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훈 대표 40여년 경험·기술로 개발
독일 이어 세계 두 번째, 국내 유일 제품
생산라인도 자체 제작 성공해 국산화 성공
국내 특허출원 이어 미국·중국에서도 출원
FCA 신모델 올 9월 적용 양산 계획
코로나19 여파 지연…운영자금난도 겹쳐
“기술력·특허 갖춘 중기 제대로 평가 육성 필요”
코로나19 영향으로 전 세계적 경기침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격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는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메카인 경남 창원도 마찬가지이다.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가 더디고 4차 산업과 맞물려 체질개선과 새로운 산업분야로의 전환이라는 과제에도 직면해 있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출기업들이 고전을 거듭하고 자금압박에 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업체들도 즐비하다.
기술력을 갖췄지만 매출 부진 탓에 당장 필요한 시설이나 운영자금을 지원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중소기업들의 현실은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암울한 먹구름처럼 여겨진다.
<프레시안>은 기술력과 발전 가능성을 갖추고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유망 중소기업들을 찾아가 현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기획물을 마련했다. 첫 번째 방문 중소기업은 경남 창원의 ‘대성코리아(주)’이다.
“일체형 경량 파이프 방식 자동차 드라이브 샤프트 제조 기술은 독일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국내 유일의 국산화 혁신기술입니다. 목표는 세계시장 공략입니다.”
경남 창원 자유무역지역에 있는 대성코리아(주)는 자동차 조향장치와 동력전달 부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자동차 미션과 바퀴 사이에 동력을 전달하는 축인 ‘드라이브 샤프트’(Drive Shaft)를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대성코리아가 자동차부품 업계에서 주목받는 것은 이 제품을 경량 파이프 방식의 일체형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 독일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기술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또 독일은 단조방식인 데 비해 대성코리아는 소재를 늘리는 인발방식 즉 소성가공 방식을 개발해 사실상 세계 유일의 기술력인 셈이다.
이 기술력은 정종훈 대표가 지난 40년 가까운 경험과 노력을 바탕으로 자체 개발해 완전 국산화를 이뤄낸 것이다. 정 대표는 진주 출신으로 진주고등학교(49회)와 경상대학교 농기계과를 졸업하고 삼미금속과 태림산업에서 각각 10년씩 근무하며 자동차 부품 소성가공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2006년 중국 진출을 목표로 한국에 연구소와 법인을 설립한 독일 슈니터(Schnitter)사에서 정 대표를 스카웃 했고, 그가 2010년 연구소와 공장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대성코리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정 대표는 2년 뒤인 2012년 이 기술을 개발해 특허출원을 했고, 이듬해 1월 회사 명의로 특허를 변경했다. 이후 2016년 7월 미국과 2017년 12월 중국에서도 특허출원을 하고 세계시장 공략 채비에 나섰다.
정 대표는 “기술개발을 하면서 옛 한국델파이로 알려져 있는 자동차부품 전문업체인 ‘이래AMS’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그동안 엄청난 고가의 장비를 외국에서 들여와야만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을 완전히 국산화하고 설비투자비의 획기적 절감에서부터 제품의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것은 국내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관련 자동차산업 전체에서 볼 때도 ‘기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이브 샤프트는 주로 ‘함봉’ 형태로 제작돼 왔다. 일종의 원형 쇠막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연비와 경량화가 중요해지고, 전기자동차가 차세대 자동차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르자 정 대표는 신기술 개발에 전념했다.
BMW나 벤츠 등 세계적 명차들은 이미 10여 년 전에 일체형 파이프 방식 제품들을 적용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경우 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설비를 갖추는 데에만 해도 120억~130억 원의 외화를 지불해야 했다. 독일식 공법의 경우에는 더 비싸 350억 원이나 들여야 했다.
또 그에 따른 생산 툴이나 금형, 오일까지 전부 수입을 해야 하는 바람에 중소기업으로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설령 값비싼 수입 생산라인을 설치한다 해도 제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질 수밖에 없어 가격경쟁력도 떨어졌다.
정 대표는 “그나마 내수용을 제외한 국산 수출용 차량에는 중량을 줄이기 위해 파이프형 드라이브 샤프트를 적용했지만 양쪽 부품과 마찰용접을 한 것이어서 용접 부분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며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40년 가까운 개인적 전문지식과 경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제품과 획기적인 저비용 구조의 생산라인을 국산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소회했다.
제조방법을 국산화한 일체형 드라이브 샤프트로 첫 번째 결실을 거둔 것은 지난 2015년이었다. 그해 6월 쌍용자동차의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비클) ‘티볼리’에 적용하도록 양산 승인을 얻었다.
