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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자치는 명지휘자가 명연주를 만드는 교향악단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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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자치는 명지휘자가 명연주를 만드는 교향악단을 닮았다

[김주원 박사의 '마을자치에 학과 습을 이야기하다'] ㊼마을·주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 낼 명지휘자가 필요하다

마을자치는 교향악단을 닮았다. 마을규모와 비슷한 100여명의 단원들이 비슷한 악기파트별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때론 천인 교향곡처럼 1000명이 넘는 예도 있다.

마을 이장처럼 지휘자가 있고 각 파트별로도 반장처럼 리더가 있다. 취미반, 아마추어동호인, 전문교향악단 등 교향악단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마을도 그렇다. 생활공동체로 자연 그대로인 상태의 마을이 있는가 하면 기업 이상으로 마을자치를 잘 운영하는 마을도 있다.

마을처럼 교향악단의 명연주도 단원 개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안된다. 지휘자 즉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휘자 없이도 명연주를 할 수 있을까? 유명 교향악단이 실험했다.

ⓒ김주원 농도상생포럼 회장·전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잘 훈련된 단원들이 단원들끼리 연습해서 음악회를 개최한 것이다. 그리고 명지휘자를 모시고 연주해 비교해 봤는데 청중들의 반응은 지휘자가 있는 연주회에 대한 반응이 훨씬 더 좋았다고 한다.

좋은 소리를 내려면, 전체소리를 조율할 지휘자가 꼭 필요하다. 마을도 그렇다. 각 단원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를 조율할 수 없다.

지휘자 나름 연주곡을 해석하여 색깔을 입혀야 한다. 악보는 사실 건축 설계도면과 같다고 한다. 더 좋은 건축물을 만들려면 건축감독이 잘해야 명품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따라서 단원들과 소통이 중요하다. 좋은 지휘자가 단원들로부터 신뢰받는 지휘자가 일심동체가 되어 곡을 연주할 수 있을 때 명연주가 된다.

마을자치에서 리더와 구성원들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듯이 교향악단에서도 지휘자와 단원의 관계가 중요하다.

지휘자와 단원간의 관계는 사실 상당히 불편한 관계일 수도 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비슷하기도 하고 사장과 직원의 관계 같기도 하다. 지휘자는 초대된 손님처럼 지휘하는 객원지휘자도 있고 단원들과 함께 하는 상임지휘자도 있다.

상임지휘자와 음악감독을 겸하는 교향악단도 있다. 상임지휘자는 단원중 한사람이지만 음악감독은 교향악단의 모든 음악적 결정권을 대부분 가지는 경우이기 때문에 음악감독의 책임이 더 넓고 크다.

명지휘자는 전체소리를 조율하기 위해 단원들 각자에게 요구하는 수준만큼의 피나는 훈련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각 단원의 소리의 강약을 조율해 자기만의 색깔을 갖춘 음악을 만든다.

다른 소리 틀린 소리를 내는 단원의 소리를 찾아 조율해주어야 한다. 물론 작곡자가 악보에 쓰인 의도를 최대한 잘 해석해서 명연주를 만든다.

명연주를 위해서는 단원들이 평소 연습과 같이 실수가 없어야 한다. 리허설할때는 틀린 소리를 내는 단원을 골라내 조율할 수 있다. 그런데 공연중 지휘자는 연주회중 단원이 치명적인 실수로 틀린 소리가 나도 곧바로 그 단원을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지휘자 훈련법에는 그런 훈련도 한다고 한다. 그 단원은 이미 틀린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을뿐더러 쳐다보면 당황해서 연주하기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수한 것을 다시 지적하며 면박을 준다면 회복할 수 없는 이웃관계가 된다.

유명교향악단의 단원이라면 독주회를 열 수 있는 정도의 쟁쟁한 실력을 갖춘 음악적 자질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그렇게 훌륭한 단원이라도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소리를 내는 것은 명연주를 위해 불가피하다.

정말 열심히 개인기량도 닦아야 하고 지휘자가 작곡자의 악보에 충실하게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각자 단원들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지휘자가 마을에 필요하다. 마을에서도 똑같다.

