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대수산봉에 올라
지난봄에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 부지를 직접 보고 싶어 제주도를 찾았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제주도의 풍광과 분위기를 떠올리며 제2공항의 야만성을 상상해봤지만, 실감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성산읍 어디라던데, 성산 일출봉에서 한라산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있는 부지라던데, 거기에 수산초등학교가 있고 그 학교가 ‘활주로의 북쪽’이 될 운명에 처해졌다는데… 이런 상상으로는 부족해 아무래도 직접 몸으로 느껴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작가들과 몇 명과 함께 가보자는 이야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둘러보니 당위적인 입장 이상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만두자 했다가 결국 혼자 길을 나서게 되었고, 제주도에 사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제2공항 건설 예정 부지가 한눈에 보이는 대수산봉에 오르게 되었다. 먼저 부지의 규모에 크게 놀랐다. 눈을 의심케 200여만 평의 부지는, 강정에 있는 해군기지와 연결되는 공군기지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일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제2공항이 왜 불필요한지에 대한 다른 의견과 대안은 수두룩하다. 이것저것 말할 것 없이 국토교통부 자신이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지엔지니어링(ADPi)에 의뢰한 용역 연구의 결과만 봐도 그렇다. 용역 결과는 간단히 말해서 제2공항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정 필요하다면 기존 공항의 시스템을 개선해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우스운 것은 국토교통부가 이 용역 결과 보고서를 숨기려다 들통이 난 것인데, 그들이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나 고위관료들, 재벌들, 전문가 선생들은 수치심을 모르는 집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1월에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도 주민들이 결정하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이상한 말을 남기고 이 첨예한 갈등 현장에서 슬며시 발을 뺐다. 제주도 주민들이 결정하면 받아들이겠다가 아니라 ‘지원하겠다’란다! 그래서 아직까지 국토교통부는 제2공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한라산 쪽으로 보이는 몇 개의 오름을 살피고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성산 일출봉과 그 오른쪽으로 섭지코지가 보였다. 나는 잠깐 그 일대가 비행기 제트 엔진 소리로 뒤덮이는 상상을 했다. 비행기를 탈 일은 어쩌다가 제주도에 갈 때뿐인데, 언젠가 김포공항에서 무심코 활주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비행기가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가 빠져나가는 것과 비슷한 빈도로 이륙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왜 그러면 안 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궁해지지만, 비행기에 탑승 가능한 인원을 잠시 떠올려보면 우리가 너무도 흔하게 비행기를 통해 어딘가로 날아간다는 현실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언젠가부터 상대적으로 비행기를 많이 이용하는 측에 속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코로나 이후 항공업계와 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대로 우리가 그동안 너무 많은 여행을 다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비행기나 크루즈 선박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얼마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린 뉴딜?
생태문제나 환경문제에는 아무 관심도 없을 것 같은 조선일보 2019년 11월 22일 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유럽환경청(EEA)이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비행기를 탄 승객 1명이 1㎞를 이동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285g으로 교통수단 중 가장 많다. 자동차(104g)의 약 3배, 기차(14g)의 약 20배에 달한다. 영국 BBC에 따르면 비행기가 배출하는 뜨거운 배기가스와 찬 공기가 혼합해 만들어지는 구름인 비행운 속의 수증기 등을 합치면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최소 두 배 이상이 된다. 전 세계 민간 항공기의 운항은 연간 약 8억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를 차지한다.” 이미 그레타 툰베리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기후위기와 관계가 있다면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들에게 강제로 스톱 명령을 내린 것이며, 만일 그렇다면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계와 여행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한 것 아닐까?
