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6일,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북측이 공개한 영상에는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오른 파편들이 뒤이어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속으로 흩어져 떨어지고 있었다. 이튿날 남측 방송사 헬기가 비행금지선 2천 미터 지점에서 찍어 보낸 영상에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위태로이 서 있는 연락사무소와 주변에 산재된 콘크리트 잔해들이 담겨 있었다. 그날부터 가슴 한 가운데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앉았다. 평화를 일구는 일이 이리도 지난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한편 평화가 순식간에 신화처럼 다가오는 것도 아님을 절절히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마음 추슬러본다. 평화프로세스는 저 폐콘크리트를 치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저 돌멩이들을 치우는 것이 평화다.
돌이켜 보면, 냉전의 변곡점들마다 ‘사람들의 힘’이 밑받침되어 있었다. 피플파워(people power)에 대한 적당한 번역어를 찾지 못해 사람들의 힘이라 쓴다. 그 ‘사람들의 힘’으로 튼 물꼬의 궤적이 사람들의 역사인 것이라면, 냉전 질서의 변화와 해체도 결국은 사람들의 힘이 하는 것이다. 냉전의 첫 변곡점이 베트남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반전운동이 미군 병사들의 전투의지를 꺾어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9년 10월 15일 ‘베트남 반전의 날’에 본격화한 운동은 11월 15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개최된 반전데모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참가한 사람들은 25만명이라고도 하고 50만명이라고도 한다. 냉전 해체의 기점을 1969년으로 잡는 것은 닉슨 독트린 때문이 아니라, 베트남반전 운동의 세계적 조직과 확산 때문이다. 역사를 움직인 것은 ‘사람들의 힘’이다.
‘사람들의 힘’은 때로 전쟁기계 전차를 멈추게 한다.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전쟁에서도 후방기지 역할을 하던 일본의 사가미하라 미 육군 보급부대에 주둔하던 전차 출동을 저지한 것도 ‘사람들의 힘’이었다. 1972년 9월, ‘보통의 시민이 전차를 막는 모임’이 조직한 사가미하라 부대 앞 농성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도로를 점거하고 전차 출동을 저지했다. 일본의 미군기지 주변에서 벌어진 반전운동은 미군 부대 내 반전조직 결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은 1973년 1월 파리평화협정을 맺고 종전을 선언, 철수를 개시했다. ‘사람들의 힘’은 때로 전쟁기계 국가를 멈추게 한다.
국제정치 교과서들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신냉전이 개시되었다고 기술하는 1979년 12월, 유럽에서는 ‘사람들의 힘’을 결집시키는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NATO가 서유럽 5개국에 소련의 SS-20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의 INF(중거리 핵전력)를 도입 배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1981년 가을부터는 대규모 집회로 발전해서 83년 말까지 30만명에서 50만명을 동원하는 반핵운동이 서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NATO 재무장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 시기 유럽의 반핵평화운동은 1985년부터 개시된 미소 군축대화를 이끌어냈고, 이는 1987년 12월의 INF조약의 조인으로 이어져, 냉전 종식의 신호탄이 되었다.
같은 시기 동아시아에서도 ‘사람들의 힘’이 냉전을 종식시키고 있었다. 1986년 2월 필리핀의 마르코스 반공독재를 종식시킨 것은, 그 이름도 ‘피플파워 혁명’이었고, 1987년 6월항쟁도 그 연장에 있었다. 1989년 8월, 소련의 군사개입으로부터 발트 3국을 지켜낸 것은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600킬로미터를 이어 만든 인간사슬이었다. 같은 시기 시작된 범유럽 피크닉 계획은 동서독 분단의 장벽 붕괴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30년, 견고하게 유지되던 한반도 냉전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지는 겨울 동안, 광화문과 부산 서면과 광주 금남로와 대구 동성로와, 제주 시청앞과, 그리고 흑산도 예리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모인 ‘사람들의 힘’이 만든 것이었다. 23차례의 범국민행동에서 주최 측 추산으로 연 1,689만 4,280만명이 모은 힘이었다. 그렇게 일군 평화프로세스였다. 그런데 지금, 가까스로 일으킨 평화의 등불이 위태롭다. 다시 사람들이 나서서, 평화프로세스에 힘을 실어야 할 때다. 무엇을 할 것인가. 저 폐콘크리트 돌멩이를 치우는 것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북측의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야당을 중심으로 북측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손해배상과 원상회복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제 평화프로세스의 실패를 확인하고 다시 전쟁을 준비하라는 소리도 거칠어지고 있다. 북측에 따질 건 따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건물 폭발에 분노의 폭발로 대응해서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서는 안 될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디터 젱하스의 조언에 다시 귀를 기울일 때다.
