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경제위기 극복 등을 명분으로 정부·여당이 밀어붙인 3차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일부 친여 성향 야당이 가세하긴 했지만, 사실상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처리였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물론, 진보 야당 정의당도 추경안 처리 과정의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민주당의 독주 체제가 뚜렷해졌다.
국회는 3일 밤 10시부터 본회의를 열어 35조1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재석 187인에 찬성 179인, 반대 1인, 기권 7인으로 가결했다. 반대는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이었고, 기권은 정의당 의원 6인과 민주당 민병덕 의원이었다.
찬성 의원은 민 의원을 제외한 민주당 의원 175인에 열린민주당 김진애·최강욱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었다.
이번 추경안은 역대 최대 규모이고, 1년에 3차례의 추경안을 편성한 것도 유신 때인 1972년 이후 48년 만이다. 추경안은 정부 제출 원안(35.3조)보다 오히려 국회 심의 과정에서 2000억 원 순감된 규모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추경안에는 △고용안정 특별대책 지원 명목으로 9.1조 △온누리상품권 추가발행 1조 등 내수·수출 지역경제 활성화에 3.2조 △방역산업 육성에 2.4조 △한국판 뉴딜 사업에 4.8조 원 등의 예산을 추가 투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추경 처리 과정, 민주당 숨가쁜 '단독 드리블'
앞서 민주당은 통합당과의 원(院)구성 협상 이견 끝에 지난달 5일 국회의장을, 15일 법사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을 일방 선출한 데 이어 같은달 29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포함한 국회 전 상임위 위원장을 자당 소속 의원으로 선출해 '여당 책임 국회' 시대를 열었다. 다수당이 위원장직을 독점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선출 당일 본회의 직후부터 바로 16개 상임위를 전면 가동하고, 이튿날인 27일 오전 예결특위 전체회의를 여는 등 초특급 속도전을 펼친 끝에 결국 이번 임시국회 회기 중에 추경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하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2차례에 걸쳐 '6월 중 추경 통과'를 주문한 뒤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예산 심사를 졸속으로 하고 있다며 민주당을 비난했고, 이후 '추경 심사 기한을 1주일이라도 늘리면 우리도 참여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놨지만 민주당은 이를 일축했다.
범(汎)진보진영에 속한 정의당 역시 상임위·예결특위 심의가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29일 기재위에서는 장혜영 의원이 항의 끝에 퇴장했고, 30일 예결특위에서는 이은주 의원이 "상임위 예비심사가 하루 만에 진행된 것이나 통과 시한을 정해놓고 예결위를 진행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어 추경의 시급성과 정당성을 호소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3차 추경이 오늘 통과돼 하루 속히 현장에서 집행되고 기업 도산을 막아 국민의 삶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야당들의 '졸속 심사' 비판을 의식한 듯 "일부에서 추경을 흠집내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편성 과정에서부터 정부와 협의를 진행했고, (국회에) 제출된 후에는 상임위별 간담회와 사전 심사를 거쳤다. 꼼꼼한 정밀 현미경 심사를 했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시급한 민생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7월 임시국회 요구서를 제출했다"며 "부동산 안정 대책과 질병관리본부의 청(廳) 승격, 보건복지부 복수차관제 도입, '일하는 국회'법 등 산적한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한시도 국회는 쉴 수 없다. 계속 가동돼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당·정의당 원내지도부, 본회의에서 나란히 항의발언 '진풍경'
통합당은 이날 본회의장에 이종배 정책위의장 1명만 들어가 비판성 의사진행발언을 한 후 바로 퇴장했으며, 다른 의원들은 처음부터 전원 불참했다. 통합당은 본회의 전인 이날 밤 9시부터 의원총회를 열어 여당의 추경예산 일방 처리를 강력히 성토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민주당이 저런 잘못된 태도를 취하는 한 21대 국회는 늘 폭거와 파행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세월이 흐르면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21대 국회 개원은 두고두고 오점과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본회의장 의사진행발언에서 "국회를 통과의례로 전락시킨 역대 최악의 추경"이라며 "3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가 견제와 균형의 본분을 망각한 채 '행정부 거수기', '대통령 하명 처리 기구'로 전락한 현실이 매우 개탄스럽다"고 규탄했다.
이 의장은 △재정 확장 추경으로 인한 국가채무 증가 우려 △공공일자리가 1회성이고 단기적이어서 '세금 낭비'가 될 것이라는 비판 △소상공인 직접지원 예산 미반영 △대학생 등록금 관련 지원예산 부족 △의료진 지원 예산이 120억에 지나지 않는 등 방역 관련 예산 부족 등 이번 추경안을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주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민주당이 폭거를 자행한다고 해서 우리가 늘 강경 투쟁으로 싸우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상대는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이라며 "민주당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국민과 국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 있으면 찾아서 해야 한다"고 국회 복귀 방침을 시사했다. 주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이르면 다음주 초쯤 국회에 복귀할 방침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통합당은 추경 문제와는 별개로, 이날 국민의당 의원들과 공동으로 '윤석열 검찰총장 탄압 금지 및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김성원 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다음주 내에 국민의당, 무소속 의원 4명과 함께 추미애 장관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7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맞붙을 최전선은 검찰 관련 이슈임이 명확해졌다.
민주당의 이날 추경안 처리에는 정의당도 비판 목소리를 냈다. 정의당은 이날 저녁 당 공보실을 통해 "정의당 의원단은 오늘 본회의 3차 추경안 찬반 투표에 기권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본회의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민주당은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헌법적 권한을 내팽개치고 예산 심의를 민주당 당정 회의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하면서 "이에 정의당은 민주당에 크나큰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배 원내대표는 "이번 주 국회, 정확히는 민주당의 모습은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29일 본회의가 끝난 직후, 모든 상임위가 소집돼 추경안을 예비심사했으나 말이 심사지 잠시 거쳐 가는 수준이었고 40분이 채 걸리지 않은 상임위도 있었다. 예결특위 예산소위에서는 민주당 의원 5명이 단 이틀 만에 사상 최대라는 35조 추경의 증·감액 심사를 모두 마쳤다"고 꼬집었다.
배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정한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35조 원 규모의 추경을 제대로 심의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행위"라며 이날 정의당 의원단이 기권 결정을 한 배경에 대해 "내용을 모르는데 어떻게 찬성할 수 있으며, 또 시급한 민생을 위한 추경인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겠나"라고 밝혔다.
정의당은 이날 오후 강은미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심사기간 연장을 재차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사기간 연장 필요성 주장, 민주당의 추경 심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진보-보수를 넘어 통함당과 정의당에서 한목소리로 나온 상황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날 김종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정의당 관련 보도에서 '범여권'이라는 표현은 가급적 피해 달라"며 "'범여권 정의당'이 아니라, '진보야당 정의당', '진보정당 정의당'이라는 더 정확한 범주로 정의당을 지칭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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