문제는 문재인 정부다. 한국판 그린뉴딜을 하겠다면서 그 내용이 부실한 것을 넘어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킬 일을 향후 정책이라고 버젓이 내놓은 것이다. 누가 봐도 ‘그린’ 뉴딜과 역행하는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변함없이 추진할 기세이다. 당사자인 주민들의 합리적인 의견을 귀담아 듣는 정권을 지금껏 보지 못했기에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앞에서 얘기한 파리공항공단지엔지니어링의 용역 보고서나 최근에 항공 업계가 처한 상황의 원인을 살펴보면, 제2공항 건설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억지스러운 일인지 불 보듯 빤한데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는 게 아니라) 안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필시 건설, 토목 기업의 일거리를 보장해주고 거기서 파생되는 허구적인 경제성장에 매몰된 ‘정치 행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제2공항을 건설할 경우와 그러지 않을 경우의 경제적 대차대조표를 나는 알지 못하나, 토착 주민들의 삶과 자연을 파괴한 대가가 바로 지금의 기후위기라는 것은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정을 책임지고 있는 원희룡 지사의 태도는 어떤가. 원희룡 지사는 재임 내내 제주도에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다음 대권에 야망이 있는지 다른 이슈에도 단골처럼 끼어들고 있는데, 대부분의 그의 입장과 정책은 반동적인 것을 넘어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그 또한 케케묵은 경제 논리 말고는 지금 제주도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전형적인 대한민국 정치인의 모습을 우리는 원희룡 지사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내일 일은 난 몰라요’이다. 정치가 계급은 선거에만 당선된다면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지 아무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이해와 욕망만 중요할 뿐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와 연민은 눈꼽만큼도 없는 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탐욕을 강요했나
며칠 전 어떤 책을 읽다가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에 나온다는 인상적인 구절을 만났다. 1차 대전 이후 유럽 지성들의 좌절감을 표출한 책으로 널리 알려진 이 책에는 오늘날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치 않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고 한다.
“이들 대도시의 주민이 된 사람들은 농민생활을 마음으로부터 혐오한다. 그들에게는 전통이라는 것은 전혀 없으며,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경제적 동기일 뿐이다. 그들은 무종교적, 실제적 인간으로 살아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턱대고 여행을 좋아하고, 일찍이 문화가 번성했던 시대의 유물이나 예술품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구경하러 돌아다닌다.”
슈펭글러의 이 비판은 현상적 차원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지없이 적용되는데, 사실 이런 “대도시의 주민이 된 사람들”의 삶과 마음은 그들 스스로 가지려고 가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주입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윤에 대한 무제한의 자유를 희구하는 자본과 그것이 바로 경제성장의 본질인지도 모른 채 (아니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국가의 정책에 의해서 말이다. 도리어 국가가 앞장서서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려고 하는 가장 비근한 예가 바로 한국판 뉴딜 펀드일 것이다. 사실 모든 자연을 파괴하는 대부분의 개발 사업은 거대 토목, 건설 기업의 이윤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국가 권력은 아마 이게 경제성장에 현명한 방책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설령 경제성장을 위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 후유증이 엄청난 일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에 해당되는 일이며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명징하게 확인된 사실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 제주 제2공항 건설은 부조리 자체이고 난센스이다. 문재인 정권의 역겨운 아집의 상징이다!
대수산봉에서 내려와 우리는 성산읍 쪽으로 가다가 해안도로로 빠졌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사실 걸어서 여향하기 딱 좋은 곳이 제주도이다. 올레 길은 지나다가 겹칠 수도 있고 벗어날 수 있다. 제주도에 단지 아름다운 풍광만 있다면 제주도를 크게 잘 못 본 것이고, 역사적 사건만 떠올리는 것도 조금은 강퍅하다 할 수 있다. 곳곳이 학살의 장소이면서 그 비통함을 달래주려는 듯 특유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자주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제주도에 대한 감정은 매우 복잡하게 되고, 이 복잡한 감정 탓에 다시 또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제주도 감정’이라고 이름 붙여본 적이 있다.
한반도 허공에 특히 이산화탄소가 많다고 한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가 낭비에 가까운 소비와 무의미한 여행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개개인의 도덕적 결단을 촉구하는 것만으로 파고가 점점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위기에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를 여행 ‘괴물’로 만든 세력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이 위기에 대처하는 이성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경쟁과 탐욕과 과소비를 몸에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누군가가 분명 있다. 그들이 지금 대수산봉 아래 자욱하게 펼쳐져 있던 대지를 파헤치고 비행기 제트 엔진 소리로 뒤덮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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