‘사람들의 힘’으로 일군 남북 민간 교류는 1990년대 중반기에 시작되었다. 그 규모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 2,439억원, 이후 2008년까지 매년 700억원에서 900억원 규모.(2004년에 1,500억원)였으나, 2009년부터 급감해서 100억-300억원에 머물고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정부에 앞선 남북 민간 교류에 부정적인 탓이었다. 더구나 정부가 남북 교류에 소극적일진대 민간 교류가 활성화될 수 없었다. 촛불정부 들어서서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개시되면서 민간 교류가 재개되었다. 2018년 방북인원은 52명에서 6,159명으로, 방남인원은 63명에서 806명으로 증가했다. 남측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협력 재개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제재가 걸림돌이었다. 인도적 지원 물자 반출과 구입에 대한 면제 승인 절차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우리 정부는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 개별관광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지난 2월 열린 한미 워킹그룹에서 미국은 이에 대해 원칙적인 지지 입장을 표명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가 북한 개별관광을 적극 추진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코로나19가 이를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지난 3월말, 코로나19 관련 민간단체 대북지원을 처음으로 승인하면서 돌파구가 열리는 듯 했다. 통일부 승인 요건을 갖춰 대북 지원을 신청한 1개 단체에 대한 반출 승인을 3월 31일에 진행한 것이다.
지자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2020년 신년사에서 개성관광이 개성공단 재개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어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개성관광 사전신청서를 통일부에 제출하고, 개성관광 실현을 최우선으로 추진할 방침을 확인했다. 지난 6월 3일에는 경기도 파주에 남북산림협력센터가 개소했다. 산림협력은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지원으로 교류협력의 실적이 있는 분야였다.
개별관광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하여, 폐콘크리트를 치우고 그 자리에 평화의 나무를 심자. 폐콘크리트는 배낭에 하나씩 들고 나와서 DMZ 평화공원 조성에 활용하자.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비무장지대 안에 유엔기구를 설치하는 등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지구로 지정하고, 남과 북, 국제사회가 함께 한반도 번영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내자는 구상이었다. 북측이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폐콘크리트를 ‘파괴에서 건설로, 대립에서 화해로, 분쟁에서 평화로’ 가는 상징으로 만들자.
돌멩이 나르기는 평화운동 이전에 반공해 환경운동이기도 하다. 벤토나이트 용액, Ascon 찌꺼기, 스티로폼 잔해 등과 더불어 콘크리트 잔해는 심각한 유해 물질이다. 연락사무소 폭발로 인해 분진과 함께 폐자재 등에 포함된 유해 화학성분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각난 파편 등도 문제다. 이들 폐기물에서 나온 유해물질은 개성공단 내 삼봉천으로 흘러들어가, 임진강, 한강하구, 경기만 북부로 흘러들어간다.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힘’으로 일군 기적의 기억이 살아 있다. 2007년 12월 7일, 해상 사고를 일으킨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의 기름유출 사건이다. 허베이 스피리트호서 유출된 원유는 12,547킬로리터(10,900톤)에 달해 하루 만에 태안반도 일대를 뒤덮었다. 사고 바로 다음날인 12월 8일부터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작업에 참여해 헝겊 한 장으로 돌과 바위를 닦기 시작했다. 2008년 2월 21일 자원봉사자는 100만 명을 넘어, 2008년 7월 4일까지 연인원 약 212만 명이 방제작업에 참여했다. 그 결과는 태안반도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개성공단에 흩어진 폐콘크리트를 치우는 작업은 그리 긴 시간에 그리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북측 부지에 건립되었지만, 남측 예산으로 건립되어 남측 국유재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우리 정부가 건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거기서 나온 폐기물도 우리 소유라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우리 물건을 들고 나오는 데 어떠한 법적 제약이 있을 수가 없다. ‘사람들의 힘’으로 환경을 보전하고 평화를 재건하려는 걸 국제사회가 도울지언정 막을 이유가 없다. ‘사람들의 공화국(people’s republic)’을 자처하는 북측이 이를 막을 이유도 없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폐콘크리트를 비무장지대 평화공원의 기초로 재활용하여, ‘사람들의,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평화(peace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건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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