있는 평화의 섬 제주가 언제부터인가 군사기지로 무장을 하며 그것이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6.25’ 또는 ‘한국전쟁’을 검색하면 전쟁을 치면 시작된 날은 적시가 되어 있는데 끝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한반도는 전쟁 중인 것입니다. 남북한을 합쳐 400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중 200만이 민간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남한이나 북한이나 전쟁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새로운 한반도를 꿈꿀 수 없었던 것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들과 강대국의 간섭으로 역사가 비틀려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용기를 내어 종전을 선언하고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들을 다음 세대가 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발전소와 핵무기를 사용하는 현대에 전쟁은 모두가 자멸이기에 평화공존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방어를 위해서 충분히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와 맞붙어 국방력를 늘려야 한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이 누려야 할 일상의 복지는 길을 잃고 파탄에 빠질 것입니다.
1991년 6월 30일, 당시 공산권의 최강국이었던 소련의 고르바쵸프와 노태우 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을 제주도에서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15일 세계의 석학들이 모여 동북아시아가 평화를 유지하는데 제주도의 역할이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들을 했습니다. 5가지 원칙들이 주요 담론으로 정리되었는데, 그 첫째가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제주 소개란에 ‘평화의 섬 구상 제시’라는 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얼마 전엔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하셨던 한 분에게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미국과 중국이 싸우는데 우리가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지” 라구요. 나이 드신 할머니의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시는 듯했습니다. 시작부터 과정, 결과까지 어느 것 하나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강정 제주 해군기지는 제주도가 왜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강력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강정의 평화 활동가들은 2013년 1월 27일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선언된 지 8년이 되는 그날 100여명 4.3 평화공원에 모여 제주도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제주의 해군기지가 처음에는 화순에 지어지려 했지만, 주민들의 저항으로 위미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강정으로 다시 넘어오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깊은 반성에서 왔습니다. 처음 화순에서 위미로 넘어갈 때 반대를 하던 주민들이 우리 마을의 문제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이 일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만약 ‘제주도엔 군사기지가 필요없다. 다시는 군홧발이 제주도를 짓밟지 않도록 하겠다.’ 결심했더라면 더 힘 있는 싸움을 할 수도 있었고 더 많은 제주도민이 함께 연대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그러한 선언을 하게 한 것입니다.
제주 섬 자체가 비무장이 되어야 비로소 평화의 섬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허망한 꿈은 아닙니다. 세계의 많은 지역이 비무장 지대를 만들어 분쟁을 소강시킨 곳들이 있습니다. 동부 에게해 제도, 세우타 국경장벽, 멜리야 국경장벽,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그라운드 세이프티 존, 스발바르 제도, 수단 &남수단 국경지대, 키프로스, 핀란드에 있는 올란드 제도. 그리고 미국의 은퇴하신 분들이 가장 살고 싶은 나라로 뽑고 있는 나라 전체가 비무장 영세중립국을 지켜 나가고 있는 코스타리카가 있지 않습니까?
제주도는 ‘특별 자치도’입니다. 제주도를 평화의 섬이라 선언했던 처음 정신을 다시 살려 제주도 전체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면 제주의 아픈 역사는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1997년 IMF 사태 때 외국자본이 모두 한국을 빠져 나갔는데, 6.15 공동선언이후 외국 투자가 급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평화가 강력한 안보, 강력한 경제정책일 수 있습니다. 어느 종교의 경전에는 3000년 전부터 “창이 낫이 되고 칼이 곡괭이가 되어 전쟁을 연습하는 일이 끝날 것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끔찍한 전쟁을 경험한 한반도에서 태어난 제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가르침은 간절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강정 앞 바다에는 이제 해녀들이 없습니다. 신의 텃밭이라고 하던 구럼비가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버렸고, 큰 군함이 출입하면서 바다가 더는 평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군복합항에 미군의 핵 잠수함이 들어옵니다. 제주 해군기지는 중국을 겨냥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기지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고 염려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 염려가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산에 세워질 제 2 공항 역시 공군기지로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어두운 먹구름으로 다가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는 것이 한반도가 강대국의 대리전에 이용당하지 않고 한반도가 전쟁의 가능성에서 한 걸음 더 물러서게 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종전이 되지 않은 이 땅 한반도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는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곡괭이를 만드는 누구나 자신이 일군 밭에서 평안히 그 열매를 취할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주는 땅이 한반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 3월 8일, 지금은 해군기지 영내의 작은 공원처럼 조금 남은 구럼비에 들어갔습니다. 전쟁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해군기지 앞에서 절을 합니다. 백배 음원을 듣고 평화의 기도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는 일은 사회적인 공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인식이 변해야 할 것입니다. 존재나 본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 그리고 단순 소박한 삶에 대한 가치들이 존중되면 전쟁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 아침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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