교향악단 단원들은 각각 악기를 연주한다. 과거부터 많은 연주가 연주회장에서 이루어져 왔다. 때론 녹음되어 음반으로 제작되어 평론가들에 의해 명연주 혹은 최악의 연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같은 교향악단 연주라도 명연주 명반은 지휘자에 따라 연주의 등급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교향악단 지휘자들의 각기 다른 리더십을 보면 ‘좋은 리더십’이란 게 뭔지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평론의 거장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평론가는 그가 본 수백명 지휘자 중 지휘자의 리더십에 대해 방향을 알려주는 평가를 한다.

그가 만난 지휘자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지휘자는 로린 마젤(1930~2014)이었다고 회고한다.

마젤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첼리스트 장한나의 재능을 높이 사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협연하기도 했고 후원했다. 뉴욕필 상임지휘자로 있던 시절인 2008년 2월 북한을 방문해 역사적인 평양공연을 이끌었다.

그는 교향악단을 이끌며 거만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자신의 지도방식과 방향을 고집해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마젤에 대한 더 객관적인 평가는 단원들이 더 잘 밝혀 주고 있다. 단원들에 따르면 그는 테크닉이 완벽한 지휘자였다. 악보가 약간이라도 복잡할 때 마젤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조금이라도 어려운 부분에서는 늘 정확한 지시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의 모든 악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보의 A부분부터 다시 합시다’라는 지시를 하며 동시에 악보를 넘기지 않고도 정확하게 지휘봉을 들었다. 단원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를 수밖에 없다.​

훌륭한 지휘자는 훌륭한 마을리더처럼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휘자를 단원들이 테스트하기도 한다고 한다. 역량이 부족한 지휘자라면 단원들이 이 실험을 통해 무시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준비된 지휘자는 그 단원의 틀린 부분을 지적하며 더 완성된 음악을 단원들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로린 마젤과 반대로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지휘자는 아니었다. 지휘봉의 놀림이 정확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휘자이지만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놀라울 정도다. 그는 설명을 통해 단원들과 교감하는 지휘자였다. 단원들에게도 음악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다른 식으로 연주하게끔 만든다.

명지휘자로서 리더십의 핵심은 두 가지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한다. 첫째, 내 앞에 있는 단원들이 누구인가? 둘째, 언제 지휘하지 않아도 되는가? 첫 번째 문제는 마을리더입장에서는 현재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문제의식을 갖는 일이다.

틀린 소리를 내는 단원을 정확하게 잡아내 명연주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일이다. 두 번째 질문은 단원들이 잘 한다면 칭찬하고 지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교향악단 연주가 끝나고 단원들을 일으켜 세워 잘했다고 인사하게 하는 것이 연주회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단원들도 칭찬을 받고 더 열심히 다음 연주를 준비할 것이다.

자율적으로 알아서 연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율성과 자치는 마을계획을 구성원들의 합의하에 만들어 각각 주민들이 참여하여 시간을 두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지휘자가 카를로스 클라이버(1930~2004)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나오면 약간의 제스처만 하고 거의 지휘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빈필 같이 좋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는 지휘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력이 별로인 오케스트라는 열심히 지휘했다. 앞에 누가 있는지 아는 것이다.

대부분의 초보 지휘자가 거꾸로 하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좋은 음악이 나오면 과하게 지휘를 해서 단원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지휘자의 스타성에만 충실한 과한 제스처를 하게 된다고 단원들이 평가하게 된다. 그러면 단원들의 자율적 참여와 연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때문에 음악가에 비해 지휘자는 특히 소통 능력이 필수일 듯하다.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좋은 지휘자가 반드시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귄터 반트(1912~2002)는 내가 만난 가장 끔찍한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심지어는 자신의 아내에게도 그랬다. 정말 불쾌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지휘하는 브루크너 교향곡은 명연주다. 성격이 나빠도 그는 위대한 지휘자였다.

마젤 또한 좋은 사람이지만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휘자들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옳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음악이 좋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후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스타 지휘자의 시대는 끝난 것 아닌가 싶다.

좋은 지휘자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지만, 스타 지휘자의 시대는 끝났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 마을에는 명지휘자에 의해 명연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마을에 필요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 낼 명지휘자가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마을에 자치가 잘 이루어질 수 없다.

주민들의 의견을 잘 청취하기 위해 주민 목소리를 경청하는 리더가 마을 자치를 잘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리더가. 마을에서 명지휘자 같은 리더들이 더 행복한 마을을 위해 더 귀 기울이고 소통하여 더 행복한 서비스가 이루어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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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준

강원취재본부 전형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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