당시 티볼리의 생산 대수가 적어 120억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으로 생산라인을 들여올 업체는 없는 실정이었다. 정 대표는 이때 4억5000만 원이라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자본만으로 생산라인 국산화에 성공해 2017년 7월 31일부터 티볼리 디젤 차량에 적용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단 한 건의 하자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정도면 기술력으로서 충분히 인정받은 것이지요.”
이 같은 성과와 성공은 자연스럽게 외국으로부터의 ‘러브콜’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와 미국의 자동차 제조·판매 회사의 그룹 회사이며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의 손짓이었다.
2년 전인 2018년 8월 FCA의 테스트를 통과해 6년 동안 해마다 24만개, 총 350억 원어치의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지프(JEEP) ‘그랜드 체로키’ 차량 신모델인 WL에 적용하기로 하고, 올해 9월부터 양산 제품을 공급할 계획이었다.
정 대표는 특허증과 발주서를 가지고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시설자금 15억 원을 융자 지원받아 신규라인도 증설했다. 연간 25만대 분량의 일체형 드라이브 샤프트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이다.
전기자동차 분야에서도 공격적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드라이브 샤프트 국산화에서 파생된 기술로서 전기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전기모터의 축을 지난해 개발해 LG전자를 통해 해외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이 또한 국내에서는 처음이며 특허출원도 해놓았다. 현재 포드의 재규어 차량에 적용하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생이나 사업이나 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문제이지요. 코로나19, 이런 게 오리라고는…”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대성코리아와 정 대표도 코로나19 직격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전 세계적 혼란 속에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도 휘청거리자 예정됐던 양산 일정도 덩달아 미뤄졌다. 9월에서 11월로 늦춰졌고,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금 계획으로는 늦어도 오는 12월에는 최소한 양산에 들어가야만 하는 절박한 처지이다.
사실 대성코리아는 지난 2017년까지만 해도 매출구조가 좋은 편이었다. 연간 30억 원 규모로 나름 탄탄했고 신용등급도 좋았다.
그런데 생산품의 절반가량을 납품하던 GM이 휘청거렸다. 호주와 터키 수출도 난관에 봉착했다. 2010년부터 수출계약을 맺어왔던 터키의 자동차회사는 국내사정 혼란과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대금결제조차 되지 않아 아예 거래를 끊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성코리아의 자금압박은 그렇게 시작됐고, 코로나19로 더욱 심해졌다.
“사실 중소기업으로서는 특허라는 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보루입니다. 중진공 등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특허뿐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를 통해 기술력을 갖추고 특허를 가진 중기들이 제대로 평가받고 육성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현재 대성코리아는 중진공에서 시설자금을 지원받았지만 운영자금은 거절당한 상태이다. 추후 매출실적 등을 봐가며 운영자금 등 추가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공급일정에 차질이 지속되면 자금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 드라이브 샤프트 시장은 7조 원 규모입니다. 대성코리아가 크라이슬러에 안정적으로 납품을 하게 되면 글로벌 공략에서도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제발 대성코리아의 발전 가능성과 현실적 배경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정 대표는 현대자동차에서도 대성코리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크라이슬러의 그랜드 체로키에 탑재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대성코리아의 생산라인 자체를 사가겠다며 여러 차례 의사를 타진해오고 있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기술총괄부사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2월 퇴임하신 분이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일체형 드라이브 샤프트를 생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던 거지요.”
당시 그는 대성코리아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살펴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좋은 기술을 이렇게 작은 중소기업에서 가지고 있다니 놀랍다”고 반응했다고 한다. 평소 경량화와 가격경쟁력을 고민해왔는데, 대성코리아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고 있어서 놀랐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대성코리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정 대표에게 이런 조언도 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다. 차라리 현대자동차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게 어떻겠는가’라고 말이다.
“일체형 드라이브 샤프트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 부문 특허출원도 현재 신청해놓은 상태이니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은 아주 강합니다.”
정 대표는 중소기업을 평가할 때 기술력과 발전 가능성에 주목해달라고 강조했다. 중국 기업들이 수시로 기술을 넘기라며 거액을 제시하지만 끝내 거부하는 것도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중국에 기술을 통째로 넘기면 개인적으로야 돈을 벌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5년만 지나면 중국이 역으로 치고 들어올 겁니다. 그래서 심지어 전시회조차 나가지 말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정 대표는 비록 지금 자금난에 시달리더라도 쉬운 길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애국자여서도 아니고 주위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듣기 위함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 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장비 발주를 받아 납품을 하고 나면 2호기 주문이 없다고 말입니다. 이미 베껴서 아예 장비를 만들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런 식으로 몰락한 중소기업들이 참 많습니다.”
정 대표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기술유출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든 기업인들을 ‘애국자’라고 했다. 그렇게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국산화한 기술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자금난을 버티며 지켜내고 있는 대성코리아. 아마도 코로나19가 잦아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난 뒤 전 세계를 바쁘게 뛰어다닐 그와 대성코리아를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곧 닥쳐올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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